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이번에 스페인 대표로 전국체전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에 온다고 합니다. 즐겁게 보낼 시간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들뜨는 마음입니다. **
(발렌시아의 사랑1)
코르도바를 떠난 차가 마드리드로 향한다. 지도상에선 발렌시아를 가자면 옆으로 향하는 것이 가까운 거리인데 우리는 북으로 향하고 있다. 그라나다에서 코르도바로 올 때 평원 우측 까마득히 먼 곳에 큰 형체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 감히 그 언저리는 생각지도 않는 것이다. 필시 그 형체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일 것이다. 해발 3천 4백이 넘어 안달루시아의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에서부터 연중 내내 눈이 쌓여 있다는 것까지 모두 지닌 엄청난 산악지대이다.
그곳을 넘어야 발렌시아에 다가설 수 있는데 우리는 아무래도 밤중 운전에 굽이굽이 돌 것 같아 차라리 북으로 올라 그곳을 비켜서 우측으로 향하는 것이 거리는 더 길겠지만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알다시피 발렌시아는 스페인에서는 세 번째 큰 도시로 마드리드에서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소홀히 해놓지는 않았을 것이란 예측이 덧붙여진 것이기도 하다.
어둠이 내려 볼 것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마치 황량한 사막을 무턱대고 가는 기분이다. 차라리 큰 산 밑에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을 이용하는 곳이라면 모를까 그 시대 이 허허한 벌판은 물이 적어 살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 스페인의 인구 분포를 따져 본 것은 아니지만 마드리드를 빼고는 거의 대부분 해변 지역에 몰려 사는 것 같다. 그렇게 해변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산지가 괘 오랜 습성이 아닐까 싶다. 고대 때부터 그렇게 자리 잡은 도시가 스페인엔 꽤 많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중세 왕국의 수도로는 해변이 아니고 대개 산 밑이나 강을 낀 곳을 택하였다. 그라나다가 바로 그런 큰 산 아래 지형이었고 코르도바가 산맥 바로 아래 강을 이룬 곳에 터를 잡았으며 세비야는 큰 강이 이루어진 곳에 넓게 자리를 하였고 톨레도 또한 작은 강이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았다.
이는 인간의 삶이 물과는 뗄 수 없어 그러하기도 하지만 왕국을 지키는 방어와 대비가 용이하여서도 그러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바다는 툭 트여 좋기는 하지만은 만약의 경우 도피가 마땅하지 않으며 수세도 곤란하다. 지금부터 해안선을 따라 들를 곳들은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로선 번성하였으나 역사적인 의미에선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곳 발렌시아가 또한 그런 곳이다.
짧은 여행 코스엔 이곳은 늘 빠진다. 나 또한 이곳을 택한 이유는 볼거리 때문이 아니다. 여행은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대동하여 보고 느끼며 즐기는 것이 주종이라 하겠지만 이에 더불어 마음을 나누며 기쁨을 함께 하는 계기가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할 것이다. 결국 여행은 느끼며 즐기는 과정 속에 우러난 향기 나는 마음의 정서를 스스로 가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발렌시아엔 마음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할 인연이 내게 있다. 그렇다고 그 인연이란 것이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것이거나 오래되지는 않았다. 어찌 생각하면 그 정도의 만남은 하도 흔해서 대수롭기는커녕 돌아서는 순간 잊어버리는 것이 요즘 세상에선 지극히 당연한 통례이고 그런 풍속은 꽤 오래 진행되어 왔기에 나 역시도 접어두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와의 인연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 그를 처음 볼때 부터 나는 웬지 모르게 그에게 이끌렸다.
하지만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딱 한 번뿐이고 그 만남도 아주 최근에 비행기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지난여름 로마를 다녀오는 길에 파리에서부터 그와 나는 동승을 했었다. 나는 그의 말투가 경상도 억양이지만 우리네 닳은 말이 아니라 모처럼 고향 나들이를 하는 거라는 것을 대뜸 알아봤었다. 그는 그것이 아니라 해도 풍기는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 한 구석 그리움 같은 것을 껴안고 있다 싶었었다. 외로움은 곧잘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그의 과거 소사에 대해 줄곧 들었었다. 공수부대를 간 것부터 시작하여 전직대통령이었던 사람을 군에서 만났던 이야기, 불의의 교통사고로 일선에 배치될 가망성이 없게 되자 어쩔 수없이 소령으로 군복을 벗고 사회로 나온 이야기,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서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채택을 했으며 그가 스페인을 택한 것이 바로 그 연유라는 이야기, 스페인 아내를 만난 사랑이야기.
올림픽이 끝나자 태권도로는 생계에 어려운 상황이 닥쳐 처갓집에서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하여 아들과 딸 놓고 오손도손 사는 이야기 등등. 그의 인생역정은 흡사 그 시대 어렵게 살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한 시대의 단면을 그대로 보는 듯하였다. 살만큼 산 사람들이니 감출 것도 없다 할것이지만 그래도 처음 본 나에게 거침없이 이력을 모두 말해주는 것은 왜였을까.
