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합평작(수업)

6/ 15 아버지의 말/ 공짜라예

작성자방순자|작성시간26.06.09|조회수27 목록 댓글 0

아버지의 말


전화벨이 어둠을 찢는다. 새벽 네 시다. 남동생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세상이 기우는 것 같고 아득해진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허겁지겁 옷만 걸치고 차에 오른다. ‘아버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늘을 향한 기도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오늘따라 병원이 멀기만 하다. 문을 열자 병실이 고요하다. 숨을 이어주던 산소 소리가 들리지 않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줄도 보이지 않는다. 목 놓아 아버지를 불러보지만, 평온한 얼굴로 잠잠히 계셨다. 오늘은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아버지와 마지막 며칠을 함께 할 곳이 마련됐다.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시골에서 이웃분들이 찾아오셨다. 팔십 평생 살아온 고향을 병환으로 떠나오신 아버지, 고향 분들을 보고 반가워하실 것 같아 영정 사진을 올려다본다. 늘 그랬듯 말없이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보고 계신다.

평소에도 말수가 별로 없으셨던 분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말하기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한 얘기의 끝부분을 다시 말하며 맞장구를 쳐 주셨다. 어디서나 사람 좋다는 말을 들으셨지만, 나는 본인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아버지가 못마땅하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경청과 공감이 어떠한 말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큰 힘이었던 것 같다. 가끔 내 주장을 내세우고 말이 많아질 때면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가 팔순 되던 해, 파킨슨증후군1) 으로 자주 넘어지고 걷기가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을 남동생 집으로 모셔왔다. 우리 사 남매는 당번을 정해 24시간 곁을 지키고 돌봐드렸다. 일평생 탁 트인 시골집에서 논밭을 오가며 지내던 아버지에게 상자 같은 아파트 생활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고 거실을 오가는 것이 전부였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셨을까. 아버지는 “너희가 애쓴다, 고맙다.”는 말씀만 하실 뿐, 힘들다는 내색 한번 없이 늘 웃음으로 대신하셨다.


아버지는 죽을 삼키기 어려운 상태에서도 자꾸만 졸고 기운을 잃어가는 엄마를 걱정하셨다. 식사가 끝나면 우리에게 손수 커피를 타 주셨던 아버지가 이제는 휠체어에 앉아 설거지하는 내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신다. 내가 앞치마를 풀면 기다렸다는 듯 빙그레 웃으신다. 딸에게 보내는 산책 요청이다. 산책길에 아버지는 들꽃을 꺾어 달라고 하신 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건네셨다. 엄마는 아버지의 휠체어 바퀴에 묻은 흙먼지를 닦아주시는 것으로 화답하셨다. 이내 두 분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고 휠체어를 밀어 산책하던 우리의 하루하루에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6년, 하나둘 스위치가 꺼지듯 아버지의 몸이 멈춰 갔다. 몇 달 전부터는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숨쉬기조차 힘들어하셨다. 산소발생기로도 우리의 정성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아버지와 집에서 함께하려던 우리의 시간은 거기서 멎었다. 거동을 못 하고, 가물가물한 기억이 그날그날 다른 엄마는 아버지와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요양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잡고 있던 내 손을 가만히 빼고는 고개를 돌리셨다.

하루가 멀다고 병원에 갔다. 목소리까지 불이 꺼지고 아버지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손 하나였다. 매번 눈으로 끌어안듯 바라보시며 내 손을 잡아주셨다. ‘엄마는 잘 있니? 나 아직 힘이 있단다. 걱정 마렴.’ 손을 꼭 쥐었다 놓았다 하며 아버지는 왼손으로 말씀하셨다. 눈빛과 손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대화는 두세 시간이 짧기만 했다. 누워 계신 엄마의 저녁을 챙기려 일어설 때면 시간이 야속했다. 또 오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하고서야 겨우 아버지 손을 놓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손을 들어 배웅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나오면, 시린 겨울이 눈물바람을 데리고 따라붙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수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마음을 전함에 있어 내 안의 언어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다. 때로는 그것들이 상대방에게 가닿지 않을 때도 있다. 세련되고 멋진 말보다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빛, 소리 없이 번지는 웃음, 가만히 잡아주는 손길이 더 깊은 울림으로 전해져 오래 남기도 한다. 아버지의 말처럼. 그 말들이 아직도 내 안에 있어 따뜻하다.

