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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웅녀

작성자Kim joung su|작성시간26.06.13|조회수38 목록 댓글 0

마늘과 웅녀

벌써 5년째다. 이맘때가 되면 식탁 앞에 앉아 마늘을 까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우리 집은 김장을 하지 않으니 거창할 것까지는 없다만, 일 년 내내 양념으로 쓸 다진 마늘을 준비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어 버렸다. 올해는 유난히 양을 많이 가져왔다. 아내와 나, 장모님과 밭에서 함께 작업한 마늘이 무려 세 박스. 마늘밭에서 갓 뽑은 것을 이틀간 마당에 말려 다시 박스에 담아 문지방에 놔두고 하나씩 꺼내 까니, 까도 까도 끝이 보이지 않아 절로 한숨이 난다.
손이 칼에 베어 따갑고 매운 기운에 눈시울이 시려올 때쯤, 문득 머릿속에 『삼국유사』의 한 구절이 스치고 지나간다. 고조선의 탄생 신화,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동굴 속에서 100일을 버텨 마침내 여인이 되었다는 웅녀(熊女) 이야기다.
물론 역사학적 해석은 분분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세력이 3천 군사와 천부인을 이끌고 태백산에 나라를 세웠고, 곰은 그 지역의 토착 부족을 의미한다는 것. 즉, 이주민과 토착민이 갈등을 넘어 화합을 이루며 세운 나라가 바로 조선이라는 해석이다. 그렇게 환웅과 웅녀가 만나 낳은 아들이 단군왕검이다. 일연 스님은 전해지는 자료가 있었으니 『삼국유사』에 세상에 떠도는 여러 이야기들을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신화는 역사로는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단군조선을 싣지 않았지만, 내 생각은 고대사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우리 역사의 진정한 출발점은 어디일까. 나는 단군 신화 속의 청동기 시대 보다는 한반도 곳곳에 설치되었던 한사군(낙랑, 진번, 임둔, 현도군)의 군영지를 몰아내는 치열한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 역사의 기초가 세워졌다고 믿는다. 평양 일대의 수많은 벽화들을 보라. 그것은 온전히 고구려의 것만은 아니라, 한나라 태수들의 인물도와 행렬도 상당수가 한나라의 문화적 유산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이 땅에 잔존하던 한(漢)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찬란한 고대 국가로 탄생한 것이다.
고려 시대 관료 겸 학자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저술한 공로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는 스스로를 낮추어 망작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지만, 위대한 학자임이 틀림없다. 당시 고려는 최충의 구재학당을 비롯한 사학(私學)이 크게 발달하여 서책이 대중화되고 인재들이 많았던 시대였다. 그런 인재들 덕분에 위대한 『삼국사기』가 집필되고 목판으로 인쇄되어 학자들 사이에서 읽혀지며 후대까지 전해진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문화가 고대 한나라의 집권 시기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까? 이 땅에는 착취와 탄압만 있었을까, 한나라 관료들이 입는 면화 옷의 제작을 위해 그때 이미 목화가 재배되지 않았을까. 역사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렇다. 지배자들의 착취와 탄압은 토착민들을 봉기하게 했고,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사명으로 고대 한나라의 철기문화를 받아들여 이 땅의 농업생산성을 높였으며, 특히 한자, 의복, 관혼상제 등 전 분야에 걸쳐 문화의 기틀을 마련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탄생하였던 것이다.
문득 문익점의 목화씨에 대한 의문도 숙제로 남는다. 고려 시대 이전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혹독하고 추웠다는데, 그 차디찬 겨울을 우리 조상들은 무명옷도 없이 어떻게 버텨냈을까. 삼베옷 사이에 갈대나 새털을 채워 넣고 칼바람을 견뎠을 백성들의 고단한 삶이 매운 마늘 냄새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과연 목화가 그렇게 늦게 들어왔을까? 섬나라인 일본보다 어떻게 수백 년이나 늦게 들어왔을까 하는 의문 속에, 아직 숨어 있는 수많은 고대 유적들이 발견되지 않아 고증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백제 능산리 寺址 유적에서 문익점보다 800년이나 앞선 고대 면직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나와 같은 사람의 직관이 맞았던 것이다. 역사는 이처럼 유물이 증명하기 전까지 침묵할 뿐, 우리 민족은 결코 미개했다는 식민사관의 틀에 갇힐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부지런히 마늘 껍질을 벗겨내면, 그것을 가져가 믹서기에 가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노랗고 하얗게 다져진 마늘이 통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니 비로소 마음이 든든해진다. 이 마늘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기이하다. 우리 음식에서 이 녀석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없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넣고, 청방배추로 겉절이를 담글 때도 넣고, 각종 나물을 무칠 때도 필수다. 심지어 늦은 밤 라면을 끓일 때 대파 대신 넣는 이 다진 마늘 한 숟가락이 국물 맛을 기적처럼 살려놓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늘은 우리 음식의 '화룡점정(畵龍點睛)', 즉 맛의 꽃이다.
웅녀가 동굴 속에서 쓴맛을 견뎠듯 비록 그것이 역사적으로는 야생 달래나 산마늘이었을지라도, 그 매운 인내의 본질은 같으리라, 나 역시 세 박스의 마늘을 까며 일 년 동안 우리 집 식탁을 풍성하게 할 양념을 완성해 간다. 어느 시대 귀족이든 평민이든 사람들은 마늘을 양념으로 먹었다. 오늘 저녁 찌개에 들어갈 마늘 한 숟가락의 알싸한 향을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수천 년 전 신화의 시대부터 오늘날 나의 식탁까지, 마늘은 여전히 한국인의 영혼을 달래는 가장 뜨거운 소울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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