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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 문(門)

작성자알퐁소|작성시간26.06.22|조회수17 목록 댓글 0

  산다는 건 문을 드나드는 일이다. 회전문이든 일반문이든 말이다. 단지 회전문을 들어오고 나갈 때는 곁에 다른 사람도 함께 밀어야 하지만, 일반문은 홀로 열고 닫아야 한다.

 어머니의 생명문(門)을 나와 학교문을 거쳐 사회문을 두드리다 지금 사는 아파트문으로 드나들고 있다.  오래전 은퇴의 문으로 왔다. 한때 글로벌 기업의 최고 권력자가 있는 '오너의 방 문'을 넘나들며 하나의 조직인으로 살다가, 1평 남짓한 '감옥의 문'까지 갔다가 8시간 만에 풀려났던 일까지...내가 지나 온 문은  잊지 못할 순간을 남긴 일도 있었다. 이젠 남은 건 내 삶이 끝날 때, 나를 기다리는 '좁은 문'으로 가는 일이다. 

 내가 거쳐 살아온 문은 내가 만든 건 없다. 모두 타인이 만들어 놓은 문이다. 생각해 보면 고마운 문이다. 때로는 나를 돌아보게 되어 겸손하게 만들고 때로는 가난한 이를 돌아보게 한 문도 있었다. 주말에 성당문을 들어갈 때는 낮은 자세로 수그리고 , 카톡에 딸려 있는 여러 곳의 방을 들어가고 나오며 세월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 왔다가 돌아가는 일, 즉 들어옴의 탄생과 나감의 죽음 앞에서 세상의 모든 문은 평등하다. 그 문이 어떠하든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옮기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손끝과 어깨로 전해져 오는 고독의 결은 문의 모양에 따라 다르다. 회전문 앞에 서서 유리 안쪽으로 발을 디딜 때,  한쪽이 막힌  그 칸 속에 홀로 서게 되지만, 내가 들어선 문은 결코 나만의 힘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앞사람이 밀고 나간 힘의 여운이 지렛대가 되어준다. 내 등 뒤편 어딘가에서 누군가 또 이 문을 밀어주고 있다는 위안을 갖는다. 회전문의 느낌은 그래서 따스하다. 하지만 일반문은 잔인하다. 묵직한 문고리를 잡는 순간부터 앞을 가로막은 ‘벽’을 깨뜨리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 손아귀의 힘과 어깨의 무게에 달려있다. 앞사람의 힘도, 뒷사람의 도움도 없다. 내가 힘을 빼면 문은 사정없이 닫힌다.

 

 오늘도 나는 수많은 문을 지나며 산다. 함께 밀어 간다는 회전문의 위로를 받다가도, 홀로 밀어야 하는 일반문의 고독을 배운다. 그리하여 언젠가 마주할 생의 마지막 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세상의  첫 문에 들어설 때 내 가족은 웃었지만 세상 밖의 문으로 나갈 땐 내 곁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난 모른다. 그때도 타인을 위한, 타인이 만든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2026년 6월 21일 5.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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