바람이 보드랍고 햇살이 좋아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힐끗 휠체어를 바라보지만, 주인 잃은 뒤로 더는 바퀴를 굴리지 않는다. 아버지와 다니던 산책길을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본다. 꽃샘바람이 속을 훑고 지나갔는지 자꾸 어깨가 들썩인다. 올해도 봄꽃이 화사하게 피었는데, 혼자 걷는 길이 외투를 벗은 것처럼 허허롭다.


봄볕이 아버지 손길처럼 따뜻하게 내 등을 감싸 준다. 엄마에게 줄 꽃 한 가지를 꺾어 다시 걸음을 옮긴다.

1) 파킨슨증후군 : 파킨슨병과 유사한 질환으로 근육의 강직 현상 등이 주요 증상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ㅡㅡㅡ
공짜라예


“참외 다 먹었나?”

변함없는 남편의 안부 전화에 노란빛이 번진다. 이미 몇 달 전에 사 온 참외가 남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는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단번에 알려준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뻐꾸기 울음이 들리기 시작하던 때의 성주로 돌아간다.

이른 봄, 참외 농사를 짓는 한 농가를 찾았을 때였다. 바깥은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데 비닐하우스 안은 후끈했다. 그 안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계절은 한 발 앞서 있었다. 과일을 포장하는 창고 안. 작은 상 위에는 막걸리 한 주전자와 파란 나물무침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술을 좋아한다는 부부는 아침부터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술기운으로 일한다 아잉교.”

아저씨는 활짝 웃으며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오랜 노동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안주라고는 나물무침뿐이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넉넉해 보였다. 참외를 사러 왔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바구니와 과도를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가져가는 건 돈 받고, 여기서 먹는 건 공짜라예.”

그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갓 수확한 참외를 서너 개 깎아 먹었다. 아삭함과 함께 달콤한 과즙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눈길은 참외보다 나물무침으로 더 자주 향했다.

“촌에는 술안주가 만날 풀 뿌입니더.”

아저씨는 불평하듯 말했지만, 내 눈에는 그 나물이 봄의 진수성찬처럼 보였다.

맛있어 보인다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창고 한쪽으로 총총걸음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오늘 새벽에 따온 건데 가져가서 잡술란교?”

그 안에는 한 잎 한 잎 따 모았을 귀한 새순이 가득하다. 개두릅이라고도 부르는 봄나물이었다. 나는 참외 한 박스를 사고 엄나무순은 선물로 받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나물을 데쳤다.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접시에 담는 동안 향긋한 봄 내음이 집안 가득 퍼졌다.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에 번졌다. 한 젓가락 집을 때마다 성주의 농부 부부가 떠올랐다. 그들은 계절을 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새벽 공기의 냄새로 봄을 알고, 땅의 온도로 작황을 짐작하며, 익어가는 참외를 보며 시간을 헤아린다. 뜨거운 하우스 안에서 흘린 땀으로 한 해를 일구는 삶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작은 체구에 까맣게 탄 얼굴로 환하게 웃던 아주머니, 창고 벽 곳곳에 꽃 그림을 붙여 놓고 소녀처럼 웃던 모습, 그리고 새벽 산길에서 따온 귀한 순을 아낌없이 내어주던 손길이 생각났다. 엄나무순은 분명 나물이었지만 내게는 봄을 담은 선물이었다.


도시에 살면서 핸드폰 몇 번 두드리면 원하는 물건이 다음날 문 앞에 도착한다. 부족한 것이 없는 편리한 세상에서 넉넉한 마음과 서로에게 전달되는 인심은 배달되지 않는다.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인정이 빠져버린 시기에 잊어버릴뻔한 귀한 물건을 손에 넣은 기분이랄까.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아마도 그들이 가진 것은 넓은 땅이나 많은 수확이 아니라 소박한 마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외를 키우면서 사람의 정까지 함께 키우는 사람들. 귀한 엄나무순 한 봉지를 선뜻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 혼자 앉아 나물무침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풍요롭고 행복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음식의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농부 부부의 정성과 시골 인심이 함께 담겨 있었다.

아껴 먹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엄나무순 무침은 이틀 만에 바닥을 보였다. 빈 접시에는 나물 대신에 기억을 담았다. 나물의 맛은 조금씩 흐려졌어도 그것을 건네주던 사람들의 표정만큼은 여전히 선명하다. 늦은 봄, 참외 철이 끝나갈 무렵에 남편의 전화기 속에서 추억을 꺼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참외 다 먹었나?”

남편의 전화를 끊고 나니 창고 한편에 조촐한 술상 앞에서 웃고 있던 그들의 표정이 아른거린다. 내년 봄에도 그곳에 가게 될 것 같다. 엄나무순의 향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무는 봄이 되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