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팔자 (犬 八字)
ilju10000@naver.com 정일주
한적한 산골 마을 마산 댁 앞마당에 한가히 졸고 있는 개를 바라보며 증산 댁은 지난여름을 떠 올린다.
머지않아 아들로부터 서울 집으로 올라오라는 연락이 올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동네 사람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내가 아들 집에 다녀오면 큰 호강이라도 받다가 내려온 줄로 알고 있다.
어제도 윗집 마산 댁이 놀러와 서울 아들 집에 가서 어떻게 지내다 왔냐는 말에 아들 집에 개 봐주러
갔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동문서답을 하고 말았다. 평소에는 전화도 없던 아들 내외는 휴가를
간다거나 해외여행을 떠날 때면 어김없이 증산 댁 전화는 조석도 잊고 울려댄다.
아들 집에 도착하면 며느리는 시어미에게 개 돌보기 교육을 시킨다. 해피는 매일 목욕을 시켜야 하고,
해피 식사는 노화 방지에 면역력 향상을 위해 아침에는 유기농 오리고기에 저녁에는 럭셔리 독 닭고기를
먹이라고 메모를 시어머니에게 전해주며 “어머니! 이 해피는 보통 개가 아니에요, 장모 치와와라고
삼백오십만 원 주고 데려왔어요, 저보다 동호 씨가 해피를 더 사랑해요, 우리 없는 동안 신경 좀 써주세요,
저녁에는 공원에 나가 산책을 꼭 시켜야 해요“
허, 어쩌다 어미에게 용돈 십만 원 보내주는 것은 벌벌 떨면서 개새끼가 뭐라고 쇠고기에 오리고기냐며
증산 댁은 못 마땅해 한다. 아들 내외는 결혼 한지 팔 년이 지나도록 손주도 낳지 않고 개새끼를 제 새끼 돌보
듯이 온갖 정성을 들인다. 아파트 현관 앞에 개를 태우고 다니는 유모차를 보면서 증산 댁은 다시는 아들 집에
오지않겠다고 다짐을 한 것은 여러 해 전이다.
해질 녘에 공원 넓은 잔디밭은 개들의 운동장으로 변한다. 개들은 뛰어놀고 젊은 여인들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면서 자기 집 개를 자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떤 젊은 부부는 헤미를 펫 호텔(Pet Hotel)에
맡기고 휴가를 떠날 예정이라며 헤미가 눈치도 빠르고 너무너무 영특하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공원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여인네를 바라보던 노인이 긴 한숨을 내쉬며 푸념 섞인 목소리로 증산 댁에게
말을 건다.
“저 여자들은 부모보다 개한테 더 잘하는 이유가 뭐여? 나는 무슨 팔자가 개만도 못 헌 겨”
“ 요즘, 개 값이 얼마나 비싼지 아 셔 유?”
"비싼들 부모보다 비싼 겨? “
”제 부모는 자장면에 여인숙에서 잠재우고 개새끼는 유기농 오리고기나 쇠고기에 호텔에서 잠재우는
세상이 구 먼 유“
“제 놈들 이만치 살게 해 놓게, 나이 든 어미 아비를 개만도 못하게 대 하 구―-”
“시방은 부모는 개만도 못 하 대유~ 부모는 식구 중에 순번이 맨 꼴찌라고 하 잔유”
농촌에서 보신용으로 기르던 개들이 서울에서는 상전 대접을 받는 세상이라며 서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가에는 애환이 서린다. 경산에서 올라왔다는 노인은 자식이 고생 접고 농토를 정리하여 서울로 와서
편히 지내라는 유혹에 논밭을 모두 팔아 아파트 마련해주고 아들네 집으로 들어와 살아보니, 일상은 개 돌 붐
이로 변했고, 조석으로 얻어먹는 밥맛은 소태를 씹는 맛이란다. 고향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는 경산 댁은 증산
댁 손을 잡고는 절대로 고향을 떠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일 봐 유, 저 두 우리 집 개 목욕시킬 시간이고 먼 유”
“집에 도착하니 전화벨이 요동을 친다, 엄마! 여기 하와이야! 엄마! 엄마! 해피 산책하고 목욕시켰어?
