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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 유감 / 안병태

작성자노정숙|작성시간23.01.11|조회수32 목록 댓글 3

문병 유감 

안병태  

 

 

  성의는 고맙지만 문병 좀 오지 마라. 문병을 왔으니 응당 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사연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없는 시간 할애하여 문병해주는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성의껏 대답해야겠지만 그것도 한두 번 말이지, 발병 원인으로부터 작금의 와병용태까지를 매번 브리핑하기에도 이젠 지쳤다. 오죽하면 녹음기를 이용할까 조차 생각했으랴. 했던 방송 또 하고 했던 방송 또 하다 보니 숫제 병상일지를 줄줄 외우겠다. 훈장들 강의가 괜히 유창한 게 아닌 모양이다. 나중에 문병 아니 왔다고 절대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 제발 문병 좀 오지 마라. 방금 한 팀 보내고 들어와 겨우 눈 좀 붙이려는데 또 들이닥치면 어쩌란 말이냐. 떼로 몰려와 병실이 비좁도록 북적거리니 이웃 병상 환우들 보기에 민망스럽다. 영접하랴, 브리핑하랴, 배웅하랴, 반복하다보니 힘에 부치고 번거로워 병이 더 악화될까 두렵다.

  문병 올 때 오더라도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모를 돌팔이 처방전 좀 그만 갖고 오너라. 백인 백방, 무슨 처방이 그리도 많으냐. 병상에 누워있는 처지에 어디 가서 ‘이슬 맞지 않은 개똥’을 줍어다 구워먹으며, 심지어 재래식 뒷간에 대나무를 담가놓았다가 백일 만에 건져서…… 우윀!!

  체면상 문병 왔거든 눈치 보지 말고 빨리빨리 좀 돌아가거라. 문병 체류시간과 성의표시 농도는 정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알라. 그저껜 딱따구리가 와서 문병을 지루하게 하더니만 기어이 식사시간이 돼버리고 말더라. 게다가 식사도중에 일어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밥상머리에서 반찬 그릇마다 일일이 점검한 후 흥분하여 가라사대,

  “칼로리가 부족한 것 같구먼. 이렇듯 영양을 부실하게 섭취하여 어떻게 병마를 이겨낸단 말인가!”

  탄식을 하는 한편 배식중인 영양사와 옥신각신하여 나로 하여금 영양사에게 미운털이 박히도록 일조하기까지 하더구나.

  빈손으로 와도 상관없으니 문병 올 때 제발 드링크 좀 들고 오지 마라. 성의를 생각해서 마시지 않을 수 없으나 성치 않은 몸으로 화장실 드나들기가 예삿일 아니다. 영양가 있고 씹을 맛 나는 육포가 그렇게도 없더란 말이냐? 이웃 병상의 친구들은 눈치껏 주효를 들여와 옥상에 숨어서 잘도 나눠먹는 눈치드라만…. 때마침 월드컵으로 TV가 달아오른다 하여 치맥을 들고 오라는 소리는 아니다.

염장을 지르려거든 아예 문병 올 꿈도 꾸지 마라. 문병 왔으면 생사나 확인하고 얼른 되짚어 돌아갈 일이지 하필이면 왜 집사람 앞에서 중요한 기밀은 누설해 분란을 일으킨단 말이냐. 병상 머리에서 ‘연가수당·세금환급’ 따위 정보들을 흘리면 어쩌자는 말이냐? 그대들 간 뒤에 눈을 가늘게 뜨고 묻더군.

  “연가수당이 뭔가요~~?”

  내가 얼마나 닦달을 겪었는지 아느냐? 쏠쏠하던 나의 연말 비상금은 이제 영원히 끝나버리고 통장은 압수당하고 말았다. 퇴원한 뒤 사무실이 한바탕 시끄러울 줄 알아라.

  문병 와서 봉투 좀 놓고 가지 말라. 옥신각신하기 민망스럽다. 우리 방 구석자리 저 노인은 문병객은커녕 보호자도 없는 외로운 처지라 내 병상에 교대로 갈아드는 문병객을 바라보는 눈빛이 사뭇 부러움에 젖어있다. 내게 들어오는 식품을 그 노인에게 나누어 주고는 있지만 별로 고마워하는 눈치도 아니더라. 일종의 위화감인가? 병실에서조차 빈익빈부익부가 있고 갈등이 있으니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성의는 고맙지만 내 아직 죽을병은 아니니 문병 오지 않아도 괜찮다. 내게 올 시간이 있거든 진도 팽목항으로 가거라. 정작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은 거기에 있다. 담요를 둘러쓰고 바닷가에 쪼그리고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억울하게 수장된 아들딸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넋 나간 부모들이 거기에 있다. 목숨 걸고 찬 바다에 뛰어들어 세월호에 갇힌 영혼들을 건져 올리느라 지치고 다치고 희생된 구조대원들이 거기에 있다. 그리로 가거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문병 올 시간에 유아무개 부자 좀 잡으러 다녀라. 온통 나라 안이 그 영감네 얘기뿐이니 시끄럽고 번거롭다. 게다가 포상금도 두둑하게 준다하니 좀 좋아? 우리 같은 서민에게 6억이 어디냐.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도 있다. 이번 기회에 풍진속세와 잠시나마 단절하여 아득한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첫사랑에 얽힌 짜릿하고 오금 저린 전설 몇 편 쓰려했었다. 그러나 환자들 신음소리, 문병객들 걱정소리, 코고는 소리, 이빨 가는 소리, 불경 테이프소리, 간호사들 잔소리… 첫사랑이고 풋사랑이고 다 글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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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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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산옥 | 작성시간 23.01.14 ㅋㅋㅋㅋ 웃음이 나오면서 맞아, 맞아 맞장구 치는 나는 또 무엇인가요.
    이런 글이 해학과 풍자가 깃든 수필이지요. 웃음이 나는 글이지만 여운이 남아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노정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1.15 이렇게 재미있게 쓰면 좋겠어요.
    대단한 내공이겠지요.
  • 작성자용선 | 작성시간 23.02.18 문병갈때 신경좀 쓸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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