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햇살이 투명한 쪽빛 하늘을 쏟아내고, 바람 끝마다 상큼한 아카시아 향기가 실려 오는 날이면, 잊고 지냈던 추억의 조각들이 하나 둘 피어나 아득한 옛 시절 속으로 젖어 듭니다.
성균관의 낡은 서책 속에서 600년 전의 청년 최한경(崔漢卿)을 만났다. 훗날 이조참판이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던 그였지만, 그 기록의 갈피마다 묻어 있는 것은 권력의 무게가 아닌, 풋풋하고도 아릿한 한 여인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박소저'라 불리던 고향의 이웃집 여인. 부친들끼리 혼담을 나누었을 만큼 가까웠으나, 끝내 닿지 못했을지도 모를 그 애틋한 마음이 '좌중화원(坐中花園)'이라는 시가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꽃향기처럼 번져온다.
시의 첫머리에서 그는 꽃밭에 앉아 꽃잎을 들여다본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찌 그리 농염한지." 꽃을 보며 님을 떠올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꽃의 붉은 빛에서 님의 입술을, 꽃의 부드러운 결에서 님의 살결을 보았을 청년의 눈동자가 그려진다.
그는 꽃을 보다가 문득 하늘을 본다.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꽃밭에서 시작된 시선은 어느덧 푸른 하늘로 확장된다. 땅의 꽃이 님의 현신이라면, 하늘의 쪽빛은 님이 머물고 있을 세상의 넓이일 것이다. 꽃과 하늘, 지상과 천상을 오가는 그의 시선 끝에는 오직 한 사람, '미인(美人)'이 서 있다.
이 시의 백미는 '길일(吉日)'에 대한 갈망이다. "이렇게 좋은 날에, 좋은 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단순히 님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날을 골라 님이 오기를 소망한다. 님이 오시는 날이 곧 길일이 되는 것인지, 길일이기에 님이 오셔야만 하는 것인지, 그 경계조차 모호한 간절함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꽃밭을 지나친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의 꽃밭에 앉아 누군가를 이토록 순수하게 기다려본 적이 있었던가. 현대의 사랑은 속도를 숭상한다. 닿지 못하면 잊고, 기다림은 미덕이 아닌 비효율로 치부된다. 하지만 최한경의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기다림이란, 그 사람을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정성껏 심어 두고 매일 물을 주는 행위가 아니겠느냐고.
정훈희의 노래 '꽃밭에서'가 맑은 음색으로 우리 곁을 맴돌 때, 우리는 그 선율 속에서 600년 전의 청년이 보았던 꽃잎과 하늘을 본다. 비록 그가 그리워했던 박소저가 그의 곁에 머물렀는지, 아니면 그저 마음속의 영원한 꽃으로 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꽃밭에 앉아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그 '마음의 시간' 자체가 그에게는 가장 찬란한 길일(吉日)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창밖으로 봄바람이 분다. 나 또한 내 마음의 꽃밭에 앉아 본다. 굳이 님이 오지 않아도 좋다. 그저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이토록 푸른 쪽빛으로 물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 날이 아니겠는가.
꽃은 피고, 하늘은 푸르며, 그리움은 늙지 않는다. 600년 전의 청년이 남긴 이 아름다운 시는, 오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붉은 꽃 한 송이를 피워 올리고 있다.
坐中花園 (좌중화원) / 최한경 [세종조 이조참판/ 반중일기(泮中日記)]
坐中花園 (좌중화원 - 꽃밭에 앉아서)
膽彼夭葉 (담피요엽 - 꽃잎을 보네)
兮兮美色 (혜혜미색 - 고운 빛은)
云何來矣 (운하래의 - 어디에서 왔을까)
灼灼其花 (작작기화 - 아름다운 꽃이여)
何彼艶矣 (하피염의 - 어찌 그리 농염한지)
斯于吉日 (사우길일 - 이렇게 좋은 날에)
吉日于斯 (길일우사 - 이렇게 좋은 날에)
君子之來 (군자지래 - 좋은 이 오신다면)
云何之樂 (운하지락 - 얼마나 좋을까)
臥彼東山 (와피동산 - 동산에 누워)
望其天矣 (망기천의 - 하늘을 보네)
明兮靑兮 (명혜청혜 - 청명한 빛은)
云何來矣 (운하래의 - 어디에서 왔을까)
維靑盈昊 (유청영호 - 푸른 하늘이여)
何彼藍矣 (하피람의 - 어찌 저리 쪽빛인지)
吉日于斯 (길일우사 - 이렇게 좋은 날에)
斯于吉日 (사우길일 - 이렇게 좋은 날에)
美人之歸 (미인지귀 - 어여쁜 님 오신다면)
云何之喜 (운하지희 -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