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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결혼식 하는 남자 / 정경해

작성자이미선|작성시간26.06.05|조회수71 목록 댓글 0
나무와 결혼식 하는 남자 정경해


오늘의 신부에게 면사포를 둘러주고 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진기한 풍경이다산속에 있는 나무에 하얀 면사포를 두르며 오늘의 신부라니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도 없는데아침밥 짓는 것도 잊고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나무가 신부라니무슨 일일까결혼을 언약한 연인이 하늘로 떠나서 수목장이라도 한 것일까신랑이 신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나무에 면사포를 씌우고 영혼결혼식이라도 하는 것일까.
텔레비전 화면 속 사람들은 나무에 두른 하얀 면사포 위에 리본을 묶었다리본 위에 신성한 숲에서 피어난 꽃을 꽂아 예복을 갖췄다그 모습은 마치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가 부케를 들고 서 있는 듯하다.
나무를 보여주던 카메라가 움직였다흰색 예복을 입고 구불구불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챙 넓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를 비춘다신랑이다그는 검은색 모자에 초록빛 나뭇잎을 장식으로 꽂고노랗고 빨간 꽃 두어 송이를 손에 들었다.
아름다운 나무야너와 결혼할 수 있게 허락해 줘.”
간절한 신랑의 말이 끝나자마자 웨딩마치가 울려 퍼졌다주례자가 물었다.
리처드이 나무를 평생 반려자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신랑은 양손을 들어 펼쳐 보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 나무를 제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여요.”
신랑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객들은 박수를 보내며 신랑 신부 만세!’를 외쳤다.
신랑과 신부는 반지를 교환했다신랑이 신부가 된 나뭇가지 끝에 반지를 정성스레 끼웠다사람들은 결혼식 하이라이트인 양 또다시 환호했다.
이때해설을 겸하던 여행작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반지까지 교환하는 이 결혼식에는 사실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호기심이 가득 차서 두 귀를 쫑긋 세웠다그 메시지라는 것이 무엇일까무엇을 말하려고 사람이 나무와 예물을 주고받고가족과 이웃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는 것일까그 메시지가 몹시 궁금했다.
목을 길게 빼고 집중하는 나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신랑이 시청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에서 많은 파괴가 일어나고 있어요나무들이 베어지고강도 오염되고 있어요그래서 나는 나무와 결혼하는 거예요세상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요.”
근사한 무엇인가를 잔뜩 기대하던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머리가 띵했다.
<세계테마기행-나무와 결혼식 하는 남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영되는 이 영상은 단순한 영상물이 아니었다페루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리처드 토레스가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나무와 결혼식을 하는 퍼포먼스였다그것은 개발과 편리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무분별하게 망가뜨리는 인간을 향한 경고요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된 결혼식이었다리처드 토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나무와의 결혼식 모습으로 전 세계에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토레스의 말처럼 나무는 베어지고강물은 오염되어 간다우리가 무심히 사용하는 세정제를 비롯한 오염물질들이 그 주범이다쉽게 썩지 않아 환경을 오염시키는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사용은 또 어떤가그러한 것들은 끊임없이 지구촌을 갉아먹고 파괴한다언젠가 텔레비전 뉴스에서 기형으로 태어난 바다생물과 그들의 입과 몸에 플라스틱이 꽂혀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그것은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깨닫지만 이미 익숙해진 생활습성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나도 분리수거를 잘하고 가급적 세정제를 쓰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때로 바쁘다는 핑계로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지금은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깨닫고 애써 노력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그때는 나무를 베기보다 심기에 힘썼다새싹을 틔우려고 땅속이 일렁일 즈음인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해놓고해마다 그날만큼은 모두 나서서 나무를 심었다우리도 고사리손으로 나무를 심었다. 흐르는 냇물은 넉넉하고도 깨끗했다한여름이면 하교하던 남학생들이 가방을 내려놓고 교복을 훌훌 벗어 던지며 냇물로 뛰어들었다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같이 뛰어들지 못했다그저 걸어가면서 곁눈질로 사람이 자연과 하나 되어 어우러지는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파괴 되어가는 자연은 사람들 마음마저 각박하게 만든다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며 점점 삭막해져만 가는 세상을 살고 있다문명의 이기가 만들어 낸 참혹한 결과다한국 현대철학 1세대 철학자이자 아나키스트 허유 하기락(1912~1997) 선생은 생명을 중시하고 순수자연을 꿈꾸었다김춘수 시인은 그의 시 <허유 선생의 토로스>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잡풀들이 키대로 자라고 그들 곁에 머루다람쥐가 와서 엎드리고 드러눕고 한다.”
자연 그대로의 삶이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이다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하며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순리에 따르는 삶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다나무는 자라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라고물은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흐른다새는 또 어떤가하늘을 자연스레 날고 있지 않은가우리 인간도 그렇다자연처럼 억지 쓰지 않고 흐름에 맡길 때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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