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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풀다 / 임이송

작성자노정숙|작성시간22.01.14|조회수32 목록 댓글 2

울음을 풀다

임이송

 

 

나에게 울음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나를 묶는 것이고 또 하나는 푸는 것이다. 오늘 도심 한복판에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도시에 살면서부터 점점 불감증 환자가 되어가는 나에게 뻐꾸기 울음소리는 두 이야기를 불러냈다.

5년 전, 시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입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인과 가족들 40여 명이 모인 자리였다. 젊은 내 아버지가 죽었을 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것과 달리, 통곡했다. 울음이 터진 곳은 엉뚱한 지점에서였다. 예배를 인도하던 목사님이 ‘사랑하는 큰며느리를 두고…’라는 부분에서였다. ‘사랑하는 큰며느리!’ 그 단어가 메아리처럼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을까. 시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술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는 열리지 않을 입술은 내 창자를 뒤틀리게 했고 내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음이 용솟음치듯 터져 올랐다. 아무리 울음을 끊으려 해도 끊어지지 않았다.

평생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단 한 마디였다. ‘미안하다’는. 마지막 2~3년 병간호를 하는 동안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는 끝내 한 마디를 아꼈다. 단단했던 벽, 둘이 마주 보고 뚫을 수 없었던 걸 울음으로 혼자 풀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그렇게라도 풀어내지 않았다면 나는 아버지 때처럼 오래 그에게 묶여있었을 것이다. 모인 사람들은 나의 길고 깊은 울음에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을 것이다. 예배는 십여 분간 중단됐고 모두 내 울음이 그치기를 묵묵히 기다려줬다.

마치 예전 대갓집에서 대곡(代哭)하는 여자처럼 울었다. 내 안에 그렇게 많은 설움이 들어있을 줄 몰랐다. 그래서일까, 나는 시아버지가 죽은 계절이 돌아와도 마음이 담담하다. 남은 게 없다. 그날 그 자리에서 다 풀었다. 혼자 푸느라 섧게 울었다. 내 울음소리에 걸려 시아버지가 저승 가는 길에 발걸음이 멈칫멈칫했을까, 안 그랬으면 좋겠다. 둘 중에 더 아픈 사람이 풀면 되는 거였다. 그와는 그렇게 정리가 됐다.

40여 년 전, 아버지가 죽던 날은 봄날치고 좋았다. 잔잔하고 말갛고 따뜻하고 고요했다. 그런데 오후 세 시, 아버지의 마지막 숨이 넘어갈 즈음 갑자기 여우비와 함께 앞산의 뻐꾸기가 울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뻐꾸기 울음소리로 잠겨 매년 봄 나를 찾아왔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오랜 시간 우울을 앓았다. 산 같은 존재 하나가 느닷없이 사라진 봄은, 장미꽃 없는 5월처럼 막막했다.

그때 나는 지금의 나보다 젊은, 마흔다섯의 아버지가 가졌을 두려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갑자기 맞닥뜨려야 했던 죽음과 어린 자식들과 세상 물정 모르는 순한 아내와 산더미 같은 빚을 남기고 죽어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에 대한 고찰이 없었다. 내 나이 탓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암에 좋다는 굼벵이를 찾으러 썩은 짚단을 뒤지고 다녔지만, 그조차도 불순했을지도 모른다. 어려운 형편에 장학생으로 간신히 입학한 대학을 3주 만에 자퇴해야 하는 마음과 여린 어머니와 초등학생인 막냇동생과 어마한 빚을 떠안아야 한다는 걱정이 내 등에 얹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죽고 10여 년간 몸이 아팠다. 아픈 내내 이유를 몰랐다. 걱정이 된 어머니가 철학관을 하는 먼 친척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내가 아버지를 묶어두어 아픈 거라고 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그 이후 닥친 사나운 일들을 고스란히 삼키기만 했지 한 번도 뱉어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내 무릎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부터 묻고 오는 내내,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 톨의 눈물도 흘린 적이 없었다. 마비된 슬픔을 껴안은 채 살고 있었다.

서른 즈음 아버지가 죽은 봄날, 하얀 사과꽃을 보며 실컷 울었다. 그러고 나서부터 꿈에 아버지가 덜 보였고 내 몸도 조금씩 나아졌다. 비로소 아버지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아파트 숲에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울음소리를 따라가보니 불곡산 자락이었다. 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한 후 한참을 서서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사과꽃 하얗던 봄날의 과수원과 아버지와 빚쟁이들을 불러내 나를 공감각적으로 뒤흔들었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뭐든 흐르는 게 좋다. 생각이든, 마음이든, 인연이든 한곳에 오래 묶어두면 고약하고 완악하고 아프고 깊어진다. 아버지를 보내고 오래 참았던 울음은 그 시간만큼 나를 옭아맸고 시아버지를 보내며 빨리 풀었던 울음은 그만큼 나를 빨리 놓아주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깊고 오래 잠겨 있을 수 있다. 그들도 나처럼 한바탕 풀어낸 후 나를 놓아주고 자신도 가벼워지길 바란다.

 

 

<The수필 2022 빛나는 수필가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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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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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산옥 | 작성시간 22.01.24 울음에 대해 어쩌면 저리도 잘 풀어낼까요.
    마음 뭉클하게 읽었습니다. 나에게도 그러한 울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 읽고 나니 내 마음을 대신 해준 것 같아 대리만족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글쓰기에 대한 공부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용선 | 작성시간 23.02.24 뭐든 흐르는게줗다. 생각이든, 마음이든 인연이든,한곳에 묶어두면 아프고 깊어진다.
    절대 공감하며
    매인매듭 있거들랑 훌훌이 훨훨 털어버리려 마음비움을 연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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