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문학 가을 세미나 주제 발표문이었습니다.
1. 한국 수필문학의 연대기적 개괄
1)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형성기
본고는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변모 과정을 유기적으로 체계화하는 과정 중 하나로, 1900년대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태동에서부터 1960년대 성장기까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발전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개괄해 보고, 다음으로는 현대 수필론을 제창하고 그것을 실제로 자신의 작품 속에 용해시켰던 작가를 중심으로 수필문학의 성장 과정을 탐색해 볼 것이다. 이는 수필문학의 장르적 특성을 확고하게 매김하고, 향후 수필문학이 모색해야 할 지평 제시와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발전된 미래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한다.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발생 배경은 크게 우리의 고전산문에서 기원을 찾거나, 동․서양 수필문학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 중 고전수필의 전통 계승은 신라시대 설총의《화왕계》와 승려 혜초의《왕오천축국전》을 시작으로 이규보, 이인로, 박지원 등의 한문수필과《의유당관북유람일기》<조침문> <규중칠우쟁론기>《요로원야화기》등 풍자나 해학이 곁들인 우화적 국문수필과《한중록》《계축일기》등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한국 현대 수필문학은 유길준의《서유견문》을 효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서유견문》은 국한문 혼용체를 시험했다는 점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견문을 개화기 특유의 진보적 사상으로 표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후 1908년《소년》, 1910년대《학지광》《태서문예신보》《청춘》등에 수필 문예란이 만들어지고, 1919년 2월《창조》제2호에 수필류의 글이 수록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흔히 이 시기를 수필문학의 태동기라 부르는데, 이때 활동한 작가들은 대부분 전문 수필가가 아닌 시인이나 소설가들로서, 최남선의 <반순성기>, 최승구의 <남조선의 신부>, 나혜석의 <이상적 부인> <잡감>, 흰뫼의 <동도의 길>, 벌꽃의 <장강 어구에서> 등의 수필이 발표되었다. 당시 발표된 작품들은《소년》에 76편,《태서문예신보》에 28편,《청춘》에 180여 편이 발표되었다. 이들 수필은 오늘날에 비하면 장르 의식은 물론 완결미와 개성미를 갖추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는 수필문학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초기 수필의 모습으로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20년대의 수필문학은 수필 장르의 정립과 1910년대를 계승한 기행수필과 수상수필의 병립 양상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일본으로부터 중개된 서구의 자아의식을 수용하고, 사물과 자아를 응시하는 수상류의 수필이 새로운 문학양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광수의 <우덕송>에는 덕을 지향하자는 의미가 새겨져 있고, 최학송의<그리운 어릴 때>에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동심이 그려져 있다. 염상섭의 <국화와 앵화>에는 꽃을 통해 망국민의 심경을 보여 주고 있으며, 오상순의 <시대고>와 <그 희생>에서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또 다른 경향은 고전수필의 기행적 성격을 계승한 기행 소감문의 등장이다. 최남선과 이광수에 의한 기행수필에는 기행의 소감과 여행지에 서린 역사, 민족혼을 찾으려는 내성적인 성찰, 자아각성에 의한 문화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광수의 <금강산유기>, 최남선의 <심춘순례> <백두산참관기>는 기행수필의 3대 백미라 불려진다.
