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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작(수업)

6/ 8 애인의 졸업식/ 나는 나를 부른다

작성자방순자|작성시간26.06.09|조회수22 목록 댓글 0

애인의 졸업식


전학 온 날 주뼛주뼛 걸어오던 예은이의 마음이 이랬을까. 발령받은 학교에 인사하러 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학교에 도착해 전입 교사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며 심호흡을 해본다.


브라운 톤의 둥근 뿔 태 안경, 안경과 색을 맞춘 듯한 정갈한 갈색 슈트 차림. 불현듯 그가 떠올랐다.

“멀리 오느라 고생 많았죠? 양주에서 부천은 멀지. 차 한 잔 마시면서 숨 좀 돌리세요. 지역을 옮기는 거라 힘들겠지만 도와가며 일해요. 전입 자리가 딱 하나라, 무난한 학년과 업무만 비워놨으니 걱정말고.”

세련된 서울 말씨로 반겨주는 그의 태도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렸다.

‘본교 부임을 환영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몸을 막 실었을 때 그가 보낸 카톡을 받았다. 학교 현관 입구에 놓인 환영 입간판 사진과 함께. 며칠 후, ‘오늘이 이삿날이라고 했죠? 먼 거리 이사하느라 힘들겠어요. 이사 잘하고 출근일에 봐요. 파이팅!’ 그가 두 번째 카톡을 보냈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했던 날, 아이 병간호로 조퇴했던 날도 메시지는 계속 도착했다. 일상에 대한 격려와 위로가 담긴 그의 연락에 감사함을 넘어 설레기 시작했다.

“피곤해 보인다. 이거 한 잔 마시고 조퇴해서 아이 하원할 때까지 좀 쉬어요. 아니면 교사 휴게실 가서 쉬든가. 나도 평교사 시절에 애들 보내고 책상 붙여놓고 누워 있곤 했어.”

그는 아이들이 하교한 교실에 들러 커피를 건네곤 했다.

“봄꽃들이 예쁘게 피었어. 꽃구경은 좀 다녀왔어요?”

그의 교실 방문에 마음이 쿵쾅거리던 날 밤,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그와 나란히 걷는 꿈을 꿨다.

“저기, 있잖아... 교감선생님이 자꾸만 카톡을 보내셔. 간밤엔 교감선생님과 데이트하는 꿈도 꿨다니까. 이상한 분 아니지?”

“하하하하”

조심스레 털어놓은 속내에 옆 반 동료는 큰소리로 웃기부터 했다. 부끄러움은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풍선처럼 커졌다.


“선생님도 그랬어요? 저도 그런 꿈을 꿨다니까요.” 다른 직원에게도 그러신다는 토닥임에 호의를 사심으로 오해한 민망함은 저 멀리 날아갔다.

그는 남달랐다. 대접받고, 지시를 내리기만 하는 직장 상사가 아닌 친절한 선배의 모습으로 교사들을 대했다. 육아로 허덕이는 후배들에게는 자녀들의 안부를 물었고, 어린 교사들의 근황도 살뜰히 챙기셨다. 권위적인 관리자들에게 시달리면서 생각하셨단다. 본인이 승진하면 근무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겠다고.

3년간의 호시절 후, 눈물바다가 된 송별식을 끝으로 만인의 연인이었던 그를 보냈다. 이듬해 나도 새 발령지로 떠나면서 그곳에서 만난 동갑내기 동료들과 ‘소소(소이초 소띠들)’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소소’가 만나는 날, 가끔 교감 선생님을 초대해 연을 이어 갔다. 모임에 오셔서 우리만의 시간을 확보해 주느라 늘 먼저 자리를 뜨셨다. 정확히 선을 지키시는 모습에 어떨 땐 아쉬움이 컸지만 그래서 그를 더 추앙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교장으로 영전해 가신 학교로 찾아뵐 때, 교장이 되면 묵언수행을 하겠다는 말씀을 기억하시라는 의미로 ‘X’가 그려진 마스크를 선물했다. 다음날 바로,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는 셀카가 도착했다. 역시 그다웠다.

2023년 여름, 외롭게 버티다 간 새내기 교사의 부고를 시발점으로 몇만에서 몇십만의 검은 점들이 주말마다 모여 교권 회복을 부르짖던 때였다. 49재 추모식에 맞춰 9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교육 당국에 교권 보호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일시에 출근하지 않는 날)로 정하고 교육청과 교사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는 ‘교장’이라는 자리 때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참담한 심경과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 아침 ‘소소’ 단톡방에 글과 음악을 올리며 하루를 열어주신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빼곡해 스스로 돌보기가 뒷전이었던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 준, 그는 어른이었다. 빠르게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느리고 서툰 이들에게 손 내밀어 함께 가려는 고마운 사람. 함께 손잡고 세상을 고르게 나아가게 만드는 다정한 사람. 교사로의 삶이 삼십 년 가까이 되니 ‘어떤 동료여야 하나’라는 고민이 고개를 든다. 나도 자신을 돌보는 데 소홀한 일벗들에게 어른이 돼줄 수 있을까.

