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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

함부로 쉽게 말하지 마라

작성자박종국|작성시간26.06.17|조회수13 목록 댓글 0

함부로 쉽게 말하지 마라

 

 

  메뚜기가 가을 볏논에서 팔딱팔딱 뛴다. 날씨가 추워지면 잔뜩 움츠리고, 서리나 이슬이 듬뿍 내리면 날개가 축축해 꼼짝 못 한다. 따스한 햇볕이 퍼지는 한낮이 되어야 비로소 정상을 되찾는다. 가을이 늦어질수록 언제 삶을 마감할지 모른다. 그래도 죽음에 초연한 듯 계산하지 않는다. 아예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것일까. 살아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듯 볏논을 텃밭으로 여겼는데 벼를 베면서 텅 빈 논바닥만 남았다.

  하루아침에 내가 아닌 주위가 먼저 변하였다. 환경이 바뀌면서 메뚜기의 짧은 삶도 바뀔 수밖에 없다. 곁방살이가 서럽다. 비로소 아늑한 내 집이 그리워질 것이다. 비록 힘없고 말 못 하는 메뚜기라고, 목숨을 가지고 멋대로 장난치지 않는다. 보잘것없다고 얕잡아 무시하며 짓밟지 마라. 메뚜기가 먼저 덤벼들어 못살게 굴던가. 내일 죽음을 맞아도 오늘은 살아야 할 가치에 생존권이 있다. 모른 척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냇물이 콸콸 소리를 내지르며 흘러간다. 평범한 일상으로 무탈한 것 같아도 언제 어디서 순식간에 돌발변수가 생겨나서 한바탕 곤욕을 치를지 모른다. 질서정연하게 흘러가다가 머뭇거릴 틈도 없이 바위에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조각난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잠시 한눈판 것도 아니다. 여유롭게 흐르던 냇물이 하얗게 부서져 떨어지면서 파문을 일으킨다. 대부분은 옆으로 흩어지고 일부는 뒤로 밀려나며 앞으로 튕겨 나간다.

  무심하게 흐르던 냇물이 갑작스럽게 풍파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봉합되어 다시 하나가 되어 흘러간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상이라면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때로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악재를 만나기도 하고 호재를 만나기도 한다. 항간에서는 운이라 한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는 하소연할 곳도 없어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묵묵히 흘러갈 수밖에 없다.

 

  바람이 때로는 얄궂고 아주 얄미운 짓을 많이 한다. 바람은 무엇이 그렇게 당당한지 비껴가거나 빙빙 돌아가지를 않고 정면 돌파한다.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래도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좀은 떳떳하지 못하다. 어디에서도 그 실체를 본 일이 없다. 고의적인 것은 아닐 터다. 너에게 필요치 않은 것이 누군가는 필요할 수 있다. 네가 부족한 것이 누군가에는 넉넉할 수 있다.

  함부로 쉽게 말하지 마라. 너는 아무렇지 않게 여겨도 누군가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세상은 내 맘 같지 않은 것도 있다. 나무는 견디기 힘들면 가지가 슬그머니 처진다. 쭉쭉 뻗으려던 초심이 흔들린다. 사기를 당하고 보증을 섰다가 부도까지 맞아 엉망진창으로 망가졌다고 한다. 호박씨 까서 엉뚱한 입에 몽땅 털어 넣었다고 한다. 걸림돌이 되어 끝내는 좌절하고 원망하면서 진로가 뒤바뀌는 안타까운 현실에 마음을 아프게 한다.

 

  걸레는 억울하다. 지저분한 곳을 깨끗이 닦아 기분 좋게 해놓았는데 막상 제 몸뚱이는 엉망진창으로 꼴이 아니다. 아무리 빨고 빨아도 곱게 보아주지 않는 걸레는 걸레일 뿐이다. 때로는 선입관과 달리 걸레가 깨끗할 때가 있다. 자주 쓰는 수건이 오히려 더러울 때가 있다. 항상 같을 수는 없다. 예외라는 게 있다. 섣부른 속단은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현실은 빈틈이 없을 수 있겠지만 뜻밖에 보고도 모르는 허점이 숨어있다.

  낡고 녹슨 쇠도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단단해진다. 대장간에서 풀무질로 새빨갛게 달궈진 쇠를 두들기다 물에 담그고 다시 달군다. 반복된 담금질로 두들기기를 반복하다 보면 단단한 쇠로 거듭난다. 고물로 아무렇게나 나뒹굴며 쓸모없던 모습만을 연상하면 안 된다. 새로운 낫이 되고, 호미가 되고, 칼이 되고, 농기구가 될 수 있다. 주위에는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다. 혹독한 담금질에서 품질 좋은 상품을 얻을 수 있다.

 

  혼자서 다 잘할 수는 없다. 저마다 특기가 있다. 그 특기를 찾아내어 집중적으로 갈고 닦으면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 방황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보다는 빠를수록 좋다. 자기 분야에서 권위자가 되는 것이다. 서로 합치고 빼고 나누고 곱하며 각자 자신의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윤택한 앞날로 개척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남보다 제대로 못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나만 잘하는 것이 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함께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제값을 할 수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듯 서로 지혜를 공유하고 나누며 협력하여야 한다. 그런 이웃이 필요하고 소통이 필요하다. 갈수록 무지막지한 무더위에 자연도 사람도 밤낮으로 시달린다. 벌겋게 타죽은 줄 알았는데 그래도 들풀이 다시 새싹을 내밀었다. 끈덕진 생명력이 극심한 고초를 이겨냈다. 질긴 삶의 애착은 쉽게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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