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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작(수업)

6/ 22 척 척 척/ 너희도 글쓰느냐

작성자방순자|작성시간26.06.17|조회수20 목록 댓글 0

척. 척. 척.


두어 칸씩 타닥거리며 계단을 뛰어내려 겨우 지하철에 올라탄다. 문이 닫히고 나면 그제야 숨이 "후유" 하고 터져 나온다. 본능적으로 빈 좌석을 스캔한다. 하지만 이미 빽빽한 승객들로 만원이다. 문 옆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비좁은 공간의 어색함을 달래려 눈 둘 곳을 찾는다.

결국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시선을 고정한다. 일단 클릭. 습관적으로 익숙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한다. 손가락은 피드 위아래를 기민하게 훑어 내리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곤충의 더듬이처럼 어느 칸, 어느 고비에서 빈자리가 날 것인가를 추적하는 인간 레이더망이 가동 중이다.

가방을 고쳐 메는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는가, 고개를 들어 안내 전광판을 보는가. 신경은 온통 앞에 앉은 사람들의 미세한 움직임에 쏠려 있다. 겉으로는 스마트폰이라는 투명 망토를 걸치고 세상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치열한 눈치 싸움이 한창이다.

몇 개 역을 지나쳤을까. 안내 방송이 나오고 승객이 하차한다. 환승역을 지나며 밀도가 낮아진 차 안을 휘 둘러보니 여기저기 빈 좌석이 눈에 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흔들림이 시작된다. '잠시 앉아 갈까, 말까.' 짧은 갈등 끝에 오기가 동한다. 에라, 그냥 이대로 서서 가자.

바로 앞 좌석이 비어준다면 세상 여유로운 표정으로 안착하련만, 조금 떨어진 곳이 빌 때는 상황이 묘해진다. 자리를 빼앗길까 봐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멋쩍은 탓이다. 앉고 싶은 번민과 폼 잡고 싶은 자존심이 갈등하고 있는 찰나, 내 또래의 여성 한 분이 경보 수준으로 걸어가 잽싸게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문득 지하철에서 흔히보는 진풍경이 떠오른다. 빈 좌석이 저 멀리 보이기만 하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가방부터 던지고 보거나 후다닥 뛰어가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 말이다. 젊은이들 눈에는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직진하는 억척스러운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선의 가면을 쓰느라 속을 태우는 나에 비하면, 차라리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몸을 던지는 그들이 어쩌면 훨씬 더 날것의 인간적인 모습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친다.


그러고 보니 언제인가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도 생각난다. 어떤 이는 앉아 있는 사람 앞에서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나. "이 사람은 다음 정류장에서 일어난다 일어난다 일어난다." 마법처럼 되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에 한참을 웃었다. 그 지인은 내 몸 상태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때, 이 비법을 쓰라며 농담같지만 웃기면서도 슬픈 조언을 덧붙였다.

그 간절함을 떠올리다 보니, 정작 내 내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음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 자리를 찜해 두었으면서, 몸은 미동조차 않는다. 서두르지 않는 척, 비어 있는 좌석 따위엔 연연하지 않는 척, 고고한 척을 해댄다. 이 무슨 가소로운 이중성이란 말인가.

내 나이가 몇인데, 그까짓 자리 하나에 연연하랴 싶다가도 픽 웃음이 난다. 꼴에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인 모양이다. 체면과 고집 사이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버텨줄 수 있는 한은 이 정도의 귀여운 자존심은 지키며 살고 싶다. 적어도 지하철 좌석 사수에 목숨 걸지 않는, 조금은 쿨하고 멋진 '나'로 남고 싶으니까.

목적지에 도착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문을 나선다. 비로소 오늘 하루의 궤도에 진입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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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글 쓰냐


쾅쾅 카카강 카르릉. 또 시작이군.

굴착기가 아스팔트 바닥을 끌어대는 소리에 찌릿찌릿 뒷머리에 소름 돋는다. 아파트 뒷길 하수도관(下水道管)을 매설하는 공사 한 곳을 삼 개월이 지나서 재시공(再施工)하는 거다.