1920년대 수필문학의 성과 중 또 하나는 수필의 명칭이 통일되었다는 점이다. 각종 잡지에 발표된 수필적인 문장으로는 ‘기행’이라는 명칭으로 김환이 쓴 <고향의 길>, 남궁벽의 <자연>, ‘감상’이라는 이름의 박종화의 <영원의 승방몽>, 이광수가 쓴 ‘상화’라는 이름의 <감사와 사죄>, 주요한이 쓴 ‘감상수필’ <어렸을 때 본 책> 등 무려 25종에 이르고 있어 그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명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1920년대 초반은 ‘수필’이라는 용어가 여러 이름으로 혼재되다가, 1924년 8월에《영대》가 창간되면서 ‘수필’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으며,《동광》에 이르러 그 명칭이 굳어진다. 이렇게 수필이 여러 명칭으로 불린 것은 수필양식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에 있어서 혼동된 양상이며, 후반기에 수필이라는 명칭으로 포용된 것은 수필문학이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 정착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동광》은 종합지이면서도 매월 대여섯 편의 수필을 발표하여 수필문학 형성에 기여하였다. 그 외에도《습작시대》《백웅》《신시단》《백치》《원고시대》《문예공론》《조선문예》《신소설》등에 수필이 발표되면서 수필문학의 활성화를 위한 초석을 놓게 된다. 1926년 11월에 창간된《문예시대》에는 수필이 29편이나 발표되어 수필문학의 활발한 전개를 예고하기도 했다. 또한《조선문단》의 ‘수필감상’란에 주요한, 방인근, 김억, 최상덕 등 11명의 수필이 실려 있음은 그러한 정착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1920년대는 수상수필과 기행수필이 병존하면서 총 1700여 편의 수필이 발표 되는 등 1930년대 본격적인 수필문학으로의 진입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2)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성장기
1930년대는 수필문학이 문단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왕성한 성장을 했던 시기다. 이때부터 수필문학은 주목할 만한 문학 장르로 알려지고 활성화되었으며, 비로소 수필의 이론적 추구, 개인적 수필과 사회적 수필이라는 본격적인 수필 유형의 형성으로 근대수필로의 성숙을 이루게 된다. 1938년 최초로 수필문학 전문지인《박문》이 창간되어 1941년 1월 통권 23호를 끝으로 폐간되며 1930년대 수필문학의 초석을 놓고,《동광》《조광》《문장》《인문평론》등에 수필 고정란이 설정되어 수필의 발표 지면이 많이 마련되었다. 당시에 수필 작품을 왕성하게 발표한 작가들로는 이태준, 김남천, 이효석, 양주동, 김기진, 한설야 등이 있다.
1930년대 수필문학의 특성 중 가장 괄목할 만한 일은 한국 현대 수필론의 등장이다. 수필론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고전산문에서부터 영향을 받아 자생적으로 발생되기도 했지만 주로 외국문학을 전공한 문인들에 의해 유발되었다. 그 중에는 수필의 연원을 단순히 서양의 ‘에세이’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으나, 서양의 ‘에세이’는 논설을 비롯한 교술산문의 총칭으로 오늘날 한국의 현대수필에 해당하는 특징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또한 ‘에세이’가 전래되어 ‘수필’이 되었다는 주장 역시 신변잡사를 감각적인 미문으로 다루는 것을 자랑삼는 일본 특유의 취향이 함께 유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수필론은 먼저 임화에서 시작된다. 임화는 <수필문학의 재검토>에서 수필의 문학적 본질․성격․위치 등에 대한 객관화를 시도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김기림은 <수필을 위하여>에서 수필의 문학성과 그 영역을 추구하고, 김광섭은 <수필문학소고>에서 수필의 형식과 그 표현에 대한 이론을 모색했으며, 김진섭의 <수필의 문학적 영역>에 이르면서 비로소 수필문학이 하나의 문학 양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며 수필문학의 지향성이 추구되고 발전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1940년대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한국어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져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문학은 암흑기를 맞고 잠시 성장을 멈추었다. 또한 이념의 대립은 예술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한국문학은 전체적으로 공백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수필문학은 광복을 맞으면서 개성적, 서정적 수필을 쓴 이양하와 지성적이고 객관적인 수필의 김진섭이 양대 산맥을 이루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이는 한국 수필문학이 현대성을 갖추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1950년대는 전쟁에 의한 참혹한 피해와 이에 대한 복구로 이어진다. 전쟁은 무엇보다 생존 자체를 위협했으며, 그 후유증인 물질적, 정신적 폐해는 수필문학은 물론 한국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으로 남게 된다. 문인들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분열과 투쟁에 휩싸였으며, 시나 소설 등 한국문학은 전쟁의 상흔이라는 제한된 주제의식으로 더욱 깊은 암흑 속으로 침잠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수필문학은 1940년대 활약했던 김용준, 김소운, 김진섭을 비롯하여, 조경희 등의 활동이 계속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사회는 산업사회의 도래와 사회 혼란으로 굴곡의 시대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 수필문학은 오히려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된다. 윤오영, 피천득의 등장과 함께 전숙희 등 여성 수필가들의 활약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수필문학의 성장은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에서부터 수필을 중점적으로 쓰는 작가까지 많은 작가들이 수필문학에 눈을 돌리게 하였다. 서점가에서는 수필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비문학인들까지 수필 쓰기에 동참하면서 수필의 전성기를 예고했다.
