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3-01-16 12:01 조회 : 1826 |
| | | 설야(雪夜)
그 겨울은 '술과 장미의 나날'이었고,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 아니었다. 장안의 술집을 '주유(周遊‧酒遊)'했다. 내 돈을 주고 마시든 남에 기대어 마시든, 어찌됐건. 남의 돈으로 마신다면야 더 좋았겠지만.
출근길에 아내가 당부했다. "눈길 조심하세요!" 사람이 소심하긴. 다 큰 사람에게 눈길 조심하라니? 악어나 상어를 조심하라면 몰라도. 혹 도우미를 조심하라면 그나마 말이 될 테지만. 나는 걱정 접으라는 신호로 뒤통수너머로 'V' 표시를 그려 보이고 주섬주섬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바닥이 여간 미끄러운 게 아니었다. 정류장에 이르러 삐끗 넘어질 번했으나 용케 균형을 잡았다. 하늘은 잿빛으로 내려앉았고 눈발이 흩날렸다. 눈에 인색한 도심 일원에도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참이었다. 새벽녘에 깨어나 침묵의 소리를 들었다. 은밀한 제의(祭儀)에 참여하는 기분. 일층 귀 기울이니 글쎄, 그런 일이 가능한 건지? 사위는 적막한데 눈 내리는 소리만이 아니었다. 고장 난 괘종시계가 똑딱였다.
일과가 끝나기만을 기다려 주우들과 "한잔 술이 없을소냐" 자리를 함께 했다. 종일 내리던 눈발이 아직도 미진한지 검은 창에 부딪쳤다가 스러지곤 했다. 한 순배가 돌았을 즈음 누군가 흥에 겨워 잘 알려진 모더니스트의 시구를 읊조렸다.
"먼 데 여인의 옷 벗는 소리." 그러자 누군가 히죽거리며 화답했다. "이웃집 아낙네 옷 벗는 소리." 다른 누군가가 말꼬리놀이 하듯 운을 이어갔다. 그가 나였던 듯싶다. "우리집 마누라 옷 벗는 소리."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데 또 다른 누군가 볼멘소리로 항의했다. "거, 공포스럽네! 왜 이 판국에 마누라가 나와 석죽이냐? 술맛 떨어지게 스리."
우리는 대취한 끝자락에 해바라기의「사랑으로」를 부르고 우정을 맹세한 후 모임을 파했다. 거리로 나서자 절로 「설국(雪國)」의 첫 구절이 생각났다. 지하도 터널을 나서자 온통 눈의 고장, 은백(銀白)의 세상이었다. 언제가 읽은 적이 있는 시 한 토막도 생각났다. "한잔 술로 달래는 일상의 거죽 위에 미망(迷妄)의 눈발이 흩날리는구나." 우리 모두는 폭이 좁고 낮은 어깨를 가진 중년의 가장이었다. 나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잠깐 졸았나보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눈을 치켜뜨니 차창 밖은 네온이 명멸하는 빛의 고을이었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도깨비불처럼 손짓하며 춤추었다. 까짓 것, 좋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 옆을 지나칠까. 홀린 듯 차에서 내리자 청년 두 명이 닦아와 부축하듯 겨드랑이를 꼈다. 낯익어 보이기도, 그렇지 않은 성도 싶은 것이 수상했다.
"너희가 나를 아느냐?" 정체모를 청년들이 대답했다. "아, 알다마다요. 사장님, 우리 사장님 아니십니까!"
나는 두 명의 삐끼 수사관에게 체포되어 즉시 안가(安家)로 연행됐다. 그들이 물고문을 한다거나 심하게 다룬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대기 중인 '기쁨조'를 출연시켜 혼을 쏙 빼놓았다. 비음 섞인 교소(嬌笑)와 홍소(哄笑). 나중 생각해보니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가혹한 고문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에라 모르겠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난 차라리 웃고 있는 삐에로가 좋아, 예예예예~. 싸늘한 찻잔에 희미한 갈색 추억 어쩌고~."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술과 노래였어. 갈 수 없는 나라에 대한 비루한 열망으로 어둠의 부름에 이끌렸던 것. 도둑처럼 엎뎌 웅얼대는 육체의 소리를 들었던 것이지. 그저 모르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되도록 모르는 사람과 말하여지지 않은 편이 이해하기 쉬웠어. 억울했었을 수도 있을 거야. 나를 몰라주는 데 대한. 무엇이 그렇게? 내 청춘이, 사랑이, 슬픔이, 천박한 일상이, 내 뒤에 드리운 나의 그림자가.
