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가천다랭이마을
3월 말로 내일이면 4월이다. 새해맞이로 아우성쳤던 금년도 어느덧 1/4이 지나갔다. 꽃들도 서둘러서 3월에 그 모습을 드러내려는 듯 다투어 피어났다. 오가는 길 산자락에 진달래가 벌겋고 개나리가 노랗고 목련과 벚꽃이 하얗다. 산수유꽃이나 매화꽃 동백꽃이 핀 것은 이미 오래다. 마치 한꺼번에 어우러져 꽃구경 나들이를 나선 듯싶다. 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고 마음을 들뜨게 한다. 남해에 들어서니 길목에 유배문학관이 남달리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 유배지라고 하면 남쪽에서는 흔히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 윤선도를 떠올리면서 전라도 해남이나 강진 그리고 흑산도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곳 남해나 거제도, 제주도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선구마을에서 산행 초입이다. 마치 기차라도 타고 오르듯 암능을 타고 오른다. 탁 트인 전망에 좌우로 바다를 보노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저 바다 건너에 여수 시가지가 훤히 들어올 텐데 거기까지는 해무로 흐릿함에 다소 아쉽다. 하지만 쪽빛 청정한 바다에 간간이 떠 있는 배와 수반 위에 놓인 섬들은 그냥 한 폭의 그림으로 비쳐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가는 길마다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뿌린 게 아니라 꽂아놓은 듯 환하게 밝히고 있다. 매봉(응봉)산 정상은 휴게소인 양 북새통이다. 가까이에 봉수대가 있는 설흘산이 우뚝 솟아있다. 다시 헐떡거리며 오른다. 불을 피워야 할 불구덩이 봉수대 안에 벙커의 방안처럼 10여 명이 두런두런 오붓하다.
동쪽이 상주 앞바다다. 임진왜란 때 노(櫓)를 많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면서 ‘노도’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좀은 외로워 보이지만 외로움을 딛고 이겨낸 조선조 숙종 때 ‘김만중’이 귀양살이하며「구운몽」과「사씨남정기」를 쓴 곳이다. 유배지는 때로는 선비의 단순한 귀양살이보다는 만년에 후학을 길러냈다. 자신을 돌아보고 시간을 적절하게 이용하며 많은 저술 활동으로 최근에는 오히려 새로운 문화를 일군 그들을 기리는 명소가 되었다. 외로워도 외롭지만 않은 보람된 곳이 되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아 외롭다는 생각에 빠질 틈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몸은 갇혀있어도 불안에 쫓기거나 영혼이 가난하기보다 마음은 느긋했었나 보다.
이마를 마주하거나 어깨를 맞부딪칠 것 같은 논다랑이를 다시 보니 아기자기 아름답다. 좀은 높은 지대에서 잠시 허리를 펴고 바다를 내려다보듯 하다가 심술궂은 세찬 바람이 몰려들어 몰매나 횡포라도 부리지 싶기도 하다. 섬은 평평한 곳이 별로 없어 곧바로 가파른 비탈이 바다로 이어지다 보니 농토로 일굴 곳이 마땅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소 여유 있는 공간이라도 계단식 농장으로 여기 찔끔 저기 찔끔 개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논밭이 큼직할 수 없고 계곡물을 겨우 받아 사용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하늘바라기 천수답이다. 둑이 무너져 물이 샐까 봐 두렁에 신경을 썼다. 경작지는 좁고 두렁은 넓어서 단위당 생산량은 형편이 없다.
섬 지방으로 가파른 남해에서는 이런 다랑이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 가천다랭이마을이 으뜸으로 꼽힌다. 외관상 다랑이는 우선 정겨움이 묻어난다. 육십년대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때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소위 보릿고개까지 있던 시절이니 참으로 살아가기 힘들었다. 우리 경제라고 해야 고작 재래식 농업에 기댔던 시절이다. 비 오면 모를 심고, 심은 모도 곧 날이 가물면 웅덩이를 파고 물을 품다가 그냥 말라 죽었다. 마땅한 관계시설이 없으니 스스로 해결하며 물을 가두려면 무엇보다 논두렁을 튼튼하게 해야 했다. 곧잘 들쥐가 들쑤셔놓았다. 그 길고 긴 두렁 관리에 농부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허리가 휠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에 농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었다. 경사에 구불구불 넓은 자리를 차지해 비효율적이던 두렁을 곧고 좁게 바로잡아 경작지가 늘어났다. 끊임없는 종자 개량으로 단위당 수확량이 팍팍 불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농촌은 젊은 일꾼은 거의 없고 어쩔 수 없이 노령화되었다. 영농 법인이 생겨나면서 위탁 영농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대형화되어가고 있다. 일부 젊은 층은 벼보다 시설재배로 고소득을 올리며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한다.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좀처럼 변할 줄 모르는 모습이 있다. 슬로우시티라고 한다. 이곳 다랑이 논밭이 그렇다. 옛 모습 그대로 지니고 있어 새삼스럽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구불구불 이어진 곡선이 참으로 아름답다.
슬그머니 다랑이에 심어진 작물을 들여다본다. 마늘이나 유채를 심는 등 별것이 없다. 지금은 그마저 묵정밭이 늘어나고 있다. 청보리가 보이는데 벌써 배동이 서 불룩하다. 예전에는 삽이나 괭이 호미 낫 같은 재래식 농기구가 고작이므로 소의 힘을 빌렸으며, 운반은 지게에 짊어져 어깨가 무너지고 허리가 휠 만큼 힘 들어 했다. 지금은 경운기와 트랙터 같은 농기계가 대신한다. 돌이 많으면 소가 쟁기질할 수 없어 애를 먹였다. 그래도 농부의 마음은 모 한 포기라도 더 꽂아보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먹는 것이 넉넉한 것이 아니어서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달리 방법을 모색하거나 벗어날 길이 없어 하루하루가 말 그대로 끔찍스러웠다.
예전의 농촌은 이웃을 끔찍하게 여기면서 서로 걱정하고 나눌 줄 알아 화목하게 지내며 순박함이 묻어났다. 다랑이와 함께 생활하는 농심에 어찌 잡스러움이 끼어들 수 있으랴. 그들의 풍습으로 ‘남해 가천 암수바위’ 혹은 ‘미륵바위’로 불리는 남성의 양물과 임신한 여인의 배를 닮은 자연석까지 생겨났다. 조그마한 돌무덤인 ‘밥무덤’도 있다. 신성한 황토를 바꾸어 넣고 햇곡식과 과일 등으로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 제를 지내며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믿었다. 아직껏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또한 자녀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전해오는 풍습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름대로 믿음을 지닌 절박함도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과거인 다랑이를 통해서 어려웠던 농촌을 돌아볼 수 있도록 코스를 개발하였으나 다랑이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마을은 먹을거리에 관광지로 과거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다. 바닷가 시골의 순박하고 한적함에서 북적북적 돈맛을 풍기고 있다. 해변을 걸으며 코발트 빛 출렁거리는 바닷물과 함께 철썩철썩 하루의 피로와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한꺼번에 털어내고 씻어 내린다. 비릿한 갯바람의 시원함을 마음껏 담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햇볕은 이곳 가천마을의 다랑이가 건재함을 잊지 않은 듯이 서둘러 봄볕을 고루고루 뿌려놓는다. 자연의 세계는 정말 공평하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인간세계가 약삭빠르게 왜곡해서 불평등으로 비집고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