“앞으로 있을 수필은 이 위에 다분의 근대성을 섭취하여 종횡 무진한 시대적 총아가 되지나 않을까”라고 했던 김기림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수필문학은 일상의 체험에서 얻는 친숙한 소재, 화려하지 않은 수사법 등으로 현대인에게 가장 친근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문학사를 연구하고 논의할 때 수필문학은 항상 주변부에 머물러 있거나, 개괄적으로만 다루어져 왔다. 특히 수필론 정립의 미비는 수필이론가의 부재를 낳았고, 수필 작품은 타 문학 장르의 비평가들에 의해 주변적이고 부수적인 평가를 받는 데 그쳤다.
수필가 중에는 창작과 이론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한 작가의 수필론은 그의 작품 속에 용해되게 마련이다. 그 이유는 수필문학의 특성 중 하나가 작가 개인의 사상과 체험이 곧 수필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필문학 연구는 작가의 수필론만을 개괄적으로 나열하거나 수필 작품만 보기보다는 수필론과 수필 작품을 연계하여 고찰했을 때 효율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이는 본고가 수필론과 작가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수필에 용해된 수필론 양상
1) 모럴과 사색의 유기적 결합 - 임화
사소한 일상이 문학적 의미를 지닌 수필로 형상화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과 함께 깊은 사색을 통한 사상이 내재되어야 한다. 여기에 작가의 독특한 문체가 창조된다면, 수필은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 완성된다. 수필은 작가의 심적 고백의 글이다. 작가의 품격이 녹아든 예술적인 문장은 수필의 묘를 살리는 데 큰 요인이 아닐 수 없다.
1930년대 수필이 지녀야 할 요건으로 내용의 중요성, 즉 사색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이론가로 임화가 있다. 그는《동아일보》에 <수필론>을 발표하여 수필문학의 문학 장르로서의 가능성 여부를 검토했다.
임화는 수필이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형식보다도 내용, 즉 사상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제껏 수필은 고유한 구조를 갖지 않은 문학으로 취급되어 어느 장르에도 편입되지 못했음은 물론, 한 시대 문학의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임화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장르로서의 특징과 구조의 규범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상의 확립이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수필은 체계나 법칙에 따라 교설하는 것이 아니라 사색이나 생활의 진솔한 기록이라고 말하였다.
임화는 사상의 깊이가 없는 글은 제 아무리 기교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좋은 수필이라고 볼 수 없음을 확고한 어조로 피력하였다. 밝은 눈과 좋은 사상을 갖지 못한 글은 단순한 언어의 나열일 뿐이다. 경향문학에 깊이 빠져 있던 임화에게도 수필은 편향적인 사상의 표출이 아닌 삶의 깊은 관조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글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임화의 수필에는 이러한 삶의 순수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의 수필은 경향파 시인이나 냉철한 비평가로서의 모습보다는 자연인 임화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얻어진 다양한 경험들을 작가가 가진 높은 사상으로 표현한다는 자신의 수필론에 대한 적용으로 보인다.
<설천야의 대동강 반>에서 임화는 눈 내리는 밤에 대동강 물녘에 서서 가슴 아픈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눈 내리는 밤하늘이 낭만적일 수도 있으나, 당시 프롤레타리아의 이념에 깊이 빠져 있던 임화에게는 암울하고 무서운 밤으로 기억될 뿐이다. 아기를 가진 한 젊은 여인의 죽음 앞에서 사상으로 무장한 투사가 아니라 한 인간이 느껴야 했던 비애, 즉 이념을 초월하는 인간미의 절대성을 그리고 있다. 일상의 사소사에서 높은 경지의 사상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 수필이라고 피력했던 임화의 수필작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2) 감각적 수사법의 실현 - 김기림
1930년대는 수필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정립되지 않았던 때로 수필문학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수필론이 절실히 필요했다. 한국 현대수필은 당시 시대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문학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하지만 특히 수필문학은 인생, 문명에 대하여, 또는 사회의 일면에 대한 고찰이 바탕이 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초기 수필론들은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부응이라도 하듯 근대성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필문학의 본질은 ‘시대성’만으로는 충분하게 존재가치를 확보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자각으로 김기림은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과 예술적 문장, 즉 수사법의 활용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수필론을 주장하였다.
