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회원수필

유병덕 수필 <방석>

작성자나그네 유|작성시간26.06.08|조회수105 목록 댓글 0

방석

 

유병덕

수필가(2019 수필과비평) 등단

행정학 박사, 평생교육사, 자산관리사

수필울수필과비평 작가회의, 한국문학시대 동인

에세이 <명함버렸습니다>, 한시 번역 <존재 유진하선생 유고시집>

 

  하얀 이팝나무꽃이 바람에 쏟아진다. 꽃비를 맞으며 농원으로 달렸다. 이른 봄 뿌려놓은 채소밭이 궁금해서다. 비닐하우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잡초만 무성하다.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풀 사이에 채소 싹이 띄엄띄엄 보인다. 작업복을 갈아입고 호미를 들고 나섰다. 태양이 대지를 달구자, 비닐하우스 안은 삼복더위를 방불케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화끈거리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게다가 쪼그리고 앉아서 김을 맨 탓에 오금이 저리고 무릎이 아프다. 밖으로 나와 꾸지뽕나무 그늘에 털썩 주저앉았다.

  꾸지뽕나무 그늘이 바람에 수런거린다. 주변은 비닐하우스 촌이다. 주로 꽃이나 채소를 기른다. 날씨가 더워서 비닐을 걷어 올려놓아 이웃에서 일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니캅(Niqab)을 쓴 듯 눈 만 빼꼼히 내놓고 허리춤에 무언가 매달고 굼실굼실 댄다. 그늘에서 스마트폰에 콩(방송 앱)을 열어 노래를 들으며 흥얼대던 중이다. 꽃밭 한가운데서 일하던 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뒤뚱뒤뚱 걸어온다.

 

  “농부 방석을 깔고 앉아 김매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마에 땀을 훔치며 한 마디다. 처음에 누군지 궁금했다. 얼굴에 가리고 있던 천을 벗으니 낯익은 이다. 일전에 비닐하우스 교체 작업할 때 남정네들 따라와서 비닐을 펴주던 꽃집 아낙이다.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서 김매면 무릎이 아프다며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방석을 풀어 건넨다. 언짢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먼저 간다며 그 방석을 쓰고 농막 난간에 매달아두라고 덧붙인다.

  불현듯 누님 기억이 떠오른다. 막 직장에 들어갔을 때 누님이 방석을 보내왔다. 한땀 한땀 모란꽃을 수놓아 만든 꽃방석이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꽃이 보일 듯 말 듯 하나, 한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세상을 원망하며 낮은 포복으로 맨땅을 길 때다. 새벽에 동대문시장에 가서 지게로 물건을 날라다 차에 실어주고 낯에는 청량리역에서 구두닦기를 했다. 아니 이 다방 저 다방 돌아다니며 손님의 구두를 날라다 주는 심부름꾼이 적확하다. 그사이 다행히 취직 시험에 붙었다. 그녀는 동생의 모습이 애잔했던 모양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라고 소망했는지 모른다.

  그 방석을 직장에 가져와서 깔고 앉았다. 꽃방석이라 그런지 손이 탔다. 어느 날 출장을 다녀와 보니 방석이 없어졌다. 그 자리에 왕골방석이 놓여있다. 초임이라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지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선임자가 바꿔 놓았다. 하루는 그가 일을 가르쳐 준다고 하여 야근하게 되었다. 그의 눈치를 보느라 자정이 지나서도 집에 갈 수 없는 처지다. 눈 좀 붙여보려고 어디 누울 데 없을지 둘러보았다. 바닥은 시멘트라 너무 차가울 것 같고. 과장 좌석 앞의 소파가 안성맞춤인데 그가 먼저 누워 자리를 잡는다. 딱딱한 책상 위에 누워야 할 형편이다. 마땅히 깔 것이 없어 직원들의 방석을 주섬주섬 모으던 참이다. 방석이 제각각이다. 재질과 무늬도 모두 다르다. 방석은 주인의 성정과 흡사해 보였다.

  방석은 늘 사람 아래 깔려 있다. 누구도 방석을 높이 올려놓고 받들지 않는다. 그러나 방석이 없으면 바닥의 차가움이나 딱딱함이 그대로 전해져서 불편하다. 사람도 그렇다.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방석처럼 다른 이의 불편을 덜어 주는 이가 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가족이나 이웃을 편안하게 하는 이다.

  방석은 재료에 따라 사람의 성정과 비슷한 점이 있다. 솜 방석은 부드럽고 포근하다. 온화하고 너그러운 사람을 닮았다. 반면 왕골방석은 차갑고 뻣뻣하고 투박하다. 내게 왕처럼 굴었던 선임자의 성정과 유사하다. 메모리폼 방석은 앉는 사람의 몸에 맞추어 모양을 바꾼다. 상대의 처지를 배려할 줄 아는 성정을 연상케 한다.

  방석 모양 또한 사람의 성격을 닮았다. 둥근 방석은 모난 데 없이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원만하고 서글서글한 사람과 일맥상통한다. 네모난 방석은 매사 각을 세워 원칙과 기준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칠한 사람을 닮은 듯하다. 또 가운데가 뚫린 도넛형 방석이 있다. 이는 자신의 빈자리와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의 성격을 떠올리게 한다.

  방석 가운데는 꽃방석도 있다. 이 방석은 아름답고 화려하여 사람의 시선을 끈다. 세상에는 꽃방석 같은 사람도 있다. 밝고 매력적이라 많은 이에게 호감을 산다. 하나 꽃방석이 오래 사랑받으려면 보기 좋은 것만으로 부족하다. 포근함과 편안함을 갖추어야 한다.

  방석만큼이나 많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갑년 고개를 넘으니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고개를 든다. 방석은 말없이 넌지시 알려준다. 겸손, 상대를 배려하는 부드러움, 화려함보다 편안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사람도 그런 방석처럼 누군가에게 편안함과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지 싶다.

  해가 서녘으로 퇴근할 무렵 돌아왔다. 온종일 김을 맨 탓인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농막 난간에 붙잡아 매 놓은 농부 방석이 잘 있는지 궁금하다. 남겨놓은 김을 마저 매야 할 텐데.

 

 

 

  농부 방석: 논밭에서 김매기, 모종 심기를 할 때 무릎이나 엉덩이를 보호하려고 깔고 앉는 작은 방석을 말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