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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파는 가게 / 홍성순

작성자노정숙|작성시간23.02.20|조회수22 목록 댓글 2

구름을 파는 가게

홍성순

 

 

 

 새벽을 밀며 사내 두 명이 들어온다. 허름한 복장에 모자를 눌러쓴 중년남자들이다. 이윽고 탁자 위에 놓인 컵라면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낯이 익지 않은 걸 보니 타지에서 일을 찾아 이곳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밤새 조용하던 가게가 서서히 온기를 더하며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5년 전, 편의점을 열었다. 주변 사람들이 힘들다며 말렸지만 가장이었기에 주저함 없이 선택했다. 대형조선소가 위치해 있는 이 지역은 대부분 근로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바닷가 도로를 따라 상가들이 해안선처럼 쭉 늘어서 있고 편의점은 골목 안에 살짝 들어와 앉아 있다. 원룸이 많아 목이 좋아서인지 손님들의 왕래가 잦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종일 심심하지 않다.

 청년이 삼각김밥과 우유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나간다. 급하게 들어온 아가씨는 소보로빵 하나를 집는다. 그 뒤를 모닝커피와 담배를 사는 직장인들이 밀어닥친다. 계산하랴, 상품 위치 설명하랴 눈 코 뜰 새가 없다. 잠시 숨을 돌렸는가 싶으면 학생들이 떼로 몰려든다. 가게 안은 한층 더 활기를 띤다. 이때가 하루 중 가장 분주한 시간이다.

 편의점은 실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소량으로 포장하여 판매하는 가게이다. 바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소비 형태를 가장 적절하게 충족시켜주는 이곳에선 대부분 일회용을 취급한다. 도시락, 김밥을 비롯한 인스턴트식품과 과자 및 음료, 간단한 생활용품, 상비약 등이 주를 이룬다. 최소화되고 간편화된 상품을 취급하는 편의점은 다양성과 편리성, 즉시성 때문에 현대인의 생활에 필수적인 장소로 자리를 잡았다.

 어릴 적, 백여 가구가 모여 사는 시골 동네엔 구멍가게가 하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늘 가게 앞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유리창 너머로 진열된 상품들은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캐러멜과 쫀드기, 풍선껌, 또뽑기는 단연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알록달록 포장된 과자와 장난감을 보며 빈 호주머니만 만지작거렸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먼 도회로 가서 구멍가게 주인이 되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이.

 매장의 상품들은 끊임없이 바뀐다. 새로운 물건이 연일 쏟아져 나오는 탓에 대부분 오래 진열대를 차지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새우깡이나 바나나우유처럼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제품은 예외이다. 어떤 것은 일주일 자리를 보존하다 폐기 처분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부나비 떼처럼 도시로 흘러와 정착하지 못하는 단순 노무자들과 닮은 운명이다.

 고객 중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첫 직장으로 부푼 희망을 안고 온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대기업에서 일찍 명퇴한 가장은 가족의 생계가 걱정되어 이곳에 왔다.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알뜰한 청년은 돈을 모아 맥줏집 사장이 되었고 횟집을 이십 년간 운영하던 사장은 하루아침에 일용직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모두 도시라는 거대한 물질문명에 소비되고 마는 상품들이었다.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부터는 좀 한가한 시간이다. 이후론 간간이 주부들이 들른다. 이웃에 사는 훈이, 현이 엄마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찾아오는 고객이다. 집안일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 성과급 얘기며, 아이 성적, 어려워진 경제 상황 등에 대하여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때로 훈훈한 내용도 있는 반면 걱정도 많이 섞인다.

 어스름이 밀려오자 원룸에 하나둘 불이 켜진다. 조용하던 동네에 다시 활력이 넘친다. 한가하던 가게도 붐비기 시작한다. 매장 앞 벤치에는 한 무리 사람들이 맥주 한 잔으로 피로를 푸느라 왁자하다. 퇴근 발걸음이 빨라지고 하루를 마감한 얼굴엔 순한 웃음들이 묻어난다. 저녁 짓는 냄새가 시장기를 돋우는 이때는 원룸들의 모서리가 잠시 둥글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끔 외국인이 가게를 찾는다. 금발의 아가씨는 물건을 찾지 못해 가게 안을 빙빙 돈다. 손짓으로 겨우 소통하다 원하는 물건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는다. 그녀는 러시아인이었다. 더듬더듬 우리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한국에 처음 와서 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해서 생필품 정도는 무난하게 사는 편이라고 한다. 그녀를 볼 때면 외국에 나가 취업하고 있는 큰아이가 생각난다. 딸아이도 낯선 이국에서 저렇게 불편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괜히 뭘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진다.

요즈음, 조선 경기불황으로 회사 일감이 많이 줄었다. 그 영향으로 명퇴자가 생기고 근로자들이 하나둘 떠났다. 원룸엔 ‘빈방 있음’이라는 딱지가 덕지덕지 붙고 거리는 한산해졌다. 매출이 하향곡선을 그었다. 이웃 식당 주인은 장사를 접고 떠났으며 다른 가게들도 근심으로 가득 찼다. 직장인 고객이 많았던 편의점도 크게 타격을 입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오랫동안 찾아오는 단골고객들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늦은 밤에는 손님이 드문드문 온다. 주로 취객이나 올빼미족이다. 밤마다 오는 젊은이는 떡볶이를 만든다. 대기업에 취업이 되었다며 자랑까지 늘어놓는다. 술 취한 중년 남성은 컵라면을 끓여 달라고 트집을 잡다가 탁자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편의점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드나든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도시의 유민(流民)들은 여남은 평 가게에서 뭉게뭉게 구름 같은 희망을 구입하고 그것을 가슴에 품는다.

 어두워질수록 편의점 불빛은 더 환하게 빛난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사람, 입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 이방인이 되어 생활하는 이들, 원룸에 누워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24시간 365일 매장을 닫지 못한다. 망망대해의 등대 같은 편의점이 없다면 저들은 어디에서 고달픈 삶을 위로받을 수 있을까?

 바람이 분다. 캔이 또르르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잠시 생각 속에 잠긴다. 진열대 상품이 바뀌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이곳을 스쳐 떠났다. 가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지금은 어디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있을까? 내가 꾸었던 꿈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 편의점을 오래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손님 발걸음이 뜸해진다. 처마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원룸마다 하나둘 불이 꺼진다. 새로 출시된 과자며, 음료, 생필품을 정리한다. 형형색색의 포장지들이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내일이면 이것들은 또 누군가에게 안겨 외로운 가슴을 따뜻하게 위로해줄 것이다. 진열대 위로 작고 앙증맞은 구름들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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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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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용선 | 작성시간 23.02.20 현대인의 필수품.
    편의점을 오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허름한 옷차림의 가장들.
    그래도 24시 언제나 손쉽게 찾을수있는 편의점은 그들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겠지요.
  • 작성자김산옥 | 작성시간 23.02.21 삶의 향기랄까요.
    아주 거창한 지식을 담지 않았어도, 조근조근 써내려간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가 마음을 울리는 한 편의 작품이 되네요.
    그 속에는 진실이 담긴 까닭이겠지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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