김기림이 실제 수필 속에 용해시킨 자신의 수필론은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비판의식을 실현하기 위한 수사기법이 동원된 문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수필작품의 발표가 왕성했던 것에 비해 이렇다 할 수필론이 없었던 시기에 김기림의 주장은 수필을 쓰고 있는 작가나 쓰고자 하는 예비 작가들에게 커다란 지침이 되었다.
수필가로서의 김기림은 1948년 12월에 발표한《바다와 육체》외에도 100여 편의 작품을 신문이나 잡지에 꾸준히 게재하였다. 개성적인 스타일을 명료하게 나타내기 위해 수필을 썼다는 김기림에게 근대화 되어 가는 경성의 풍경은 곧 희망이면서 절망이기도 했다.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조선일보 폐간, 광복, 한국전쟁 등 우리 민족의 수난사가 집약됐던 시기를 겪으면서 이 땅에 모더니즘 바람을 일으켰던 김기림은 수필 작품 역시 모던한 표현을 창작기법으로 하고 있다.
수필은 작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글인 동시에 독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일찍이 일곱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와 큰아버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이 <길>에서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녹아들어 있다. 절제된 어휘와 함축적인 문장, 세련된 스타일의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독자의 사고 폭을 확장시켜 주었다.
모더니스트는 전통에 대한 단절, 주관성과 개인주의 뚜렷한 성향, 문학의 독자성과 자기목적성을 인식하여 실존주의적 인생관을 제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당시 수필문학의 주류가 사소한 개인의 감상과 낭만적 탄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에 비해 김기림의 작품에서는 그가 수필론에서 제시한 빛나는 위트와 차가운 이성, 인생에 대한 풍자가 형상화되어 모더니즘에 세례된 독특한 문체로 형상화 되어 나타난다.
3) 초장르의 미학적 수용 - 김진섭․김광섭
김진섭이 1933년《동아일보》에 발표한 <수필의 문학적 영역>은 그때까지 명확하지 않았던 수필의 개념과 명칭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흔히 김진섭의 수필론에 대해서는 ‘무형식의 문학’만을 거론한다. 그러나 그의 수필론은 형식의 경계가 해체된 수용 형태를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제재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체험의 바탕에 작가의 개성과 창조성을 가미한다면, 어떠한 글이든지 수필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다만 누구나 쓸 수 있고 쓰기도 쉽지만 좋은 수필을 얻기란 지극히 어렵다는 말은 김진섭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수필의 문학적 가치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진섭은 100여 편의 수필을 썼다. 우선 그는 수필론에서 ‘숨김없이 자기를 말한다는 것과 인생 사상에 대한 방관자적 태도’가 수필의 특성이요 매력이라고 하였다. 간혹 숨김없이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반드시 일상의 체험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의 수필 속에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이 곧 체험이 없다는 말로 대체될 수도 없다. 사물을 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역시 자기를 말하는 것이요, 여기에서 우리 삶의 일상에 대한 관조가 방관자적 태도이며 이야기가 내포된 삶에 대한 자신의 철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백설부>에서는 ‘눈’이라는 사소한 사물을, <행복>에서는 평이한 주제인 ‘행복’을 진지한 삶의 태도로 응시하고 있다. 수필은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용기’라고 말한 바대로 김진섭은 지나치기 쉬운 일상에서 깊은 사색을 유도해냈다. 그의 이러한 경향은 그가 주로 소재로 선택한 것이 창, 비, 눈, 눈물, 종이, 이름 등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진섭은 초기 수필론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 대한 관찰과 사색, 예지와 직관을 통해 수필이 결코 가볍지 않은 글임을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수필문학을 문학의 한 장르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하겠다.
