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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환

[합평] 인디언 추장의 사생활

작성자바흐조아|작성시간26.06.22|조회수17 목록 댓글 0

훗~ 훗~ 훗~

오월의 경주 황성공원은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오른다. 아름드리 노송 사이로 뻗은 맥문동 오솔길에는 맨발로 흙을 밟으며 걷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솔향 짙은 신록의 숲을 걷다 보면, "경주 황성공원에 가면 신비한 왕족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을 어디선가 듣고 찾아온 이들로 북적인다.

그 소문의 진원지에 다다르면 실로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른바 ‘우주를 찍어내는 장비’라 할 만한, 대포만 한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일제히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이 끝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노송 어르신의 깊은 옹이구멍이다.

그 카메라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옹이구멍 속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주인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벼운 탄성이 터져 나온다. 머리에 쓰고 있는 화려한 깃털 왕관. 저 고고하고도 이국적인 자태는 필시 오래전 아메리카 대륙의 어느 인디언 추장에게서 선물 받은 것이 틀림없으리라. 조류계의 패셔니스타이자 신비한 왕족이라 불리는 새, 바로 후투티다.

녀석들은 천년의 숲을 지켜온 노송 어르신께 고하여 얻은 둥지를, 제 마음에 쏙 들게 쓸고 닦아 보금자리를 꾸몄다. 그리고 그 깊고 아늑한 옹이방에서 둘만의 사랑을 나누었고, 그 결실을 오월의 푸른 잎사귀처럼 피워내고 있다.

하지만 왕족으로 사는 일도, 인디언 추장의 품위를 유지하는 일도 그리 녹록지는 않아 보인다. 둥지 밖에서는 수십 대의 카메라가 ‘태고의 비밀’이라도 알아내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먹이를 물고 노송의 옹이 입구에 앉는 순간, 사방에서 ‘촤르르르륵’ 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기관총 소리처럼 정적을 깨운다. 인간들의 이 거대한 관심 속에서 후투티 부부는 짐짓 모른 체하며, 오직 새끼들을 먹여 살리는 일에만 몰두한다.

부부의 헌신적인 육추(育雛)의 시간은 이토록 수많은 눈동자 앞에서 부지런히 흘러간다. 새끼들에게 벌레 한 마리를 더 먹이기 위해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하는 후투티 부부의 모습에서 숭고한 모정이 깊게 배어 나온다.

그런데 이 화려하고 고귀한 왕족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숨기고 싶은 단 하나의 ‘사생활’이 있다.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후투티는 조류계에서 소문난 ‘지독한 냄새’의 소유자다. 깃털 왕관을 쓴 고귀한 자태가 무색하게도, 녀석들의 둥지 근처에 가면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난다. 새끼를 기르는 동안 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꼬리샘에서 고약한 분비물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둥지 안의 배설물조차 치우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우아한 왕족의 궁전 같지만, 그 실상은 지독한 냄새와 소란으로 가득 찬 분주한 양육의 현장인 셈이다.

나는 노송의 옹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 비린내 나는 사생활이야말로, 제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후투티가 선택한 가장 위대한 생존 전략일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 앞에서는 멋진 옷을 입고 ‘왕관’을 쓴 듯 우아한 척 살아가지만, 우리 역시 집으로 돌아가면 남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남루하고 퀴퀴한 사생활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자식이라는 무거운 왕관을 쓰고 세상이라는 카메라 앞에서 당당한 척 버텨내면서도, 등 뒤로는 삶의 비린내를 묵묵히 견뎌내는 우리네 부모들의 모습이 저 후투티와 꼭 닮아 있다.

노송 어르신은 제 몸에 새겨진 깊은 상처인 옹이로 그 남루한 사생활을 말없이 품어 안아준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저 제 품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오월처럼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다시 한번 노송의 가지 사이로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훗~ 훗~ 훗~

인디언 추장은 오늘도 말못할 비밀을 품은 채, 오월의 푸른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른다. 그 우아하고도 경이로운 사생활을 향해, 나 역시 마음속의 셔터를 조용히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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