밥도 잘 먹고, 잘 놀아? 오늘 아침에는 유기농 오리고기 먹였지? 엄마! 엄마! 내 말 잘들리지? 요즘 해피가
컨디션이 안좋니까 해피 방에 에어컨은 26도로 맞춰서 꼭 켜줘, 해피는 큰소리치면 경기해”
어미의 안부는 묻지도 않고 해피를 먼저 찾는 아들의 음성이 타인처럼 들려온다.
지난 여름 기억이 떠오른다. 해피가 몸살이 라며 오밤중에 며느리는 잠든 아들을 깨워 허둥지둥 해피를
차에 태워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와서는 하는 말이 해피가 영양실조에 운동부족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어미가 속이 불편하다는 말을 했을 때, 엄마는 과식을 해서 그렇다고 핀잔을 주고는 날이 밝으면
동네 병원에 가보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는 아들 내외를 바라보며 증산 댁은 소리쳤다.
"뭘, 과식을 하니~ 먹은 건 김치에 찬밥밖엔 없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며 증산 댁은 푸념을 늘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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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내가 노년에 이 꼴 보려고 힘들게 흙 파서 자식을 키운 겨”
(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개팔자'를 블로그에 올리고 난 후 2017년 9월 7일 목요일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린 犬에 대한 기사입니다.
'펫 푸어'라도 괜찮아, 금쪽 같은 애견이니까.
직장인 황건복(28)씨는 경기도 일산의 작은 원룸에서 세 살짜리 몰티즈 강아지
'몽이'를 키운다. 그는 피부병에 자주 걸리는 강아지를 위해 1포대에 (5키로) 가격이
8만원이 넘는 고급 유기농 사료를 먹이고, 두 달에 한 번씩 10만원을 주고 미용을 시킨다. 월급 200만원 중
강아지를 위해 쓰는 돈이 매달 20만~30만원, 황씨는 '월급에서 집세 전기료 통신비 등을 빼고 남은 돈에서
강아지 몫을 먼저 떼어놓고 내 용돈을 쓴다" 며 "용돈이 모자라면 내 식비를 줄인다. 자식 같은 강아지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 고 했다.
예전엔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강아지, 고양이를 키웠다. 지금은 전용 사료를 먹이고, 반려동물
한 마리 기르는데 월 평균 약 13만 5천원이 들었다.
본인 식비 줄이며 사료 구매
접종비 내려고 아르바이트도
그렇다고 반려동물 키우기가 중산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한수의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반려동물이
있는 가구의 약 34%는 소득 200만원 이하로 추산된다. 이러다 보니 반려동물 키우느라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펫 푸어(pet poor) 란 말도 생겨났다.
비싼 반려동물 접종, 수술비를 대느라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생 강모씨는 지난달 말
서울의 한 수영장에서 2주간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키우는 고양이가 혈뇨를 눠 병원에 갔다가 요로결석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비만 100만원을 냈기 때문이다.
"강씨는 한달 용돈이 50만원인데, 고양이가 아풀 때마다 수 십만원이 드니 그달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라고 했다.
'펫 푸어' 현상은 1인 가구의 증가와 저 출산, 고령화가 영향을 미쳤다. 비교적 소득이 낮은 청년층과
고령층이 홀로 개나 고양이를 기르며 가족에게 쏟는 애정을 대신 쏟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가족이 없다보니, 반려동물에 대신 쓰는 것 "이라며, 앞으로 '펫 푸어' 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고 했다.
(양승주 기지)
ㅋ ㅋ 머지 않아 개, 고양이 건강 보험도 출시할 지 모르겠네요.
개를 보고 "내새끼"라 부르며, 부모보다도 반려견에 더 애착을 갖는 세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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