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데서 인심 난다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일까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속 시원하거나 진리처럼 딱 잘라 말하기가 거북스럽다. 그 말이 그 말처럼 들리기도 하면서 말장난을 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를 수 있어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아주 고상한 척 오로지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도 하고 아주 순진한 척 오로지 먹기 위해서 산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 오로지가 문제다. 그러면 왜 그처럼 먹거리가 이처럼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까 할 때는 더듬거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먹는 데서 인심이 난다고 한다. 단순하게 넘길 말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라면 어울리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지 싶다. 봄이나 가을이면 고을마다 숱한 축제가 벌어진다. 축제도 결국은 먹는 곳으로 모여들어 흥청거리며 나머지는 뒷전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직장에서 단합대회를 하거나 회식을 하는 것도 끝내는 음식점이고 먹거리 앞이었다. 친목 모임을 하자고 하는 것도 결국은 먹기 위한 것이었다. 그냥 헤어지면 어딘가 허전하고 이런 모임이 있나 싶도록 아쉬움이 남는다.
술은 물론 배가 가득 차도록 먹고 불러야 모임도 잘한 것이 되고 보람을 느끼며 불평이 없어진다. 만약 시식하는 정도에서 끝났다면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죽을 만큼 배가 고픈 것도 아닐 터다. 오히려 먹다가 어느 정도는 남겨놓아야 마음에 안심이 되고 어딘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기분이 든다. 누룽지 긁듯이 하면 은연중 너무 청승스럽고 야박스러워 동정의 눈초리가 오간다. 누군가가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서 외면한다.
오랜만에 만나거나 생각지 않게 마주치고 헤어지면서 하는 말이 “언제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한다.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꼭 그런 날이 있을지는 몰라도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다. 그렇게 만나자면서 헤어진다. 더 나아가 사업적이거나 뭔가 부탁하고 싶을 때 종종 써먹기도 한다. 대화하면서 먹으면 한결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우선 뱃속이 넉넉해야 세상도 잘 보이면서 들어온다. 아무리 유익하고 좋은 말을 한다고 하여도 배가 고프면 시들해진다.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잘 들어올 리가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구경도 우선 먹는 것만은 못하다. 먹어도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잘 먹을 수 있을지, 맛이 있는 음식으로 배가 부르도록 먹어보는 것이다. 그래야 잘 먹었다고 한다.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가도 마지막은 식탁에 둘러앉는다. 음식을 잘 차렸느니 음식이 부족했느니 하면서도 성의가 있고 없고가 뒷말로 쏟아진다. 예전에는 집에서 몇 날 며칠 음식으로 잔치를 펼쳤다.
먹을거리가 부족해 많이 굶주릴 때였다. 돼지를 몇 마리 잡았으며 술(막걸리) 몇 섬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잔치를 크게 하고 잘했다고 했다. 그만큼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단순히 배가 고파 채우기 위한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즐기기 위한 쪽으로 가고 있다. 양보다는 질이라고 해도 좋을 성싶다. 지금이야 먹기 싫어 안 먹지만 예전에는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없어 못 먹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칭 식도락가라면서 좋은 먹거리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요즈음은 셰프의 인기가 대단하고 음식점에서 절대적 위치에 놓여있다. 많이 주는 것보다는 얼마나 맛있고 보기 좋으며 특색이 있고 서비스는 어떠한지가 관심거리다. 여기에 가격까지 적정하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이런 것들이 해결되면 음식점에 큰 문제가 없을 성싶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이 외출을 삼가면서 불경기가 아주 심각했어도 꼭 필요한 음식점이기에 몇몇 곳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 잘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대다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각종 모임이나 행사나 잔치나 끝판은 대부분 먹을거리 앞에 모여든다. 간단한 다과일 수도 있고 큰 뷔페일 수도 있고 대중음식점이거나 특별히 유명한 유흥음식점일 수도 있다. 예로부터 식사는 기본이 하루 세끼다. 그런데 요즈음은 두 끼를 한다거나 혹간 한 끼로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식사가 아니면 다른 간식이라도 먹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먹는 것에서 멀리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이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즐기려 한다.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고 협상하면서 아주 긴밀한 모사를 꾸미거나 계획을 세우려면 음식점만큼 자연스러운 곳도 없지 싶다. 항간에서 이따금 닭이 먼저나 달걀이 먼저냐고 한다. 물론 결론은 없다. 마찬가지로 먹기 위해 사는 것이냐 살기 위해 먹는 것이냐 한다. 가끔 얼굴을 붉혀보기도 하지만 사람마다 조금씩은 마음가짐이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 하면서 자신 있게 확답하지를 못한다. 때에 따라서라며 석연치가 않은 단서까지 붙여가면서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농촌에서 모내기한다든지 들일을 하고 있으면 점심 무렵에 아낙네가 정성껏 지은 밥을 머리에 이고 와서 길바닥에 차려놓았다. 강아지도 졸랑졸랑 따라오며 신바람이 났다. 때마침 길손이 지나다가 길이 막혀 돌아서 가려 하면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소리 높여 불러 같이 식사하자고 한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고 인정이 있고 주변을 생각하며 나눌 줄도 알았다. 사람이 사람을 인정해 주는 것보다 자랑스러운 일이 있는가. 그 동네 그 사람들은 인정 있고 사람 살기 좋은 동네라 한다.
먹는 데서 인심이 난다고 한다. 남의 동네 이야기에 귀동냥한다. 개도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물며 사람이 먹는데 나무라며 이러쿵저러쿵할까나. 먹는다는 것은 삶의 기본과 연결되어 단순한 것이 아니라 숭고하면서도 존중받을 일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진심이 담긴 마음의 나눔이다. 내가 중요한 만큼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가짐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난다. 내가 남을 인정하고 베풀 때 나도 인정받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배가 부르면 세상이 부럽지 않다고 하였다. 사르르 눈이 감기며 잠이 몰려오기도 한다. 꿀잠을 자고 나면 몸이 가뿐하고 상쾌해진다. 행복이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먹을 것 갖고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다른 범죄보다 가중처벌 하여야 한다고 한다. 생명줄을 조이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먹고 나눌 줄 알면 세상만사가 편안해지고 불평불만이 줄어든다. 살맛 나는 세상이 될 수 있다. 남이 배부르게 먹고 있는데 못 먹어 쫄쫄거릴 때 그 서러움은 한이 맺혀서 원망으로 쌓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