1934년에 김광섭에 의해 발표된 <수필문학소고>는 이후 한국수필의 특성을 밝히는 대표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의 문단은 해외문학을 전공한 유학생들이 외국작품이나 문학이론을 번역하여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김광섭은 이 논문에서 영문학 쪽의 수필론을 정리한 후, ‘무형식이 곧 수필의 형식적 특성’이라고 하는 요지를 중심으로 자신의 수필론을 피력했다. 이는 잡다한 모든 것이 다 수필의 내용이 될 수는 있으나 그것이 단순한 기록에 그쳐 독자의 흥미를 떨어뜨린다면, 그것은 문학이 될 수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또 시의 폼과 소설의 폼을 살펴보라 함은 수필 속에 얼마든지 그들의 폼을 차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시인이었던 김광섭은 수필론에서 자연히 유로되는 심경이 담긴 시적 수필, 유머와 위트가 있는 수필이 위대한 문학이라고 말했으나 정작 자신의 수필에서는 그런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4) 개성적․예술적 문체의 형상화 - 이태준
이태준은 다양한 산문 양식들의 예술화가 수필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수필문장이란 몽상적 낭만주의를 지양하고 고전적인 품위를 지향해야 하며, 예술적 문체가 중요함을 피력했다. 그의 수필집《무서록》에 수록된 작품은 ‘작품 이전에 문장’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30대에 쓴 이 글들은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태준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으며, 원숙한 관조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물 흐르듯 쉽게 읽히면서도 문장 하나, 낱말 하나 어긋나지 않으려는 노력은 자신의 내면 진실을 거짓 없이 드러내는 수필문학의 본령을 보여 주었다.
5) 서정적 표현 기법의 발현 - 한흑구
초기의 수필론들이 형식과 내용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였다면, 1950년대 이후는 수필의 성격을 좀 더 다양하게 넓힐 수 있는 수필론이 나타난다. 그것은 일상의 잡다함에서 벗어나 자연을 음미하고, 그것에 시적인 기법을 도입한 서정적인 수필의 등장을 보여주는 수필론이다. 이는 수필에 시를 인용하여 형식의 확장을 꾀하는 기존의 기법과는 다르다. 수필은 산문문학이라는 고정된 인식에 대한 대응으로 내용과 형식 두 측면에서 서정성이 발현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한흑구는 형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내용이 없이도 형식은 존재할 수 있으나 형식이 없는 내용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무형식의 문학이라는 광범위한 특성을 활용하여 여러 유형의 형식으로 보다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수필을 창작했다. 이 과정에서 바로 한흑구만의 독자적인 수필론이 탄생하게 된다.
한흑구의 수필론은 서정시와 같은 표현기법의 도입이다. 그가 수필론에서 밝혔듯이 수필은 비록 산문이지만 서정시와 같으면 좋겠다는 표현이 바로 이를 말해준다. <‘눈’을 쓰고 나서>라는 글에서 자신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밝힌 바가 있다. 실제로 한흑구의 수필은 한 편의 긴 서정시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수필에는 사건도 이야기도 없다. 서정시적 산문의 형식과 서정적 내용으로 일관된 그의 수필세계는 바로 자연과의 교감이다. 자연 속에서 인생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했던 그의 수필은 지적이기보다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자연물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과 정서를 전달한다. 이런 점은 그의 수필 제목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연물인 <나무> <보리> <눈> <흙> <산> <제비> <길> <새> <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함축과 여운의 내재적 리듬 구현 - 윤오영
수필은 ‘작품 이전에 문장’이라는 견해에 따라 문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또 다시 대두되면서 수필문학 고유의 함축적이고 여운이 있는 수필이 쓰여야 한다는 수필론이 윤오영에 의해 등장한다.
윤오영은 동양적인 정서의 바탕 위에서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 여운과 함축의 미를 잘 보여 준 작가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윤오영이 수필가로서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 고전 수필의 명문장을 답습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한 관조의 태도를 문장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우리 정서에 맞추어 새롭게 창출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일상에서 수필 소재를 찾아내고,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지성과 정서가 우러난 주제를 추출해 낼 수 있는 삶의 관조적 태도가 어우러졌을 때 수필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일상이 묻어 있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글은 쉬운 문장이되 수련의 과정을 거친 뒤 나타나는 정제된 글, 바로 이러한 글이 윤오영이 말하는 수필 문장이다.
