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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

시간은 쉬어가지 않는다

작성자박종국|작성시간26.06.06|조회수29 목록 댓글 0

시간은 쉬어가지 않는다

 

 

  송나라 성리학자 주자(朱子)의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 권학문(勸學文)에 실려 있다는 시구가 떠올랐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하니,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은 이루기 어렵나니).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인데, (아직 못가의 봄풀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이라. (어느덧 세월은 빨리 흘러 섬돌 앞의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느니라.). 시간만큼 귀중하면서도 허무한 것도 없지 싶다. 시간 앞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 보이면서 또 시간 앞에 모든 것이 묻혀버린다. 덧없는 세월이다. 엊그제 가을에서 겨울 지나 다시 봄이 오고 있다.

  높은 곳에 있다고 항상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낮은 곳에 있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흙 속에 묻힌 씨앗이 훈기가 감돌면 새싹을 틔워 제 몸의 수십 배나 되는 흙더미를 치받고 올라온다. 자연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거짓을 모르는 순수함이다. 힘겨워도 괜찮은 척하는 것일까. 저마다 사연도 많고 불만으로 팽배하고 부족해도 그 속에서 만족을 찾으며 지냈으면 한다. 서로 보완하고 다독이면서 나름 균형을 이루며 아옹다옹 살아간다. 아슬아슬한 것 같아도 견고하고 아무 일 없지 싶어도 실핏줄처럼 살짝 금이 가며 모른 채 잘 지나간다. 이렇게 삶이 완벽한 것 같아도 불안한 구석이 있을 수 있어 언제든 변화하고 어느 날 한순간인 것처럼 뒤바뀔 수 있어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맨날 괜찮다고 하지만 정말 괜찮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실 같은 거짓이 숨어 있으며 당연시하고 받아들인다. 욕심은 푸나무가 자라듯 자꾸 자라고 번지며 늘어나려고 안간힘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자신은 아니라고 내려놓았다고 하면서 막상 하는 짓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그게 삶의 습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도 문제라고 쉽게 넘겨버린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삶의 질이 곧잘 달라지기도 한다. 지나치면 오히려 손해가 되고 적당하여 즐거움에 윤기가 흐르기를 바란다. 옳고 그름을 가리기가 마음처럼 쉽지를 않다. 너나없이 잘못됨에 변명을 늘어놓으며 합리화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것은 괜찮아 당연한데 남이 하는 것은 못 봐주는 ‘내로남불’ 이다.

  요즘은 집 앞을 흐르는 버드내가 좀처럼 얼지를 않는다. 겨울방학이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썰매를 탔다. 성시를 이루며 야단법석이었다. 얼음판에서 팽이를 치기도 하고 아주 어린 아이는 부모가 썰매를 끌고 밀어주기도 하였다. 약삭빠른 상인의 포장마차에 먹을거리로 신바람 나는 축제장이 되어 흥을 돋웠다. 그런데 근래는 썰매를 탈 만큼 냇물이 얼지를 않는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춥지 않은 것이다. 사라진 풍경을 마치 먼 이야기로 전해 오는 것처럼 추억이 되어 은근히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아이들이 북적거리던 얼음판 대신 오리가 먹잇감 찾아 물속을 드나들며 어른들은 강아지를 토닥토닥 끌어안고 산책을 즐긴다. 잦은 미세먼지가 몰려들어 씁쓰레한 표정 짓는다.

  그런데 시간을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다. 말로는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한다.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막상 할 일이 없다고 하면서 자투리 시간이라고 대충대충 넘긴다. 시간관념이 아주 희박하다. 약속 시간을 보면 더 가관이다. 10분 아니 30분쯤 어기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만큼 시간을 은연중 빼앗고 있는 셈이다. 하기야 약속 시간을 잡는 것부터 마땅치가 않다. 막연히 저녁나절이나 점심시간에 그때 거기서 만나자거나, 몇 시경에 만나자고 한다. 물론 생활이 분이나 초를 다투는 기록 경기는 아니지만 좀 애매모호하다. 미적미적 시간을 도외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삶은 좋든 싫든 결국은 시간과 끊임없는 다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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