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 kabar? (안녕하세요?) [아빠 까바르]. 가이드가 일러주는 대로 열심히 따라하였다. 최소한의 말은 배워야 할 것 같기도 하여 혀를 구르고 오므려가며 인도네시아 인사말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가 웃으며 말 하날 더 끄집어낸다.‘ 이브자리 까르’ 들어보니 말이 맹랑하다. 따라하라 하니 하긴 하는데 영 느낌은 그것이 아니다. 가이드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그 뜻을 설명한다. 최고다. 기분 좋다. 뭐 그런 뜻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지구촌이 사는 풍습은 제쳐놓고라도 각양각색 말 때문 생기는 사연도 많지 싶다. 재작년 이탈리아 여행 때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다. 90년대 중 반 삐삐라는 호출기가 유행하던 때 이탈리아 친구가 한국을 방문하여 식사를 같이 하던 중에 마침 삐삐가 왔다고 한다. 옆 사람이 ‘삐삐 왔어요.’ 하고 알려주자 이탈리아 친구는 경악을 하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삐삐란 이탈리아 말로 오줌이라는 뜻이다.
어느 할머니가 이탈리아에 사는 딸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게 되었단다. 아이가 울자 급한 할머니는 과자를 꺼내 ‘까까’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그 쪽 나라말로 까까는 똥이라는 뜻이다. 똥 하니 한 마디 더하면 영어로는 묘하게도 덩(DUNG)이라 하여 비슷한 발음이다. 덩도 그렇고 피시스(feces)도 그렇고 싯(shit)이란 말도 모두 배설을 할 때 나는 소릴 나타내다가 이를 나타내는 단어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느낌에선 사람 사는 것이 어디고 간에 비슷한 것 같아 친근감이 든다.
실제론 그런 말 때문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못 알아들으니 서로 답답할 노릇이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돼서 헤매는 할머니들을 외국공항에서 종종 보았다. 비극적인 한 예가 있다. 일본인 친구가 미국 친척집을 찾다가 그만 깜깜한 밤이 되고 말았다. 한 밤중 모를 동양인이 다가오자 집 주인은 서라 하는 말로 후리즈(FREEZE)하였다. 그런 말을 그 일본인은 프리즈(please)로 잘못 알아들어 가까이 다가서다가 그만 총에 맞고 말았다. 그 일로 일본과 미국이 한 때 긴장을 하던 때가 있다. 총을 쏜 친구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말에 대한 어감의 차이로 큰 일이 생겨난 한 예이다. 그러기에 외국에선 최소 인사말이라도 걸치고 다니다 갸우뚱 대는 상황이다 싶으면 냅다 웃는 얼굴로 인사말이라도 해볼 것이다. 이번 여행 중 인도네시아의 바탐 섬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다. 주인이 인도네시아 인이라 하여 음식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생선튀김에 오리요리 까지 나와 입맛에 맞는다 싶었다. 그러자 무더운 대낮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해졌다. 남자종업원들이 자리를 나누어 시중을 들기에 그 중 한 친구를 불러 세웠다.
맥주 한 잔에 3달러라고 하였다. 비싸다 싶었지만 그 맛의 유혹을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이윽고 얼음 잔까지 준비하여 맥주를 가지고 나왔다. 나갈 때 추가 계산을 생각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달라기에 3 달러를 바로 건네었다. 값 지불을 다하였는데도 그 친구는 옆 자릴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얼음 물 값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1달라 팁 값을 더 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내 자리에 튀김이 빈 것을 알아차리고는 한 접시를 얼른 들고 나왔다. 감사의 뜻일게다.
그런 그 친구는 3달러 중 1달러를 떼어 옆에 지배인처럼 보이는 친구에게 바로 건네었다.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안쪽에 앉아 있던 일행 여자 한 분이 종업원을 불러 세우더니 주문을 하였다. ‘코카콜라 서비스 오케이. 서비스.’손가락 까지 쭉 펴 보이며 서비스 FIVE 하였다. 그러자 알아들었다는 듯 종업원 한 사람이 재빨리 문 쪽을 향하였다. 잘못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쟁반에 빨대까지 꽃아 가지고 온 그 친구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돈을 달라하니 서비스인데 왜 돈을 주느냐 하는 식으로 의아해 하는 여자 분이다. 그여자분은 아마도 내가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만을 보았지 돈을 챙겨주는 것을 보지는 못하였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난처난 노릇이다.옆 자리에 일행 몇이 세 잔을 사주었다. 뚜껑을 딴 이상 물릴 수도 없는 처지, 여전히 어쩔 줄 몰라 하는 종업원이다. 한 푼의 팁을 벌겠다하다가 낭패를 보고 만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서비스 하면 덤으로 얹혀주는 무료제공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외국에선 오히려 특별 주문임으로 더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 큰 눈을 굴리며 이리저리 살피는 종업원이 안쓰럽다. 옆에 종업원들까지 어쩔 줄 몰라한다. 그 순간 큰 아들이 갑자기 콜라를 잡아들었다.
어라! 돈도 없는 녀석이.. 그리 말하였지만 순간 내 마음은 환해졌다. 말도 잘 안통하는 상황, 당황해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 바로 내 아들이란 것이 여간 흐뭇한 것이 아니었다. 야박함도 배워야할 일이라고 마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삶이 꼭 풍요하다 하여 온정이 스미고 베푸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누고자하는 마음이 우선이면 못 살아도 삶은 그것으로 따스함이고 평온이려니 애매하게 양면의 느낌을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같이 간 아이들이 나오면서 장난삼아 아빠 까바르 한다.
고마움을 느꼈는지 그가 문 밖까지 쫓아 나왔다.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힘차게 말을 한다. 아빠 까바르. 아빠 까바르. 그런 그의 손은 가슴에 모아져 있었다. 우리도 그에게 배운 대로 인사를 따라 하였다. 아빠 까바르. 돈도 돈이지만 마음은 서로 주고받도록 열려져 있다는 것을 자연 느낄 것도 같았다. 말은 서로 몰라도 느낌이 진정이라면 그 마음은 다 통하리라. 안녕하세요 라고 한 후 가슴에 손을 얹는 그들의 풍습을 이해 할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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