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의 뜰, 심우장에서
이영옥
검붉은 오디가 지천으로 깔린 성북동 언덕, 좁은 계단을 찬찬히 밟고 올랐다. 노송 굵은 가지 아래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그가 미소 짓는다.
“소는 찾았는가.”
만해의 뜰, 심우장尋牛莊이다.
볕 한 줌 들지 않는다는 북향집이다. 김동삼과 만공 등 이곳에 들어섰을 수많은 열사와 애국 청년들의 숨결이 뜨겁게 느껴진다.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둘러보니, 마당 한 켠 담 모퉁이에 만해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서 있다. 반가워, 선뜻 다가섰다. 비록 합성수지로 외과수술을 받았지만, 나무는 꼿꼿한 몸통에 울창한 잎을 펼치고 있다. 만해가 어린 묘목을 심으며 오래오래 그윽한 향을 피우기 바랐으리라. 나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거친 수피에 손을 얹는다.
매년 6월 29일, 이 심우장에서 만해 추모 다례재茶禮齋를 올린다. 올해에도 행사가 있을 예정이란다.
26세에 출가하여 66세에 입적하는 날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였다. 불교계 혁신을 위해 『조선불교유신론』을 썼고, 대중이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불교대전』을 엮었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생을 바쳤다.
만해는 3⸳1독립선언을 이끈 후 투옥된 서대문 형무소에서 『조선독립의 서』를 작성했다. “자유는 만유萬有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로 시작되는 선언서는 전 인류가 가슴에 새겨야 할 명문이다. 시인으로서 그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했다. 아직도 풀지 못한 88수의 시에 담긴 의미는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될 것이다. 그리고 민족의 얼과 자유⸳평화 사상을 널리 전하려 소설 『흑풍』을 썼다. 이 심우장에서였다.
“조선인이 명백히 제 나라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 어찌 죄가 된단 말인가? 그러므로 나는 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일본인 검사의 심문에 당당히 외친 그였지만, 이 강산 어디에도 마음 편히 거처할 수 없었다. 만해가 기거한다는 소문만으로도 그곳은 사찰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 협조하면 국유지를 내주겠다는 유혹을 쏟아냈지만, 만해는 일거에 거절했다. 심우장은, 이렇듯 강직한 그의 만년을 위해 벽산스님을 비롯한 지인들이 지어준 집이다. 이곳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딸을 키우며 말년을 보냈다.
「심우장」
잃을 소 없건마는/ 찾은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내게 주는 말씀이건만 담아 삭히기에 이 그릇은 너무도 보잘것없다. 눈 둘 곳을 모르고 허둥대다가 가까스로 퍼 올린 것이 무소득無所得이다. 혹여나 싶어 살며시 눈을 드니 그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짓는다. 여전히 기울어진 고개에 가슴이 쿵 떨어진다. 만주에서 머리에 맞았던 총상의 후유증이다. 일생을 병고에 시달렸으련만, 나라 잃은 고통에 비하랴 했을 만해이다.
밤꽃 향기 가득한 만해의 뜰에서 반가운 이들을 만났다. 엄마아빠 곁에서 흰 나비를 쫓아 깡충거리는 아이들이다. 그가 염원했던 자유와 평화 속에서 태어나, 울창한 나무들처럼 푸르게 이 나라를 지켜갈 미래들이다. 만해가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