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홀(hole)
“띠링! 띠링! 띠링!~”
새벽의 정적을 가르며 모닝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른 아침 골프 클럽하우스로 오라는 총무의 연락을 받고 스마트폰에 예약해 둔 알람 소리다. 매주 한 번꼴은 이 소리에 잠이 깨는 것 같다. 직장에서 물러나자, 같이 지내던 이들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모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그중 골프 모임이 싫지 않았다. 그린회, 충공회, 골통회…. 골프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밥 한술 먹고 운동 시작이다.
매번 라운드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연습장에서 골프채를 휘둘러 보고 온 날은 생각과 마음과 몸이 하나로 모여 공이 페어웨이를 향해 곧게 날아간다. 하지만 연습을 게을리한 날은 스윙 순간 금방 표가 난다. 맘은 반듯하게 보낸 것 같은데 몸은 따로 논다. 결국 엇박자를 내어 공은 엉뚱한 길을 택한다. 모래 벙커에 들어가기도 하고, 물에 빠져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골프는 공을 치는 운동이라기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심신 수련 아닌가 한다.
그린에 지름 10센티미터 남짓한 원형의 구멍. 골퍼의 모든 시선은 그곳을 향한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힘차게 날아간 드라이버 샷도, 페어웨이를 가르는 아이언 샷도, 섬세한 어프로치와 퍼트도 모두 그곳을 향한 여정이다. 돌아보면 인생 여정을 닮은 것 같다.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서 살아가지만, 그 목표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하는 점이다.
홀은 말이 없다. 가까이 다가오라고 재촉하지 않고, 멀리 있다고 등을 돌리지도 않는다. 그저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있다. 삶의 목표 또한 이와 비슷하다. 성공, 행복, 사랑 등의 삶의 목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늘 저만치,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놓여 있다. 우리는 한 걸음씩 그곳을 향해 다가갈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홀이 작을수록 집중력이 커진다. 스포츠에서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홀이 존재한다. 축구나 농구 그리고 당구대의 포켓을 보면 공이 홀에 들어가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된다. 넓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던질 때보다 작은 홀에 공을 넣으려 할 때 훨씬 더 신중해진다. 삶도 마찬가지다. 목표가 작고 분명할수록 삶의 방향은 선명해진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아는 이는 흔들리는 순간에도 다시 중심을 잡는다. 홀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기준점인 셈이다.
하지만 홀에 도달하는 길은 결코 직선만이 아니다. 공이 반듯하게 날아가다가 바람을 만나 휘기도 하고, 때로는 러프에 빠지거나 벙커에 묻히기도 한다. 어떤 날은 완벽한 샷을 했는데도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막히고, 어떤 날은 실수한 공이 오히려 좋은 위치에 멈추기도 한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다. 우연과 변수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홀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길을 잃은 듯 보여도 골프처럼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다.
그린 위에 올라서면 홀의 의미가 크다. 멀리서 볼 때는 단순한 목표였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신중함과 인내를 요구한다. 삶의 목표도 이루기 직전이 가장 어렵고 마지막 한순간이 가장 큰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이는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마지막 용기를 끌어내기도 한다.
공이 홀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골퍼는 짜릿한 환희를 맛본다. 그러나 곧 다음 홀로 이동한다. 하나의 홀이 끝나면 또 다른 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삶도 흡사하다.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꿈이 생기고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된다. 어찌 보면 삶의 의미는 홀에 공을 넣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홀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홀은 작고 조용하지만, 우리의 발길을 이끄는 존재,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견디게 하는 이유, 그리고 끝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희망의 징표다. 오늘도 각자의 홀을 향해 앞으로 걸어간다. 비록 한 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방향을 잃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 한 우리의 인생 라운드는 계속된다. 홀은 그 자리에 있으며, 삶은 그 홀을 향해 나아가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홀(hole) 그린에 올라섰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공이 벙커에 들어가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했다. 마치 굴곡진 인생 여정을 한 바퀴 돌아 갑년 마루에 선 기분이다. 홀컵까지는 이 미터 오십 센티. 그런데 위치가 아주 애매한 곳이다. 매니저가 방향을 보더니 옆 라이 내리막길 중간이라고 팁을 준다. 홀을 향해 양발 끝을 맞추고 퍼트를 살며시 잡고 홀을 바라본다. 방향만 맞으면 공이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