수필문장에 관한 한 윤오영만큼 철저했던 작가도 드물다고 하겠다. 그는 ‘수필은 창작인 까닭에 일률적인 방법보다는 새로운 형태를 조성하는 것이며, 시적 이미지와 소설적 표현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를 항상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문학적 정서 속에 우러난 함축과 여운의 미학이 수필이라는 것이다.
윤오영은 ‘양잠설’ ‘곶감설’ ‘깍뚜기설’을 통해 수필은 진실의 문학이라는 본질론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달밤>에서 여운의 문학임을 보였다면, <방망이 깎던 노인>에서는 전통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순아> <내 고향> 등에서는 진실한 속내가 묻어난 수필의 진수를 보이고 있다.
7) 평이함 속의 치밀한 구성 양식 - 피천득
1960년대를 지나면서 수필문학은 문학의 대중화 바람과 함께 일반인에게 친숙한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수필은 인간의 정서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문학 형태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의 추구다. 이는 심오한 지성이 내포될 필요도 없고, 뜨거운 열정이 드러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수필은 그 가운데서 작은 파격을 요구한다. 평이함에 이끌린 독자에게 고귀함의 묘를 더해주는 수필의 필요성은 새로운 수필론을 이끌어낸다. 피천득의 수필론, 평이함 속의 치밀한 구성이 그것이다.
피천득의 수필론은 논리적인 이론 방식이나 학술적인 제시 방법 대신 다양한 은유가 담긴 한 편의 수필 작품으로 그려내는 기법을 구사함으로써 기존의 수필론들과 대별된다. 그의 수필론은 고귀하나 결코 두드러지지 않고, 평이하나 작은 파격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평이함을 가장한 치밀한 구성 양식에서 실현 가능하다. 피천득의 수필론은 오늘날 수필문학이 일반 독자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된 이유를 대변해 주고 있다.
피천득은 수필이란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라고 말했다. 그의 수필 속에서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고답적인 학문적 느낌도 찾을 수가 없다. 세상을 향해 던지는 평이한 시선 속에 삶의 여유로움이 묻어 있을 뿐이다. 이는 보편적인 인간성의 발로다. 오늘날까지 피천득 수필이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3. 나오기 ― 수필 문학 부흥기를 향한 발전 모색
이상으로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형성 및 성장을 개괄해 보고, 수필론의 발생, 작가 별 실현 양상 등을 고찰하였다. 먼저 이 글에서는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본격 형성기를 1900~1920년대로 잡고, 1930년대를 기점으로 이후의 시기를 성장기로 간주하였다. 성장기 수필문학의 특성에서 특별히 수필론에 주목한 이유는 확고한 이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수필론이 수필 창작에 충실하게 적용되고, 다시 그에 입각하여 작품 비평이 이루어졌을 때 명실상부한 문학 장르로서의 위상이 정립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00년대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문학에서도 근대성을 갖춘 문학 양식이 자리 잡았고, 수필문학 역시 우리의 고전산문과 동․서양에서 영향을 받아 이 땅에 수필문학의 영역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1910년대 잡지의 등장과 함께 수필류의 글들이 발표되고, 1920년대 수필 명칭의 정립, 1930년대 수필론의 등장 등 수필문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광복을 전후하여 60년대까지 오면서 수필문학은 타 문학 장르에 비해 월등한 성장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수필문학은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여야 한다. 또한 수필문학이 현대인들에게 환영받는 이유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반성적 성찰, 미래에 대한 대처 등도 꼼꼼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이후 수필문학의 무책임한 정의나 특성만을 나열하는 행위, 다른 장르에 비해 수필이론이 정립되지 못했다는 자탄의 소리, 수필문학이 정체된 문학이라는 의견 등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수필문학의 두드러진 특성의 하나는 유연성이다. 수필문학이 고대 산문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이유가 바로 이렇게 고정되지 않은 생명력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것은 수필문학의 정체성을 간직하는 일이다. 수필문학 고유의 특성이 문학 질서의 원리에 의해 실현되었을 때, 21세기 한국 문학사적 위치 또한 확고하게 설정될 것이다.
한국 문학 형성기
이 영 조
(문학박사, 배재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