그는 어쩌면 나를 통해 그의 그리움을 생생하게 반추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슴 벅찬 희열이 지난 시기엔 그리움이 이를 대체한다.그는 그 시대 그의 어느 것을 제일 아끼고 보고 싶은 것일까. 강한 것 같이 말하지만 전혀 그러하지 못한 품성. 내가 그에게 쉽게 이끌린 것은 그리움을 나타내는 그런 그의 따스한 마음에 젖어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순수하단 생각을 두고두고 했었다. 전에도 더러 이런 만남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글을 쓰고 부터는 이런 느낌의 것들을 그냥 흘려듣지를 못한다.
좀 더 구체화된 예쁜 상상을 한다 던지 세세한 느낌의 것으로 채우려 드는 것이 지금의 나의 행실이다. 그런 나는 꼬박꼬박 적듯 그의 것을 가슴에 담고 그와 그렇게 아쉽게 헤어졌었다. 그리고 그 아쉬움으로 그와 통화를 한 번 했었는데 전혀 생각지 않았던 뜻밖의 전화여서인지 그는 꽤 반가워하였다. 그때만 해도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스페인 여행길에 혹 시간이 되면 만나보면 어떨까 싶어 스페인으로 출발하기 바로 전 그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그의 환한 목소리가 무척 따사롭다 느껴졌었다. 지금 그 짧은 인연을 근거 삼아 내가 발렌시아를 가고 있다. 정작 스페인여행 길에선 아무래도 부담이 될 것 같아 그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드디어 차는 지방도로에서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발렌시아까지 150킬로 남았다는 팻말을 보았다. 1시간 반이면 발렌시아란 어림이 확실히 잡힌다.
그쯤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초행길이라 확실하지 않고서 말하기가 그렇고 너무 늦으면 그에게 괜한 부담을 안겨줄 것 같아 시간의 폭을 따져보고 전화를 하리라 하였었다. 전화를 받자 즐거움에 들뜬 그의 목소리가 부르르 떤다. 묵을 숙박지에도 전화를 여러 번 하였단다. 밤10시가 다 되는 시간이라 호텔에서 만나는 것이 어떨까 했는데 부득부득 우기며 집으로 오라는 그다.
좋은 인연이란 많이 만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가 말한 내용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조과장님! 아무 부담 느끼지 마시고 그냥 따뜻한 밥 한 그릇 드시고 가세요. 아내가 할 줄 모르는 찌개를 끓였습니다. 그러니까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를 건너서 곧장 오다가 차를 세우고 기다리세요. 내 차는 트럭인데 일부러 비상등을 킬 것이니까 그리 알아두시고.” 나와 그는 비행기 안에서 한 번하고 발렌시아 땅에서 한 번 그렇게 두 번째 만났다.
그는 옆자리에 아들을 태우고 나왔는데 아들이 생각보다 꽤 어렸다. 그럴 줄 알았다면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준비해 올 것인데 미안스러움에 말이 안 나온다. 그 덕분에 스페인에 와서 가정집도 방문하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그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우리는 그에게 줄 달력하고 소주, 고추장, 김을 내놓았다. 준비된 만남이라도 되는 양 그가 또 스페인수첩을 선물이라며 건네준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그들과 우리는 정겹게 식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 나왔고 이어서 김치에 오징어 조림하고 김치찌개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한국음식을 제대로 먹어본지가 꽤 된다. 이곳에서 김치를 구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을 것인데 참으로 그 정성이 고맙다. 거기에 처갓집 시골농장에서 직접 담근 포도주라 하며 따라주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두 병을 내가 거의 다 마시고 말았다.
가만 보니 그의 아내가 한국사람 같고 그가 스페인 사람이 다 된 것 같다. 그의 아내는 생물학을 전공해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그의 작은 누나가 그를 설득하려했지만 그는 결국 사랑을 선택했노라고 나에게 말했었다. 스페인 여인은 열정으로 사랑을 나누며 그 사랑은 영원하다. 그가 한 말이다. 그의 사랑이야기가 다시금 가슴에 깊숙이 닿는다. 그는 내가 아는 이 세상 몇 안되는 순수파다.
그가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의 군대시절 사진이 장식장 한가운데 바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두 아이와 아내 그리고 그의 모습이 환하게 찍혀 있다. 그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으며 일부러 김치를 안 먹고 살았다고 내게 말 했었다. 그는 그렇게 생을 열심히 산 것이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12시가 다 되어 간다. 우리나라에선 이보다 더 큰 결례가 없을 것인데 늦게 까지 기다려준 그들이 고맙다.
우리는 그가 안내하는 대로 그의 뒤를 쫓아 호텔로 향하였다. 좋은 인연은 향기로우며 이는 삶의 가치를 드높인다. 참으로 향기 좋은 발렌시아의 밤이었다. 그와 나는 열정으로 우정을 나누었으며 그 우정은 그가 그의 사랑을 그렇게 향기롭게 가꾸었듯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