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帝王)의 상징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에게는, 자신의 권위가 하늘에서 비롯되었음을 상징하는 영험하고도 진귀한 도구 하나쯤은 필요했을 것이다. 인간의 어깨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통치의 무게를 짊어진 제왕들의 역사는, 종종 전설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비가 개인 오릉(五陵)의 하늘은 유난히 맑다. 며칠 간의 장맛비에 숨어 지내던 고라니 한 마리가 먼 발치서 나를 바라본다. 초록의 수목은 씻긴 듯 청아하고, 아담하게 자리한 크고 작은 다섯 봉우리는 노송과 어우러져 포근하게 다가온다. 휘어지고 틀어진 노송의 몸체가 세월과 함께한 인고(忍苦)의 시간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늘을 만들고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들도 굵은 뿌리로 대지를 껴안고 있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 왔을 묵직한 흔적이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운 지 이천여 년이 흘렀다. 아득한 역사의 시간이지만 그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자리에 서 있으면 왠지 먼 옛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한(漢)나라에 고조선이 무너지자 유민들은 한반도로 이주해 마한·진한·변한의 여러 부족국가로 흩어져 살았다. 서라벌 곳곳에도 이주민들이 터를 잡았고, 이들이 사로국을 이룬 육부촌이 되었다. 어느 해 한 무리의 고조선 유민이 남산 기슭에 이르자 촌장들은 그들을 맞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단군조선 때부터 전해 내려오던 신물(神物)을 간직한 열세 살의 소년이 있었다. 촌장들은 그를 만장일치로 왕으로 삼았고, 비로소 사로국은 나라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건천의 넓은 들 한가운데 금척리 고분군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 같은 봉분이 많은 사연을 품고 있을 듯하다. 지난해 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겉흙을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앞으로 십여 년에 걸쳐 고분을 발굴하여 새로운 고분공원을 조성한다 하니, 세상 밖으로 나올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이야기들이 기다려진다. 대릉원(大陵園)만큼 거대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돌무더기로 만든 봉분이라 하니 금척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역사임을 확인해 주리라 기대해 본다.
전설에 따르면, 어린 왕은 어느 날 꿈에서 단군 신인을 만난다. “이 자를 너에게 주노니, 백성을 잘 다스려라.” 잠에서 깨어보니 금으로 만든 자 하나가 곁에 놓여 있었다. 자는 신이(神異)하여 죽은 이를 살리고, 아픈 사람에게는 병을 낫게 했다고 한다. 이 자로 말미암아 사람들 사이의 다툼은 잦아들었고,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기이하게도 길이 열렸다고 한다. 그렇게 금척은 사로국의 신기의 보물이 되었고, 나라는 안정을 찾으며 서서히 기틀을 다져 갔다. 인심 또한 그만큼 넉넉해져 태평성대의 삶을 누렸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웃나라 중국에까지 전해졌다. 어느 해 한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그 신기한 보물을 빼앗고자 잠시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조정에서는 계책을 고심한 끝에 이 일대에 쉰여 기(基)가 넘는 큰 무덤을 만들어 그 중 한 곳에 숨겼다고 전한다. 훗날 조선이 건국할 때 태조 이성계 또한 꿈에서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았고,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겨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행했다는 기록이 <용비어천가>에 남아 있다. 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였을 때 금척을 찾고자 고분을 파헤치자, 천둥번개와 함께 큰비가 일주일이나 쏟아져 끝내 발굴을 포기했다는 민간 이야기도 전한다.
이렇듯 단군조선에서 전해오는 금척을 박혁거세가 대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고조선의 혈통을 잇는 유서(由緖)였다. 육부 촌장들이 어린 소년에게 기꺼이 제왕의 권한을 맡긴 까닭도, 아마 그 믿음에 있었으리라.
금척은 단순한 제왕의 상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성을 다스리는 제왕의 도구이자, 나라를 하나로 묶는 의미의 기준이었다. 제왕이 존경과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통성이 필요했을 터, 금척은 유구(悠久)한 단군조선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신표(信標)로서 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고많은 물건 중에 왜 ‘자’였을까? 자라는 것은 길이를 재는 도구이다. 크고 작은 부족국가가 생기면서 객관적 기준이 없던 시대에는 땅 한 뼘과 물건 하나를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금(金)으로 만든 것은 약속이 변하지 않음을, 자(尺)의 형상은 흔들림 없는 기준을 세우고자 한 염원의 상징이었으리라. 혁거세 왕은 단군에게서 물려받은 정통성과 금척이라는 기준을 통해, 흩어진 부족사회를 하나로 엮어 나간 주체적 권력자가 되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제왕은 언제나 나라에 번영과 평화를 지켜 줄 팔라디움(Palladium), 곧 수호신의 상징을 갈구했다. 인간의 어깨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통치의 무게를, 신성한 도구 하나에 얹어 백성의 눈앞에 세우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비취색의 진귀한 보석으로 만든 태국의 에머랄드 불상은 왕조의 숨결을 붙들었고, 아서왕의 엑스칼리버(Excalibur)는 하늘이 부여한 왕이 될 자의 손을 가려냈으며, 고대 중국의 구정(九鼎)은 천하의 무게를 담아 통치자의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였다. 꺼지지 않는 베스타의 불(Vesta's Fire)을 지키려 했던 로마의 집념처럼, 선덕여왕이 황룡사 구층 목탑에 올려놓은 마음 또한 나라를 향한 간절한 기원이었을 것이다.
오봉산 자락, 저물어가는 저녁 노을이 들판을 서서히 물들인다. 몇 번이나 발길을 옮겼는지 헤아릴 수 없건만, 이곳은 올 때마다 새롭고 마음이 오래 머문다. 금척의 둥글방한 고분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금빛 자 하나가 문득 모습을 드러내어, 이천 년의 시간을 소환해 준다면 어떨까. 신라가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이루었듯 그 신이(神異)한 힘으로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날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