그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의 여유이다. 그의 명언 ‘대강, 열심히 하세요’는 다방 면에서 모범이 돼야 하고, 주어진 과제해결에 최선을 다하려는 교사들에게 숨 쉴 틈을 마련해 주었다. 이미 잘하고 있으니 자아성찰 그만하고, 스스로 토닥이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도 해 주신다. 그가 건넨 인사와 유쾌한 농담은 빳빳한 학교생활에서 받은 상처를 아물게 한다. 그의 입김으로 말랑해진 마음은 뾰족한 민원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을 가진다. 그의 메시지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현재진행형이어서 감사하다.

그의 카톡 프로필, retirement D-119. 애인의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럴듯한 졸업식으로 그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아보자는 모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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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부른다 ***


그러나 나의 길은 영화처럼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않았다. 결혼에서 걸어 나온 뒤의 삶은 처음부터 거칠고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가장 무겁게 다가온 것은 결국 삶의 현실, 경제의 문제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두 아이의 학비를 위해서 쉼 없이 일해야 했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노동은 몸과 마음을 조금씩 지치게 했다.

그 와중에도 사진은 여전히 더 많은 시간과 배움을 요구하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이론과 이미지가 쌓여 있었지만, 손끝은 좀처럼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빛은 늘 예상보다 빨리 지나갔고, 순간은 내가 준비되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자주 한 박자 늦었다.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이미 장면은 흘러가 버렸고, 남겨진 것은 어딘가 미완처럼 느껴지는 사진들과 서툰 나 자신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너무 늦게 길을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이론들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되었다. 잘 찍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서서히 멀어지자, 나는 카메라 뒤에 숨어 있던 내 마음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한 풍경 작가를 따라 빛과 바람이 머무는 자리들을 오래 걸었다. 새벽안개가 스치는 강가와 해 질 무렵의 바다, 이름 없는 들판 위를 지나며 나는 풍경을 배우기보다 그 안에 머무는 법을 배워갔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동안, 오래 잊고 지냈던 내 감정들도 어느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수의 일출을 만나기 위해 새벽 두 시, 아직 어둠이 짙게 남아 있는 길 위로 차를 몰고 나선 적이 있었다. 졸음과 피로에 잠긴 채 도착한 바다에는 희미한 파도 소리만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평선 위로 첫 빛이 떠오르던 순간, 나는 이상하리만큼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빛은 사진보다 먼저 내 안을 비추고 있었다. 셔터를 누르면서도 문득 알게 되었다.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눈앞의 풍경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빛 속에서 흔들리던 내 마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 내리던 겨울의 대관령 목장에서 나는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흰 눈은 어깨 위에 내려앉고, 속눈썹 끝에 맺히고, 마침내 마음 깊은 곳까지 천천히 스며들었다. 눈 덮인 들판은 숨조차 죽인 듯 고요했다. 멀리서 들려오던 바람 소리마저 희미해진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아주 선명하게 내 안의 침묵을 듣고 있었다.


계절은 그렇게 천천히 흘러갔다. 봄의 옅은 숨결과 여름의 눈부신 빛, 가을의 낮고 깊은 호흡과 겨울의 긴 침묵을 지나며 나는 오래 길 위에 머물렀다. 카메라를 들고 걷는 시간은 언제나 바깥세상을 향해 있는 듯했지만, 결국 그 길은 다시 내 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어떤 순간은 빛으로 남았고, 어떤 순간은 오래 숨겨두었던 내 마음의 얼굴로 남았다. 그렇게 한 장, 또 한 장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흐릿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나는 그 시간들 속에서 천천히 윤곽을 되찾아갔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붙잡은 것은 풍경이 아니라, 빛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던 나 자신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 찰나처럼 스쳐가는 빛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았고,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는 일이 마침내 자연스러워졌다. 오랫동안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만의 호흡으로 장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끝내 붙잡고 싶었던 것은 세상의 풍경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사진은 단순히 풍경이나 이미지를 담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잊고 지냈던 나에게 천천히 닿아가는 길이었고, 닫혀 있던 내 안의 시간을 열어주는 하나의 문이었다.

곧 개인전이 열린다. 조용히 문을 여는 그 공간에서, 나는 오래 미뤄두었던 내 이름을 천천히 불러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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