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창의倡義 결의
“나으리….”
떨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급히 잔을 들어 첩의 입술에 댔다. 물은 곧 흘러내려 뺨과 목을 적실 뿐, 입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렇게나 힘이 없구려….”
그녀의 눈꺼풀이 무겁게 열렸다가 이내 다시 감겼다.
“…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녀의 손끝이 미약하게 내 손을 더듬었다. 차가운 기운이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 손을 힘주어 감쌌다.
“제발 버텨 주시오.”
그녀는 대답 대신 가느다란 숨을 내뱉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그 숨소리는 더 선명히 들려왔다. 누군가를 부르는 듯, 낮은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나는 귀를 기울였으나, 꿈속의 메아리처럼 흐릿할 뿐이었다. 밖에서는 마을 소식이 불길한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두려워 마시오. 내가 함께 있소.”
손가락 사이로 전해지던 맥박은 자꾸만 희미해졌다. 나는 의술을 기대하지 않았다. 약은 다 떨어졌다. 캐 온 풀과 뿌리도 그녀를 붙들어두지 못했다. 나는 염불을 어눌하게 읊조렸다. 옛이야기를 더듬어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면서도, 마음은 그 작은 위안이라도 소중했다.
그녀의 눈빛이 한 번 나를 찾아 머물렀다. 그 순간 모든 말이 사라져 버렸다.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이 마주한 시간이 흘렀다. 말로는 위로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체온으로 대신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 수 있을지 몰랐다. 이 실패와 슬픔을 누가 기억해 줄지도. 전란은 생명을 앗아갈 뿐 아니라, 사람의 이름마저 쉽게 잊히게 만든다. 나는 그 이름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적향敵響이 산허리를 울렸다. 그 기세가 너무도 가까워, 뒷산으로 몸을 피했다. 그 짧은 오르막 동안, 마음은 이미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라가 기울 때, 한 사람의 생명은 얼마나 가벼운가. 그 가벼운 생명을 지켜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잠시 숨을 돌린 뒤, 나는 불운암으로 내려가 집안 어른에게 문안을 올렸다. 피난의 길 위에 몸을 누인 어른의 안부를 묻는 일, 그것만은 잃어서는 안 되는 마지막 도리였다. 가문의 뿌리는 지켜야 한다는 조촐한 의지였다.
하필이면 이날이 내 탄생일이라 했다. 집안 아이들이 부랴부랴 떡을 빚어 친척들께 조금씩 돌렸다. 그마저도 쌓인 재 속의 마지막 불씨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한 잔 술로 세월을 달랠 겨를도 없었다. 전란이 사람을 어디까지 군속窘束하게 하는지 알 만했다. 생일을 생일로 여기지 못하는 날, 삶의 일상이 사라졌음을 절감했다.
나는 떡 한 조각의 온기에 잠시 안온했다. 살구나무 가지에 남은 빛 한 점처럼 아슬한 온기였다. 이 작은 온기가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리라. 왜적의 칼끝은 성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이 떡의 의미까지는 거두어 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서로를 잊지 않았다.
왜적의 괴상하게 내지르는 함성에 황급히 뒷산 고개로 몸을 피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불길 냄새가 목을 죄듯 따라왔다.
점심을 간단히 들고, 나는 부인사 쪽으로 향했다. 전날의 혼란스러운 소식 탓에 밤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사람들과 뜻을 하나로 모아야 했다.
부인사 앞뜰에서 이경임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이야기할 수 있겠소?”
우리는 사찰 뒤편 작은 정자 그늘로 들어가 앉았다.
“얼굴이 수척해졌소. 그새 잠은 좀 잤소?”
“잠이 어디 있겠소. 적의 기세가 저리도 사납게 몰아치는데.”
“의병을 모으는 데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오.”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겠소.”
“문서를 정리하고 연락을 잇는 일을 하시오. 고을 어른들과의 조정도 맡아줄 수 있겠소?”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움직이겠소.”
“그대 같은 이들이 있어 마음이 놓이오.”
“부사께서 의병을 언짢아하시는 게 마음에 걸리오.”
“관군과 의병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되오. 서로 의지할 눈이 있어야 하오.”
나는 이경임의 부사에 대한 불만을 눌렀다. 서로의 등만 바라보고 싸우는 일은 허망한 짓이었다.
