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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신(지송)

[합평]빈틈을 나누다

작성자지송|작성시간26.06.17|조회수22 목록 댓글 0

빈틈을 나누다

 

  운동을 마치고 헬스장의 출입문을 나선다.

누군가 뒤쫓아 와서 말을 건넨다. 뒤돌아보니 내 또래의 여성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서 있다. 그녀의 모습이 낯이 익다. 조금 전에 운동 기구에서 계속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느라 다른 이의 순서를 배려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기다려도 내려올 기미가 없으니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녀를 보자 조금 전에 불편했던 마음이 떠오른다.

 

  그녀는 내가 신은 운동화를 내려다본다.

죄송해요. 신고 계신 신발을 잃으셨죠? 제가 그걸 신고 갔었어요.”

몇 주 전에 검은색 운동화를 잃었다. 운동을 마치고 탈의실에 들어섰다. 신발장에 올려놓을 때, 비슷한 신발이 눈에 띄었다. 설마 자기 신발을 착각할 리 없겠지, 생각하며 샤워실로 향했다. 마감 시간이 임박해서 서둘러 나왔는데, 신발장에 내 신발이 없어졌다. 신발을 벗은 지 십여 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남은 신발은 색깔과 브랜드는 같지만, 내 것보다 크기가 크고 깔창 색깔도 달라서 얼핏 봐도 차이 난다. 내 신발은 새것도 아니고 탐낼 정도로 고급도 아니었다. 운동 갈 때마다 신던 것이라 발에 익숙할 뿐이다. 두고 간 신발도 적당히 낡았다. 크기가 다른 남의 신발을 신고 걷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

 

  많이 낡지는 않았지만, 더 편한 새 운동화를 구매할 생각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신던 신발을 잃게 되니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것과 함께 한 날들이 떠오르면서. 이튿날, 바뀐 신발을 쇼핑백에 넣어서 헬스장의 데스크에 갖다 맡겼다. 직원이 내 것과 닮은 운동화 사진을 탈의실 입구에 붙여 주었다. 분실한 날짜와 시간도 기록했다. 알고 보니 그런 상황이 비일비재하단다.

 

  그 신발을 잃고 나서 새 운동화를 구매할 의욕이 사라졌다. 내가 잃은 건 신발만이 아니고 그것과 함께 한 시간의 흔적, 동행의 온기였다. 운동하러 갈 때마다 신발 주인이 찾아갔는지 확인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감각이 무디어도 그렇지, 남의 신발을 바꿔 신고 그토록 감감무소식일까,

 

  처음에는 화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슨 사정이 있겠지, 생가하기로 했. 찾기를 포기한 어느 날, 신발장에 내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그것을 어루만졌다. 직원에게 달려가서 내 신발을 찾았으니 두고 간 건 신발장에 갖다 놓기를 청했다. 출입구에 붙였던 사진도 떼었다. 다시 만난 운동화를 더 깊어진 애정으로 깨끗이 빨아 신고, 잊었던 사실조차 잊었다.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신발만 살피던 그녀가 내 뒤를 쫓아왔다미안하다며 자신의 실수를 설명하며 자책한다. 남의 신발을 신었다는 걸 모르고, 자기 신발을 집에서 계속 찾았다며. 평소에 즐겨 신던 것을 찾기 위해 신발장을 뒤지다가 낯선 운동화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찾았으니 괜찮다는 내게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본인 것보다 작은 신발을 신고, 순서를 기다리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그녀의 무심함이 보인다.

 

  뒤늦게 그녀의 성향을 짐작하니 밉지 않다. 빈틈이 없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허술한 그녀에게 친근함을 느낀다. 맡긴 곳에 함께 가보니 정작 그녀의 신발이 없다. 그새 보관 장소가 다른 곳으로 바뀌었단다. 주말에만 근무한다는 직원이 자기는 잘 모르니 평일에 다시 오라고 한다. 이제 그녀가 자신의 신발과 만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녀의 실수를 보며 어떤 안도감을 느낀다. 타인의 빈틈 속에서 내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누군가의 실수는 거울에 비친 또 다른 나를 보는 듯하다. 우리는 비슷한 곳에서 넘어지고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존재이다언젠가 나도 비슷한 실수를 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실수 앞에서 조금 더 겸손해진다.

 

  그녀가 자신의 신발을 찾았을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완벽한 이는 없고 가끔은 남의 신발을 자기 것이라 믿으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타인의 실수는 비난보다 이해를, 웃음보다 공감을 불러온다. 빈틈의 여지, 작은 실수는 흠결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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