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함성 초록 물결
봄이라고 초록빛 새싹만 돋아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봄을 알아보고 겨울을 툭툭 털어내며 기운이 솟아난다. 짐승은 털갈이하며 산뜻하게 몸단장한다. 묵직하고 거추장스러운 겨울의 잔재를 내려놓는다. 봄이라고 초목만 잎이 피어 반들거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마음에도 윤기가 흐르며 반짝반짝 광채가 난다. 새로운 마음으로 번뜩거린다.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겨우내 잠들어 있었거나 잠시 깜빡했다가 새봄을 맞으면서 살아있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발걸음이 한결 가뿐해진다. 초록빛도 꽃이 되듯이 꽃핀 자리에만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한 해의 계획을 세워가면서 부푼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마음에도 꽃자리를 만들고 꽃이 피어 알찬 열매가 맺고 거둘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너무 춥고 어두운 고난의 긴긴 겨울은 활동을 거의 멈추었다가 벗어나 새봄을 맞는다. 거뜬히 이겨낸 초목만이 자랑스럽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겨우 내내 활동에 제한받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 다독이며 초록빛 봄 길을 활보하며 만끽하는 사람도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새싹을 틔운 초목이 하룻밤 자고 나면 쑥쑥 자라 꽃망울을 만들고 터트린다.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하루하루 바빠지며 돋보인다. 이는 봄날의 소리 없는 함성이다. 비록 보이지 않고 몸속에 나이테가 새겨지지는 않아도 기억 속에 담아두고 있다. 시간도 즐거울 땐 후딱 지나간다. 너무 바빠 나른해지면 괜스레 더듬더듬 빈둥대는 것처럼 보인다. 좋아하는 것과 마지못해 하는 것은 사뭇 다르다. 내가 좋게 여기는 곳에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그 씀씀이에 따라 사뭇 달라질 수 있다. 사람마다 같지 않고 어딘가 차이가 있다. 같은 듯 아주 다르게 비친다. 유익했던 시간이 있는가 하면 의외로 악몽 같았던 시간이 있다. 자꾸 못 잊어 되돌려보고 싶은 시간이 있는가 하면 몸서리쳐 떠올리기조차 끔찍스러운 시간이 있다. 따스한 봄볕을 맞이하는 마음에도 사람마다 다른 감정이 깃들어 있다.
나비의 날갯짓만큼이나 살며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방글방글 미소가 얼굴 가득 번지는가 하면, 알 수 없는 한숨을 토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다 보니 받아들임도 천차만별이다. 겉과 속은 한 몸이면서 하나가 아니다. 하나가 될 수 없다. 겉보기와 속마음은 다르다. 같은 빛깔이 아니다. 화려한 꽃의 잔잔한 미소에 엉뚱한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다.
꽃은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쁜 입술에 맑은 눈이 있고 곱게 듣는 귀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오물거리면서 눈인사를 나누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보고 듣고 생각하는 사람이 예쁘게 보고 잘 보아주어야 빛이 나며 그 존재가치가 살아난다. 모든 것은 세상을 향해 보고 있다. 세상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있다. 누구나 관심거리로 떠 오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말조심하고 표정 관리를 잘하여야 한다.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아도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다.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진다. 때로는 말 대신 눈인사만을 한다. 굶주린 고양이가 강렬한 눈빛을 번뜩이면서 잽싼 발걸음으로 쓰레기장을 뒤적거려도 먹을거리가 신통치 않은지 야옹야옹 애처로운 비명이 들려온다.
봄날 펼쳐지는 초록은 잎이면서 꽃이나 다르지 않아 신선함이 묻어난다. 혼자 피지 않고 어우렁더우렁 소박하면서 일체감이 담긴 꽃이다. 산자락에 싱그러움이 넘친 초록 꽃물결이다. 신록의 물결에 휩싸이면 가슴이 쿵쿵 어깨가 들썩거리며 봄이 함께 출렁거린다. 봄과 함께 출렁거리는 산자락은 텅 비어 삭막했던 나무들이 겨울을 지우면서 더는 무뚝뚝하지 않다.
봄바람에 일렁이는 신록의 물결은 세련된 춤꾼의 이미지에서 생기발랄한 아름다움을 쏟아낸다. 나무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한순간 바람이 되고, 파도가 되고, 뭉게구름이 되고, 부채가 되고, 군중이 되어 경기장의 카드섹션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군무가 황홀하게 한다. 초록빛 봄 바다가 되어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다. 하나라서 아름다운 것이 아닌 함께여서 아름답다.
하나같이 나무만 있으면 지켜보는 쪽에서는 재미가 덜하다. 바위만 있어도 그렇고, 물이 없으면 삭막해 또한 그렇다. 그렇다고 물만 있으면 좀은 싱겁다. 물고기도 함께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처럼 나무와 바위와 물에 물고기까지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소중하다. 따로따로 보다 함께 어울려 일체감을 보이면서 훨씬 돋보이며 더 빛이 난다. 더 볼품이 있고 쓸모가 있다.
너무 단조로움보다는 다소 복잡해도 제 몫을 다하여 하나처럼 조화를 이룰 때 그 가치가 높아진다. 불편함 속에서도 편리함이 있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서 미더움이 깊어진다. 의심은 의심일 뿐, 신뢰가 부족하면 믿지 못해 의심이 생긴다. 그래도 믿음이 있어 세상이 밝게 보인다. 봄은 희망을 품으며 생기를 북돋아 준다. 살아있는 초록이 봄날의 함성을 내지른다.
하루가 열리는 여명의 아침에 사람들이 희망을 가득 품고 일터로 나아간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지우며 서서히 밀려드는 땅거미에 보람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즐거웠던 일, 고달팠던 일, 맨송맨송했던 일, 저마다 하루를 마감하며 모든 것을 잠깐 내려놓고 가정에서 휴식에 드는 아늑한 밤을 맞는다. 그렇게 하루를 압축하면 꽃이 피고 지는 것 같기도 하다.
봄날의 하루가 꽃과 함께 봄날의 함성 초록 물결과 함께 피고 지고 열리고 닫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휴식을 취한다. 반복되는 일정에 계절이 가고 오고 세월이 쌓이며 삶의 일생이 그려지고 만들어진다. 그 과정마다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어 자연이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의 삶도 공동생활을 하며 권리나 주장 못잖게 의무를 다할 때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