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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영감 / 장 그르니에

작성자노정숙|작성시간26.06.23|조회수12 목록 댓글 0

장 그르니에의 <섬>을 떠올리며 책장을 훑었는데 섬은 못 찾고 <지중해의 영감>을 찾았다.

밑줄 긋고 싶은 곳이 많은 책이다. 가만히 슬퍼지기도 하고, 어딘가로 푹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 책도 지중해 여행기가 아니다.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탐구. (아, 난 시작이 '탐구'였는데.)

지중해를 거느린 곳들에서의 사색과 통찰이다.

이탈리아, 그리스의 박제된 역사에 숨을 불어넣는다.

 

사람들 저마다에게는 행복을 위하여 미리부터 정해진 장소들이, 활짝 피어날 수 있고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에 가까운 어떤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풍경이 존재한다. ...

지중해는 그 특유의 선들과 형태들이 주는 강렬한 인상으로 진리를 행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곳에서는 빛의 도취경 그 자체가 명상의 정신을 고양시킬 따름이다. 그래서 지중해는 절대의 숭배로부터 그리고 행동의 숭배로부터 등거리에 위치할 수 있는 어떤 형이상학의 계시를 줄 수 있다.

- 1939년 7월 '서문' 중에서

 

<'지중해의 영감'은 원래 발레리가 1933년 강연 원고의 제목인데 이 제목을 쓸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 모로코의 집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지붕에 돌 하나가 부족하게 만들어놓고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은 언제나 다 한계가 있음을 표시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걸 보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 점을 부정하기보다 인정하는 편이 더 낫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존재가 아니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 부족한 빈 부분에 해당하는 충만을 다른 곳에서 찾기 위해서 그 점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그리하여 나는 가끔 밤 산책을 할 때면 예언자의 소맷자락 한 끝을 붙잡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55쪽)

 

* 스페인과 러시아에만 남다른 민중예술이 있다. 민중이 자기들의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들 나라에서는 침체와 가난이 너무나 오래 지속된 나머지 그로 인한 모든 사치의 감정들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예술에는 다시 되풀이 되지 않을 어떤 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어떤 민족은 그들의 순진무구함으로 인하여 그 순간을 연장하는 것 같다.

"여자를 멀리하고 학문에 전념하다" 베네치아 여자가 루소에게 한 이 말이 그는 이탈리아에서 사는 모든 이유를 날려버린다. 북쪽 나라 사람은 다름아니라 살아가면서 한 번쯤 정열이 무엇인지 배우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이 배웠던 것을 잊기 위하여 이탈리아로 간다. (92쪽)

 

* 노엘 베스페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삶은 절약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험을 통해서 얻어진다." 절약하기보다 창조하기 위해서 더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아니 한 걸은 더 나아가, 모든 것을 헐뜯고 허물어뜨리기보다는 창조하기 위해서, 지신의 창조를 굳게 믿기 위해서 더욱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131쪽)

 

* 시대가 혼란스럽다고? 모든 시대는 다 혼란스러웠다. 혁명과 전쟁은 끝없이 계속되어왔다. 시는 덧없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스탕달은, 러시아 원정에 따라갔다는 점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지만, 소설 『파름 수도원』을 쓴 작가라는 점에서는 더할 수 없이 의미를 지닌다. 샤토브리앙은 우리가 볼 때 교황청대사로서 시간낭비만 했지만 로마의 들판을 헤매던 그의 몽상들... 그러니까 이를 테면 허송세월했다고 말하는 그 시간은 우리에게 남아 있다. (179쪽)

 

* 인간의 삶은 그 덧없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것이 된다. 인간은 마치 이 세계가 중요한 것이라도 되는 양 세계 내에서 일할 수 있고, 또 세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이 미리부터 그 결실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하는 태연한 활동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에 요구되는 것은 .... 어떤 충실성이다. (220쪽)

 

 

같은 책을 두 번 산 게 한두 번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건 번역자가 다르니, 다행이다.

'침묵하는 사물들의 음악' 1987년 함유선 번역, 1995년에 발행한 9쇄를 먼저 읽었다.

그러고 보니 이 책도 일찌기 내 역마살을 부추긴 게 역력하다.

 

--- 지중해가 강요하는 선과 그 형태로 인해서 지중해는 진리를 행복과는 떨어질 수 없은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바로 빛의 취기가 명상의 정신을 더 끌어올리게 할 뿐이다. 이리하여 지중해는 절대의 숭배와 행동의 숭배를 같은 거리에 두고 있는 하나의 형이상학을 불러 일으킨다.

- 서문 중에서 1937. 7

 

결국 나는 지중해 섬들 - 로도스, 크레타, 몰타... 를 돌고 지중해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알베르 카뮈의 '나의 스승이자 나의 가장 좋은 친구' 라는 칭송과 <섬>의 서문에 바친 찬사가 마냥 부러운 장 그르니에. 그의 시적 명상과 묘사, 철학적 반성, 풍부한 서정으로 어떤 페이지를 열어도 눈을 반짝이게 하는 문장이 기다린다.

 

 

알제의 카스바

--- 내가 그토록 자주 내 마음 속에서 느끼곤 했던 그 공허, 카스바에서는 그 공허를 메꾸었다고 느끼기 위해서 하늘을 향해 내 두 눈을 들어어올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시인이 아닌 사람은 자연이 곧 노래인 그런 곳에서 살아야 하고, 희망이 없이 사는 사람은 어떤 희망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곳에 머물러야 하고,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한 사람은 자신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맨발로 뛰노는 어린아이의 가벼운 리듬에 맞추기 위해 여기에 와야 하리라.

 

 

그리스의 묘비명

그리스의 가장 커다란 매력, 끊임없이 샘솟는 듯한 매력은 예로부터 그 나라가 매우 소박하다는 데에 있다. 그리스는 오로지 매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유혹한다는 것은 바로 정도에서 벗어나도록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는 다만 우리로 하여금 정도로 되돌아오게 애쓸 뿐이다.

--- 묘지라는 것은 <잠자는 곳>이다. 유티코스는 다만 잠들게 되었을 뿐이다. 이윽고 이 깊은 잠이 다만 약간의 시간을 가질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리라. 기독교인들의 묘비명을 읽어 보면, 죽음을 누르고 승리한 생명의 찬가를 노래할 때, 매우 공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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