부인사의 종각 너머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 빛조차 전란의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했다.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었다. 이경임이 돌아간 후 법당 안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꿈을 꾸었다.
“저 독충들 좀 봐! 저기서 또 기어 나오네!”
죽은 백성의 몸뚱어리에서 검은 독충이 꿈틀거렸다.
“안 돼! 죽여라, 어서!”
손으로 쓸어내고, 발로 밟아도 독충은 죽지 않았다.
“저 꼬물거리는 것 좀 봐.”
“사람이 아니라, 독충이었구나!”.
독충들이 계속 백성들의 몸으로 달려들었다.
“아무에게나 붙어라! 피를 빨면 살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몸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독충들이 그 피를 핥았다.
“독충일 뿐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나 그 소리는 아무도 듣지 않았다. 멀리서 흉측한 투구를 쓴 왜장 독충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놈이 원흉이다!”
나는 왜장 독충에게 달려들었다. 칼끝이 달빛을 스쳤다. 좁쌀만 한 졸병 독충들이 내 팔과 다리, 목덜미에 달라붙었다.
“떨어져라! 떨어져!”
나는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독충들은 내 피를 빨며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멀리서 아낙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희미하더니 점점 커졌다. 달래지지 않을 울음이었다.
나는 비로소 눈을 떴다. 식은땀이 흘렀다. 밖은 고요했다. 내 귓속에는 아직도 아낙네의 울음이 남아 있었다. 밤은 깊었고, 괴괴한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이번 난리는 조선이 허를 찔린 것이네.”
“허라니?”
“주상을 둘러싼 조정의 무능이지.”
“당쟁을 말하는가?”
“동인이니 서인이니 하는 사이에 팔도 백성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권력 다툼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는가.”
“다툼도 다툼 나름일세. 나라의 근본까지 흔들어버리니, 이 왜란 하나 이겨 내지 못하는 거잖아.”
“자네 말조심하게. 시골 샌님 주제에 주상과 조정을 능멸하다니.”
“쉬쉬하다가 이 꼴이 났잖는가?”
“허허 이 사람, 점입가경일세.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네.”
이 비상시기에 망언이었다. 나는 그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안면 있는 유생이라면? 아무래도 모르는 게 나을 듯했다.
나는 또다시 잠이 들어 꿈꾸었다. 왜적의 말이 품어대는 더운 입김이 내 얼굴 위에 뿜어졌다. 적장의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온몸이 굳었다. 연기와 불이 동화사 쪽으로 크게 번졌다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날이었다.
첩의 숨소리가 한나절에 걸쳐 가늘어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멎었다. 나는 모든 것이 꿈이 아니란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잔인하리만큼 큰 슬픔이 내 안에 내려앉았다.
경성에서 만나 쌓았던 정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이제 와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이 한 줌의 재처럼 남았다. 4년 전의 희롱과 달콤함 그리고 지금 한여름 공산에서 맞이한 이별이 서로 겹쳤다.
깊은 산의 궁벽한 골짜기에서 하나의 영혼이 홀로 남았다.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인지 형벌인지 알 수 없었다. 첩은 의지할 혈육도 없이 떠났다. 연민이 실꾸리처럼 엉켜 말로 풀 길이 없었다.
이 난리 가운데 누가 죽음을 면하랴. 차이가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남은 자가 있어 마지막을 장례와 기도로라도 돌본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처럼 떠난 이는 무연無緣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돌과 흙과 늙은 나무가 그녀를 덮을 때, 그녀를 위해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했다.
첩의 상여가 공산 줄기 아래 가사항으로 떠났다. 그곳은 선산이었다. 나는 그녀를 증조모의 묘 아래에 묻어라 했다. 가문에서 그보다 높은 자리는 없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존귀였다.
장례를 치른 노배가 돌아와 광중이 깊지 못했다고 말했다. 딱딱한 돌 층을 만나 더 파지 못했다. 왜적의 기세가 가까워 초초히 덮고 돌아왔다. 그녀를 위해 파야 했던 깊이만큼, 내 마음도 깊어져야 했는데….
저녁 무렵, 짧고 굵은 소낙비가 내렸다. 견불암으로 올라가 잠잘 보따리를 풀어놓으려던 계획도, 내일을 생각하려는 마음도 모두 그 비에 젖었다. 나는 비를 막을 생각도 못 한 채 산길을 올랐다. 희미한 저녁 빛 사이로 물기 가득한 흙길이 미끄러웠다. 발끝마다 떠나보낸 이의 체온이 묻어나는 듯했다.
