巫堂(무당) 굿
이 세상에 귀신은 없다. 그러나 운수 좋은 날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吉凶禍福(길흉화복)을 보러 四柱觀相(사주관상)쟁이를 찾아가는가 보다. 살아생전 우리 어머니가 무당집에 거의 매일 놀러 가시던 모습이 선하다. 가칭 '태극기 보살'이라는 사람이 어머니의 친구이자 이야기꾼이었던 셈이다. 거기서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오시면, 집에서 정한수를 떠놓고 중얼거리며 부엌칼을 대문 밖으로 여러 번 던지시곤 했다. 그때 어머니의 모습은 딴 사람 같았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우리 집은 굿을 자주 했다. 한 판을 벌이는 데 삼백만 원이나 드는데도 말이다. 내 기억 속 첫 번째 굿은 큰형님이 술을 끊고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살고 돌아가셨으니, 결과적으로는 돈만 낭비한 셈이 되었다. 큰형님 사후 절에서 올린 四十九齋(사십구재) 또한 무당굿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처님 아래에는 온갖 과일과 떡, 생선, 나물, 밥을 제사상 차리듯 차려놓고 불경을 외었다. 나는 난생처음이라 스님이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분인 줄 그때 알았다. 이 四十九齋(사십구재)*또한 어머니의 요구로 하게 된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아버지가 입이 돌아가는 口眼喎斜(구안와사)에 걸리자, 몸에서 귀신을 떼어내야 한다며 또 돈을 낭비했다.
그다음 굿은 나 때문에 하게 되었다. 나의 피부 질환이 좀처럼 낫지 않자 내린 결정이었다. 과거에는 주로 집에서 굿을 했지만, 이제는 징 소리와 꽹과리 소리 때문에 민원이 들어와서인지 동명면에 있는 골 깊은 곳의 잘 차려진 굿당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했다. 굿당 안에는 수많은 보살 그림이 걸려 있었고, 萬國旗(만국기)처럼 부적이 가득 붙어 있었다. 장구와 징, 꽹과리 소리와 무당이 칼을 휘두르며 껑충껑충 뛰며 추는 춤사위, 그리고 짙은 향냄새가 나를 신들리게 해야 마땅했으나 내 정신은 너무나 멀쩡했다. 속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어머니가 만족해하시니 어쩔 수 없이 따랐다.
그렇게 무당은 수없이 어머니의 주머니를 털어갔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위안이자 낙이었던 것 같다.
그런 덕분인지는 몰라도, 어느 날 사무실 회식이 있어서 급한 마음에 냄비에 국을 끓이다가 미처 끄지 못하고 나온 적이 있었다. 마침 아들에게는 학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지 못하는 버릇이 있어 집으로 일찍 돌아왔고, 덕분에 불을 발견하여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다. 생각지 못한 아들의 버릇이 집안을 구하는 轉禍爲福(전화위복)이 되었고, 화마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天佑神助(천우신조)의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아마 88 올림픽 무렵이었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고스톱 판에서 天下統一(천하통일)을 한 것도 다 굿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험난한 세상에서 별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평생 수없이 굿을 하며 자식을 위해 빌어주신 어머니의 至誠感天(지성감천)의 정성 덕분에 내가 지금껏 運數大通(운수대통)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은 우리네 "굿"은 영어로 good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