나무 이야기(3) - 모과나무
류인혜
교회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모과나무에 사람이 올라가 있었다. 올려다보니 높은 곳에 열려있는 모과를 따는 중이다. 나무 밑에 놓여진 노란 색 바구니가 반쯤 차 있다. 나무에 달려있는 것은 작아 보이는데, 바구니에 담긴 것은 제법 크다. 바구니 색깔과 모과의 노란 색이 곱게 어우러져 입에 침이 돌게 한다.
모과나무에서 모과를 따는 것이 당연한데, 그 나무가 이사와서 열매를 맺기 시작한 후 추수하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라 걸음을 멈추고 아예 자리를 잡은 듯 서 있었다. 모과를 받아서 담던 남자집사님이 돌아서면서 빙긋거린다. 고개가 아프도록 쳐다보면서 몇 마디 하는 내 꼴에 역시 싱거워졌다. 본당으로 들어가면서 혼자 실실 웃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즐겁게 지냈다.
교회 마당에 심겨진 모과나무는 두 그루다. 한 그루는 교회 건물이 지어질 때 같이 심은 것이라 벌써 많은 열매를 맺었기에 친근해 있는데, 지금의 나무는 몇 년 전에야 이사를 왔다. 옮겨 심은 다음 해에 처음 꽃이 피었을 때, 모과나무의 생성은 사건처럼 반가웠다. 너무 신기해서 지나는 사람들을 불러 꽃을 보라고 수선을 떨었다. 근처에 심어놓은 느티나무가 새로운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온갖 정성을 다해도 죽어 버렸기에 이 나무는 어떻게 될까, 염려를 많이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무가 작고 흰 꽃송이를 피어내니 얼마나 대견한지, 수시로 올려다보며 나무 곁에서 선듯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었다. 그러나 그 해에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해마다 조금씩, 열리는 모과 열매의 숫자가 늘어났다. 모과나무가 비로소 한 식구가 된 듯 든든해졌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자기의 본분을 다해야 이어가는 생명에 대한 대접을 제대로 받게 되는가 보다.
마당에서 추수한 모과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로비에 지어놓은 시골집에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의 손을 타는지 날마다 그 수가 조금씩 줄어든다. 제멋대로 생긴 모양은 이상해도 신선한 냄새로 인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과일인가 보다.
모과는 차를 만들어 마신다. 그러나 한번도 집에서 모과를 사다가 차를 만들어 본적이 없다. 겨울 날 감기 기운이 있어 목이 깔깔하거나 다른 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나면 인사동에 있는 찻집 <귀천>에 간다. 천상병 시인의 아내인 목순옥 여사가 모과처럼 수더분하게 생긴 얼굴로 크게 웃으며 큰 찻잔에 모과 차를 가득 부어준다. 찻잔이 너무 커서 그 뜨거운 것을 다 마시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집에서 만든 차만큼 맛있는 모과차를 마셔보지 못했다. 모과는 독특한 냄새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모과는 신 과일이다. 이상하게도 모과를 보면 손이 시리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추운 겨울, 느닷없이 어머니가 모과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너무 싫어서 이불 속에 누워 게으름을 부리는데, 어머니는 어느 때와는 달리 화를 많이 내었다. 그래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중에 쫓기듯 집을 나섰다. 다행이 모과를 팔고 있는 곳이 가까워 얼른 하나를 사왔는데 오래도록 그 일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오늘 갑자기 나무에서 추수되어 내려오는 모과를 보고, 모과나무에 피어났던 하얀 꽃을 연상하고, 어머니의 모과까지 연결을 지어나가다가 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생명은 그렇게 느닷없는 입덧으로 시작되는가 보다.
2001년 11월 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