하의실종 패션 여동생들의 친절한 배웅을 받으며 거리로 나서는데, 불콰한 뺨에 차갑고 흰 꽃잎이 분분히 내려앉았다. 종일 내린 눈으로 얼어붙은 땅에 또다시 눈발이 흩날리는 것이다. 창백한 바닥은 스케이트장을 방불케 하는 빙판이었다.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는데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고 자꾸만 제자리에서 헛돌았다. 설핏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며 나동그라졌다. "눈길 조심하세요!"
주섬주섬 일어서려는데 귓전에 무언가 희끗한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난 얼른 손을 뻗쳐 그것을 잡아챘다. 무엇이든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남는 것이다. 극적으로 낚아챈 것은 오징어 다리인 것 같았다. 거 이상하네. 술집에 있어야할 안주거리가 왜 여기에 떠돌아다녀? 취중이라도 운동감각은 살아 있단 말이지. 난 순발력에 감탄하며 내심 만족했다. 그럼, 내가 누군데. 뭔가 보여줄 거야. 나 아직 안 죽었거든!
택시를 잡느라 허공에 손을 휘두르는데 시야가 침침하고 흐릿했다. 내가 왜 이럴까? 두 눈을 잃고 광야를 헤매는 오이디푸스라도 됐단 말인가? 그러자 평소 웅얼거리던 시구가 두서없이 떠올랐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그날 장님이 되어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왔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얼굴에 찰과상을 입었을 뿐더러 애지중지하던 독일제 로덴스톡(Rodenstock) 안경을 잃어버렸다. 코트자락에 간수했다가 아내에게 자랑스레 내보인 것은 오징어가 아닌 안경테였고. 나는 이후 한동안 집에 유폐되었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2012 <<시에>> 겨울호 |
| | 임재문 | 13-01-17 08:57 |  | 허허 꼭 내 속내를 들어냏어 놓은 듯 해서 부끄러운 마음 뿐입니다. 저도 그렇게 한 때는 그랬었거든요. 틀니는 물론 안경도 분실하고 아내의 결혼 선물 부로바 시계도 그렇게 강탈당하고 그러고도 정신 못차린 바보바보가 여기 이렇게 웃고 있네요 ㅎㅎ 앞으로는 정신 바아짝 차리고 살아가렵니다. 감사합니다. 김창식 선생님 ! | |
| | | | 김창식 | 13-01-17 09:50 |  | 부끄러운 경험으로 남아 있는 오래 전 일을 쓴 것입니다, 임재문 선생님. 지금 그랬다간 '감금' 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형지'로 내쳐질 것입니다. | |
| | | 임병문 | 13-01-17 11:33 |  | | 참으로 아련하고 그리운 그 때 그 소리요.!! | |
| | | | 김창식 | 13-01-17 12:49 |  | | 저에 대한 참으로 부끄러운 변명! 참회합니다. | |
| | | 강승택 | 13-01-17 22:40 |  | | 오래전 일이라니 다행입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한 때의 객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치루어야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부디 옥체 보존하소서! | |
| | | | 김창식 | 13-01-18 10:05 |  | 전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강승택 선생님. 문제는 그것이 지금도 그렇다기보다... 그러니까, 그것이...(머뭇머뭇) | |
| | | 김용순 | 13-01-18 14:34 |  | | 지금도 그렇다가는....올해 같은 눈, 얼음 덮힌 혹한기에 고관절이 무사할 턱 없고, 동태되기는 시간 문제일 터... | |
| | | | 김창식 | 13-01-18 15:07 |  | 꼭 지금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므니다, 김용순 선생님. 유달리 추운 이 겨울 한 데로 烹당하면 어디메로 간단 말입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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