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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

이룰 수 없는 사랑 상사화

작성자박종국|작성시간26.06.10|조회수20 목록 댓글 0

이룰 수 없는 사랑 상사화

 

 

  남도로 떠나는 길은 아주 맑은 하늘에 선선하니 가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푸르고 미소처럼 잔잔함은 그 어디에 그처럼 모질던 태풍이 있어 엊그제 짓궂다 못해 험악하게 온 누리를 짓밟았나 싶다. 전남 함평의 서해안 야트막한 모악산 자락이 천년 사찰인 용천사를 감추듯이 깊숙이 품고 해마다 9월이면 상사화(相思花)라고 불리는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어 보는 이의 가슴마저 활활 불타게 하면서 한국 백경 중 하나로 꼽힌다. 천년 사찰도 이 꽃무릇으로 더 빛을 발하고 있지 싶다. 등산코스를 개발하여 용천사에서 불갑산 연실봉을 거쳐서 이웃 한 영광의 불갑사로 이어진다. 따라서 하루의 산행과 더불어 꽃무릇에 관광까지 곁들인다.

  상사화는 뒤늦게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던 고명딸이 아버지가 죽으면서 극락왕생 백일기도로 탑돌이를 하였다. 세속의 여인을 흠모하던 한 스님이 속을 끓이다가 끝내 죽음을 맞았다. 연모하던 스님의 무덤가에 피어난 꽃으로 전해지는 애절함이 담겨 숙연하게 한다. 두 남녀에게 배우자가 있는 불륜도 아니고 그렇다고 철천지원수도 아니다. 다만 구도자의 길을 가는 햇병아리 수도승이고 청순한 소녀일 뿐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세상에 못 이룰 사랑이 어디 있으랴만 결국은 죽음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같은 구도자였던 신라의 원효대사는 구중궁궐에 꽃 중 꽃인 요석공주와 짧고도 긴 하룻밤의 만리장성을 쌓고 최치원에 버금갈 설총을 세상에 내놓았다.

  능소화는 비록 버림받은 사랑일망정 궁궐 담장을 꿋꿋하게 기어올라서 꽃을 피우는 일편단심의 오로지 임을 향한 마음이다. 남의 탓보다는 어려움을 딛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간다. 연리지는 두 나무가 하나로 합쳐 한 줄기로 살아가면서도 더없이 행복해한다. 비익조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뿐이지만 짝을 지어 부족한 눈과 날개 역할을 거뜬히 하는 완전한 하나로 행복을 누린다고 한다. 이보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으랴. 상사화의 무성한 잎이 모두 지고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올 즈음에 빈 대궁이 불쑥 솟아올라 요란스레 꽃을 피운다. 알머리에 철모 쓴다는 말처럼 알몸뚱이에 꽃을 화관처럼 쓰고 있다. 잎이라고는 전혀 없이 꽃이 아닌 영혼이지 싶다.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멋모르고 꽃이 너무 아름답다고 얼굴을 붉힌다. 상사화는 여전히 말 못할 메시지를 숨기고 있다. 저 밑바닥에 담긴 애절한 사연을 제대로 알아야 꽃을 제대로 볼 수 있을 텐데. 무성하게 자란 잎이 슬금슬금 잦아들어 흔적을 감추고 뒤늦게 올라온 꽃대는 한없이 외롭기만 하다. 한 해를 꼬박 기도하는 마음이었으나 올해도 꽃과 잎은 여전히 만날 수가 없다. 빈 꽃대에 꽃이 저리 피를 토하듯 붉게 타올라도 이미 잦아든 잎은 그림자의 뒷모습조차 내보이지 않는다. 잎은 잎대로 꽃은 꽃대로 겉모습은 화려한 듯싶어도 안쓰럽다. 그런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벌 나비조차 얼씬거리지 않는다. 끝내 속 태우며 이룰 수 없는 상사화의 야속한 사랑이다.

  그 아픔 속에 무슨 달콤한 꿀이 있고 향기가 있으랴. 꽃이라고 약삭빠른 벌 나비가 찾아올 리 없다. 먹을거리가 있어야 거지도 우글거릴 텐데 금지된 구역처럼 얼씬거리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만 구름처럼 모여들어 아우성친다. 상사화는 꽃무릇 혹은 석산(石蒜)으로도 불리는 수선화과 다년생으로 산기슭이나 습한 곳에 무리 지어 자라며 절 인근에 심었다. 그래서 남도의 선운사, 불갑사, 용천사 같은 사찰 인근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 상사화란 말처럼 사랑앓이를 독하게 해보는 것이다. 그리움을 닥닥 긁어 모두 걸고 올인하는 것이다. 살아가며 어찌 사랑뿐이랴. 뭔가 큰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 사람 하나만을 위한 투쟁이고 일에 푹 빠져보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도 가끔은 불공평함이 있다. 상사화는 잎이 져야 비로소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워 ‘이루지 못할 사랑’이란 꽃말까지 얻었다. 그런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이 몰려와 왁자지껄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냥 밋밋하고 민숭민숭하여 평범하면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시큰둥해 돌아선다. 토끼풀도 정상적인 세 잎보다는 기형의 네 잎을, 난(蘭)도 시퍼런 정상적 자생보다는 잎에 줄이 생기고 꽃 색깔이 변형적인 것을 좋아한다. 나무도 작달막하면서 괴이하게 생긴 것을 선호한다. 연인들은 저들을 애석해하며 흠모하는지도 모른다. 고고한 척하면서 짙은 추억을 만든다. 자연은 다소 벗어난 것을 좋아할지라도 사람은 결점이 없고 완벽하기를 바라면서 추구한다.

  용천사에서 산에 올라 능선을 타고 돌아가면 불갑사다. 토질이 좋은 평지보다 척박한 기슭이나 바위 틈새에 피어있는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만큼 나름대로 악조건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을 터이니 격려하면서 무언의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가 보다. 불갑사를 빠져나오자 공원은 온통 상사화 꽃무릇으로 뒤덮어 핏빛 물결이다. 밭둑 논둑 냇둑은 물론 도로변이며 산자락까지 온통 꽃무릇이다. 군에서 직접 나서 여러 해 동안 공을 들여 관광 상품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역마다 그 지역에 적합한 상품을 특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상품을 놓고 심한 경쟁을 하다 보면 서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제 사람뿐 아니라 벌 나비도 군중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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