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도 사랑, 사랑도 미움
일상에서 수없이 만나고 헤어진다. 좋고 싫고 따로 없다. 삶 자체가 한 곳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진다. 우연처럼 만나서 숙명처럼 헤어진다. 그것은 살아있음에 특권이면서 또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생은 세월 따라 유수처럼 흘러간다고 한다. 그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도 한세상 머물면서 아웅다웅 서로 지지고 볶고 한다. 끝내는 ‘미움도 사랑이고 사랑도 미움’이 되어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이 세상을 정리하는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에 소풍을 왔다가 잘 놀고 간다.”라고 했다. 사람이 아주 영리하고 아무리 똑똑해도 하루 앞을 아니 몇 시간 앞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한다. 그 짧은 시간에 생사가 뒤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심지어는 본인마저도 모른다. 그래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뒤늦게 대성통곡하기도 한다. 항상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는 아무래도 좀 나아지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위안받기도 한다.
그렇게 현실을 달래며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모습이 한 편으로는 살아가면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은연중 격려하면서 채찍질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육신이 죽어야 마음의 욕심도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에서 오는 애착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어찌할 수 없지 싶다. 굳이 뒤돌아보면 선의적이었는지, 악의적이었는지,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에 초점 맞춰본다. 최선을 다하였는지 더듬거려 본다.
한낱 죽은 목숨이라면 생각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바위에 지나지 않는다면 뭐 그리 대수일까 싶다. 그러나 살아있는 목숨이다. 그렇다고 한번 뿌리를 내리면 떠날 줄 모르고 제자리에서 죽음을 맞는 나무나 풀이 아니다. 같은 동물이라도 만물의 영장으로 불릴 만큼 생각이 아주 깊고 영리한 사람이다. 사람은 생각만큼이나 아주 다양하게 행동한다. 하루를 되돌아보아도 누군가를 만나고 만난 그 사람과 또 헤어져야 한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끝내는 혼자서 떠난다.
만나고 싶다고 언제나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나기 싫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으로 망가지게 하는가 하면 우연히 만나 팔자를 고쳤다는 사람도 있다. 필연이고 우연으로 팔자소관이라고도 한다. 앞날을 확실히 모르는데 만나고 안 만나고를 쉽게 가려서 할 수는 없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한다. 그러나 눈 뜨고 코 베인다고 한다. 아무리 정신 차려도 한계에 다다른다. 그래서 좋은 이웃을 만나야 한다.
세상사 아무 일 없이 술술 잘 돌아가는 것 같아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참으로 알고도 모를 일이다. 만나고 헤어짐이 일상사로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 과정에서 좋든 싫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미움도 생기고 사랑도 생긴다. 항상 처음 만남인가 하면 항상 처음 같은 헤어짐이다. 싫어도 만나며 좋아도 헤어져야 한다. 더구나 만남이나 헤어짐은 나 혼자서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게 잘 이루어진 것 같은데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끝내는 혼자가 된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으면 스스로 낫기도 하고 고치기도 한다. 계절 따라 세월 따라 적응하며, 잘 아는 듯 전혀 모르는 듯, 내일로 가고 미래를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 속에서 어려움을 딛고 즐거움을 찾다 보면 ‘미움도 사랑이고 사랑도 미움’이 된다. 그래도 현실에 묻혀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지난날의 영화나 악몽을 하나씩 내려놓고 비우게 된다. 다시 처음처럼 사람을 만나게 되고 헤어지길 반복한다.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고 살아볼 만하다. 그 속에 삶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