견불암 서쪽 초막에 도착했을 때, 비는 이미 그쳤으나 내 마음의 물기는 좀처럼 마를 기미가 없었다. 그날 밤, 초막의 젖은 지붕 아래에서 나는 오래도록 눈을 감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내 삶의 아래층 증조모 곁에서 말없이 쉬고 있다. 나는 그 위에 서서,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스러운 밤을 견딜 뿐이다.
“듣자니, 왜적이 여염에 대나무를 쭉쭉 나열하고 있다더이다.”
대나무라 했다. 잘 마르면 불붙기 쉬운 나무. 불 속에서 탕탕 터지는 소리에 모두가 도망갔다. 민가 둘레에 그 대나무를 쌓아두고 불을 지를 참이라고도 했다. 더러는 믿었고, 더러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향교에는 감옥을 지었다오. 저 쳐 죽일 놈들이 말입니다.”
“우리 선비들 학문하던 곳에 포승줄을 매단다더군요.”
누가 처음 그 말을 꺼냈는지는 모른다. 그 말은 순식간에 사람들 입속에 눌어붙었다. 그곳이 이제는 악취 나는 감금소가 되었다. 경서의 울림 대신 포박의 신음이 번졌다. 향교가 무너졌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소식이 있었다.
“왜장의 이름이 대구쉬라나, 경상도주라나. 자기가 이 땅의 주인이라 하더이다.”
다들 헛웃음을 쳤다. 하지만 아무도 그 웃음을 탓하지 않았다. 조정은 멀고, 왕의 이름조차 들리지 않았다. 병사들은 하룻밤 사이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대체 누구의 땅인가. 누구의 이름이 더 옳은가? 이제는 누가 주인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가끔 여인을 잡으면, 대나무 상자에 가둔다오.”
“낮이면 꺼내서 논밭을 매게 한다더이다.”
그 말을 듣자, 부녀자들은 눈을 내리깔았다. 아이를 안고 자리를 옮기는 여인도 있었다. 남편의 팔을 꼭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 말을 믿는다고는 하지 않았다. 두려움은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었다. 밤마다 뒤척이는 이유는, 그럴 수도 있다는 망상 때문이었다.
“밤나무 숲을 모조리 베었다 합니다. 그것으로 왜적의 병영 울타리를 만들었답니다. 난간을 치고, 아예 성처럼 둘러쳤다더군요.”
밤나무 숲은 가난한 자의 장작이었다. 아픈 자의 약재였고, 아이들의 그늘이었다. 그것이 모두 잘려 왜적의 둥지가 된다는 말이었다.
“그게 뭐 별거야? 백성들이 풀 베듯 베어지는 판에.”
눅눅한 움막 안에서 사람들의 입술은 굳게 다물렸다. 귀는 계속해서 소문을 낳는 소리 쪽으로 열려 있었다.
부인사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사내 몇과 함께 걷던 중이었다. 그 중 촌로하나가 ‘이 고개 너머에 미라점이라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내게 익숙한 피난처이자 사족들의 회합처라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점店’ 자를 그의 손바닥에 써 보였다. 나는 그것이 암자인지 주막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그가 말을 덧붙였다.
“예전엔 장사꾼이 묵었지요. 행색 허름한 중도 들었어요. 지금은 비었을는지 모르겠소.”
미라점은 산길 옆에 난 낡은 초가집이었다. 처마 끝에 누군가 걸어 놓은 마른 주걱이 바람에 흔들렸다. 안으로 들어서면 불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앞에 재만 남은 향로가 보였다. 아마도 주막이었다가 숙소로 바뀌었을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세상에 등 돌린 이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말을 아꼈다. 함께 묵게 된 사람들 가운데 누가 더 피곤했는지, 누가 더 오래 굶었는지 묻지 않았다. 가끔 마당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다시 그 소리를 흙바닥 밑으로 묻었다. 불빛 아래에서 종이를 꺼내고 붓을 들었다.
‘미라점에 투숙하다.’
이 한 줄이면 족했다. 더 길게 쓰고 싶지는 않았다. 산은 침묵했고, 밤나무잎은 저 스스로 바닥에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이 밤을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