아침부터 수필 쓰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소음이 너무 심해서 정신 집중이 안 된다. 소음을 피하여 바람이나 쐬고자 밖으로 나섰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흙먼지가 날린다. 가로수 녹음이 우거진 거리를 따라 생각 없이 걷다가 카페에 들어갔다. 노트북이라도 있었으면 카공족이 될 것인데, 빈손으로 나왔다. 커피 한 잔 시켜서 창가에 앉아 언덕 위 숲을 바라본다. 뻐꾸기는 새끼에게 밤새 잘 있었냐고 말하는 듯 울어댄다.

오후 다섯 시가 지나서 집으로 오니 여태 공사 중이다. 오늘은 온라인으로 수필 합평하는 날이라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사는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시끄럽다. 다시 밖으로 나가 직접 공사 현장 옆에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이제야 터파기한 좁은 통로를 따라 맨홀과 배수관을 연결하고 있다.

내일은 비 예보가 있어서 오늘 밤으로 마무리하려는 모양인가 보다. 굴착기들의 불빛을 받으며 작업 인부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열한 시 반이 지나서야 작업이 끝났는지 조용하다. 자정이 지나서 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자정까지 소음을 피하느라 피곤한 몸으로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조용하게 잠을 잘 수 있으니 다행이다.

새벽에 눈을 떴다.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생각을 가다듬는다. 무언가 빠진 것 같아 싸-한 느낌이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 반. 헉- 수필 합평하는 시간이다. 오늘이 화요일…? 정신이 몽롱하여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어제 합평 시간을 잊어버렸다. 그놈이 굴착기들 소음 때문이었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어디 누구에게 말도 못 하겠고, 혼자 어디에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생활 하수도관을 주배수관하고 접속하는 삼십여 미터 구간의 재시공은 온종일 걸린다. 월요일에 시작하여 하루 건너뛰고 수요일 목요일까지 삼 일간에 걸쳐 공사를 반복하고 있다. 한 번에 끝내면 될 것 같은 단순한 작업으로 보이는데, 어찌하여 저리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는가 이해할 수가 없다. 재시공할 때마다 기존의 흙과 자재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자재와 흙으로 되메워서 마무리한다.


하수도관 매설은 터파기, 맨홀 설치, 배관 연결, 구배(勾配) 조정 및 접합, 되메우기, 다짐, 마감으로 이어진다. 시공 후에 배수관의 막힘과 접합(接合) 부위의 누수를 점검한다. 재시공 첫째 날은 맨홀에 균열이 생겨서 교체했다. 둘째 날은 아파트 오수관하고 맨홀의 접속에 틈이 생겨 배수관을 교체했다. 셋째 날은 배수관 연결과 기울기가 맞지 않아서 재시공한다. 배관과 맨홀의 접합과 배관끼리의 연결은 누수와 직결되고, 배관의 기울기가 맞지 않으면 오수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 어느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반도체 공장의 수율을 높이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과 많은 인력을 투입하여 생산공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아파트의 생활하수를 배출하는 오수관은 누수가 되지 않아야 하고, 냄새가 새어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정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한정된 예산으로 재시공을 반복한다. 공사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십여 명의 인원은 각자는 맡은 분야에서 일사불란하게 일을 처리한다. 재시공 작업이 늦어 밤늦게까지 이어져도 어느 한 사람도 허투루 하지 않고 각자는 맡은 분야에 완벽하게 일을 마치려고 한다.

공사장 소음 때문에 수필 합평 시간을 놓쳐서 은근히 부아가 났다. 이제 남 탓하면서 글쓰기에 소홀했던 나를 되돌아본다. 삼 개월 동안 수필 한 편을 쓰려고 컴퓨터에 매달려 왔다. 밤낮으로 쓰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나 제대로 된 글이 되지 않았다. 공사 현장에서 각자 맡은 분야를 순서대로 정확하게 처리하는 걸 보았다. 내가 글을 쓰고 수정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것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전문가다. 너희들도 글을 쓰냐. 수필 한 편을 마무리하면서 남 탓하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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