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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내 산 문

壁 외 2편(물. 밤) /이 태 준

작성자작가회|작성시간19.12.01|조회수32 목록 댓글 0
         壁 외 2편(물. 밤)
  글쓴이 : 최원현날짜 : 07-07-21 00:32     조회 :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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壁  외 2편


이 태 준


뉘 집에 가든지 좋은 벽면(壁面)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 넓고 멀찍하고 광선이 간접으로 어리는, 물 속처럼 고요한 벽면, 그런 벽면에 낡은 그림이나 한 폭 걸어놓고 혼자 바라보고 앉았는 맛, 더러는 좋은 친구와 함께 바라보며 화제 없는 이야기로 날 어둡는 줄 모르는 맛, 그리고 가?다른 그림으로 갈아 걸어보는 맛, 좋은 벽은 얼마나 생활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

어제 K군의 입원으로 S병원으로 가보았다. 새로 지은 병실, 이등실, 세 침대가 서로 좁지 않게 주르르 놓여 있고 앞에는 널따란 벽면이 멀찌가니 떠 있었다. 간접광선인 데다 크림빛을 칠해 한없이 부드럽고 은은한 벽이었다.

우리는 모두 좋은 벽이라 하였다. 그리고 아까운 벽이라 하였다. 그렇게 훌륭한 벽면에는 파리 하나 머물러 있지 않았다.

다른 벽면도 그랬다. 한 군데는 문이 하나, 한 군데는 유리창이 하나 있을 뿐, 넓은 벽면들은 모두 여백인 채 사막처럼 비어 있었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은 그 사막 위에 피곤한 시선을 달리고 달리고 하다가는 머무를 곳이 없어 그만 눈을 감아버리곤 하였다.

나는 감방의 벽면이 저러려니 생각되었다. 그리고 더구나 화가인 K군을 위해서 그 사막의 벽면에다 만년필의 잉크라도 한줄기 뿌려놓고 싶었다.




벽이 그립다.

멀찍하고 은은한 벽면에 장정 낡은 옛 그림이나 한 폭 걸어놓고 그 아래 고요히 앉아보고 싶다. 배광(背光)이 없는 생활일수록 벽이 그리운가 보다.


















이 태 준




나는 물을 보고 있다

물은 아름답게 흘러간다.

흙 속에서 스며나와 흙 위에 흐르는 물, 그러나 흙물이 아니요 정한 유리그릇에 담긴 듯 진공 같은 물, 그런 물이 풀잎을 스치며 조각돌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후른 하늘 아래에 즐겁게 노래하며 흘러가고 있다.

물은 아름답다. 흐르는 모양, 흐르는 소리도 아름답거니와 생각하면 이의 맑은 덕, 남의 더러움을 씻어는 줄지언정, 남을 더럽힐 줄 모르는 어진 덕이 이에게 있는 것이다. 이를 대할 때 얼마나 마음을 맑힐 수 있고 이를 사괴일 때 얼마나 몸을 깨끗이 할 수 있는 것인가!

물은 보면 즐겁기도 하다. 이에겐 언제든지 커다란 즐거움이 있다. 여울을 만나 노래할 수 있는 것만 이의 즐거움은 아니다. 산과 산으로 가로막되 덤비는 일없이 고요한 그대로 고이고 고이어 나중날 넘쳐 흘러가는 그 유유무언(悠悠無言)의 낙관(樂觀),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독에 퍼 넣으면 독 속에서, 땅 속 좁은 철판에 몰아놓으면 몰아넣는 그대로 능인자안(能忍自安)한다.

물은 성(聖)스럽다. 무심히 흐르되 어별(魚鼈)이 이의 품에 살고 논, 밭, 과수원이 이 무십한 이로 인해 윤택하다.

물의 덕을 힘입지 않는 생물이 무엇인가!

아름다운 물, 기쁜 물, 지자(智者) 노자(老子)는 일즉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였다.










밤 




이 태 준




동경서 조선 올 때면 늘 밤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하였다.

저기도 주야가 있지만 전등 없는 정거장을 지나보지 못하다가 부산을 떠나서부터는 가끔 불시 정차(不時停車) 같은 깜깜한 곳에 차가 서기 때문이다. 무슨 고장인가 하고 내다보면 박취처럼 오락가락하는 역원들이 있고 한참 둘러보면 어느 끝에고 깜박깜박하는 남폿불도 보인다.

밤, 어둠의 밤 그대로구나! 하고 밤의 사진이 아니라 밤의 실물을 느끼곤 하였다. 그리고 정말 고향에 돌아오는 것 같은 아늑함을 그 잠잠한 어두운 마음 속에서 품이 벌게 받는 듯하였다.

“아이 정거장도 쓸쓸하긴 하이…….”

하고 서글퍼하는 손님도 있지만 불 밝은 도시에서 지냈고 불투성이 정거장만 지나오면서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내 신경에는 그렇게 캄캄한 정거장에 머물러주는 것이 도리어 고마웠다. 훌륭한 산수(山水) 앞에 서주는 것만 못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불 없는 캄캄한 밤을 즐겨 버릇하였다. 그후 동경 가서는 불 없이 노는 회(會)를 만들어 여러 친구와 다음날 해가 돌아오도록 긴 어둠을 즐겨 본 일도 있다.




밤이 오는 것은 날마다 보면서도 날마다 모르는 새다. 그러기 때문에 낮에서부터 정좌하여 기다려도 본다. 닫힌 문을 그냥 들어서는 완연한 발걸음이 있다. 벽에 걸린 사진에서 어머님 얼굴을 데려가 버리고 책상 위에 혼자 끝까지 눈을 크게 뜨던 꽃송이도 감겨버리고 나중에는 나를 심산(深山)에 옮겨다 놓는다.

그러면 나는 벌레 우는 소리를 만나고 이제 찾아올 꿈을 기다리고 그리고 이슥하여선 닭 우는 소리를 먼 마을에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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