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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의 '성 로렌스'

작성자이민혜|작성시간11.05.22|조회수1,749 목록 댓글 0

 

<최후의 심판>의 聖 로렌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1536-41, 프레스코, 시스티나 예배당

  

 

한 무리의 선택된 의인들이 예수와 마리아를 둘러싸고 있는데 예수의 왼쪽으로는 1)베드로(흰 머리와 흰 수염에 양쪽 손에 든 (천국의) 열쇠를 예수에게 내밀고 있는 거구의 근육질 노인) 를 위시한 일군의 성자들이 있다. 그리고 예수의 왼발 옆으로는 (2)성 바돌로매가 왼손에는 사람의 가죽 같은 것을 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앉아 있다. 좀 더 왼쪽으로 가면 커다란 금색 십자가를 지고 있는 젊은이가 보인다.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길을 올라갔다는(5)구레네 시몬이다. 그의 발 밑으로는 화살을 오른손에 들고 앉아있는 금발의 청년이 보인다. 그가 성 세바스챤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왼 발 밑으로 작은 십자가를 메고 있는 흰 머리의 사람이 있는데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는 회개한 강도(6) 디스마스(Dismas)이다.

 

마리아의 오른쪽으로는 (2)세례 요한(예수를 바라보고 있는 거구의 나체 노인)을 위시해서 선택된 성자들과 부활한 성도들이 있다. 마리아의 발치에 있는 사다리같이 생긴 고기 굽는 석쇠를 어깨에 메고 있는 흰 머리의 젊은 이가(4) 성 로렌스이다. 성 로렌스의 어깨 너머로 여자의 얼굴이 보이며 반대쪽 사람의 가죽을 들고 있는 바돌로메의 뒤쪽으로는 젊은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할 듯 하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채플의 벽화를 그리던 때 바티칸 교황청에 실망한 사람들이 미켈란젤로만이 아닌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517년에 이미 마틴 루터가 로마교황청의 가르침에 반기를 든 것이 유럽전역으로 퍼지면서 개신교 운동이 되었고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교회에 실망하여 비판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그 가운데에는 1530년대에 이태리의 나포리(Naples)에서 발데스(Juan de Valdes)를 중심으로 모였던 조그마한 그렇지만 영향력이 큰 비밀결사체가 있었다. 발데스는 유대계 스페인으로 종교재판을 피하기 위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는데 그는 가톨릭 대학에서 히브리, 라틴, 희랍어를 공부하고 문학과 신학을 전공한 16세기 스페인의 가장 훌륭한 학자요 문필가였다. 다양한 지식과 재능을 가진 전형적인 루네상스인으로 스페인의 종교재판을 피해 나폴리에 와서 지냈으며 추기경이나 대주교와 같은 종교지도자는 물론 문필가나 외교관, 유명 설교자, 귀족 등 폭넓은 교우를 가지면서 자연히 샤롱을 중심으로 지성인들과의 서클이 형성되었다.

 

발데스를 중심으로 비밀리에 모이는 사람들의 공통된 하나의 목표는 바티칸과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는데 있었으며 또한 공통된 특징은 이들의 대부분이 미켈란젤로를 알거나 친구였다는 것이다.

발데스는 바티칸의 권력남용과 위선을 공격하였고 성경을 교회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일반 신도들이 읽을 수 있도록 허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특히 유대인들이 탈무드와 미드라의 관점에서 그들의 성경 토라를 읽듯이 크리스천들은 신약성경을 자신들의 수준에서 자유로히 의문을 제기하면서 지적으로 분석하며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구원이란 유아세례나 바티칸이 가르치는 교회에 무조건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총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각자 능력에 따라 최대한 성경을 이해하고 겸손히 일상생활에서 예수를 본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1541년 발데스가 죽은 후 비토리아(Vittoria Colonna)라는 수녀가 발데스의 역할을 맡아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녀는 유럽 전역의 자유주의적인 신부들과, 정치가들 외교관 지성인들을 비밀리에 연결하여 바티칸 내부에서 개혁을 이끌어내며 궁극적으로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앙을 조화시키는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들은 <Spiritual Ones>라는 이름으로 두 개의 기독교 신앙을 통합하고 정화하여 다시 태어난 하나의 교회를 목표로 하였다.

 

비토리아가 로마에 있을 때 미켈란젤로와는 절친한 친구였으며 그 관계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들간에는 많은 편지들이 오갔는데 어떤 역사가는 사랑하는 사이였으며 그것들은 미켈란젤로가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고 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프라토닉한 것으로 서로의 ‘마음’을 사랑했든 것이라고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발데스를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미케란젤로의 <최후 심판>에서 발데스의 천계설(illuminismo)의 영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보면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른 레벨에서, 여러 다른 방법으로 천국으로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벽화 왼쪽으로 보이는 부활하는 여자 의인들을 보면 완전히 의인으로 인정되어 즐거운 표정을 짓는 무리들도 있지만 아랫부분에 보면 위로 오르기 위해 애를 쓰면서 천사들을 붙잡고 오르는 사람들도 있고 마귀들이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마지막 아래 단계의 땅 위에는 신부의 기도를 받으며 부활하는 자도 있고 아직 부활의 몸을 입지 못하고 해골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자들도 있다. 능력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구원이 가능하며 인간은 최선을 다해 일상생활에서 겸손히 예수를 본받는 것이라는 발데스의 가르침을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표현하려고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발 밑에 쇠로 만든 사다리 같은 석쇠를 어깨에 메고 있는 나체의 젊은이가 (4)성 로렌스인데 석쇠 위의 고기와도 같이 산채로 불 위에 올려져 순교한 것을 상징하고 있다. 예수의 발 밑 쪽에 사람의 껍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는 나체의 노인이 (3)성 바돌노메이다. 그가 알메니아에서 산채로 껍대기를 벗기우는 처형으로 순교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껍대기를 들고 앉아있는 것으로 그렸다. 로렌스의 어깨너머에 여자의 얼굴이 보이는데 성모 마리아를 자세히 보면 그의 시선이 이 여인에게로 향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 바돌로메의 어깨너머에는 흰머리에 젊은 얼굴의 남자 얼굴이 보인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 여인은 미켈란젤의 친구였으며 발데스의 뒤를 이어 가톨릭교회 개혁운동을 이끌었던(8) 비토리아 수녀이며 젊은 남자는 벽화를 그릴 때 미켈란제로를 도와주었었던 조수 (7)카발리엘(Tommaso dei Cavalieri)라고 한다. 로렌스바돌로메이 두 성인들이 미켈란젤로가 특히 사랑하였던 두 사람들을 각기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켈란젤로는 왜 많은 성인들 가운데서 이 두 성인들을 택하여 그가 좋아하던 사람들을 보호하게 하였을까?

 

초기 로마기독교회에서 재정을 담당했던 로렌스 성자는 그 이름이 이텔리어로는 ‘Lorenzo’로 미켈란젤로를 돕고 지원하였던 ‘로렌조 가문’과 동일하기도 하다. 성자 로렌스는 교회의 진정한 부(富)는 금(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신도들의 신앙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최후의 심판을 그리기 위해 시스틴 채플로 돌아온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성 로렌스의 그것이었던 것이다.

 

성 바돌로메는 박제사와 가죽 만드는 사람들의 보호자이며 석고 만드는 사람의 보호자로서 미켈란젤로는 천정벽화를 그리면서 석회반죽이 떨어지는 것 때문에 애를 많이 썩였다. 그런점에서 그의 조수였던 카발리엘의 도움이 컸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미켈란젤로에게 있어 바돌로메의 보호아래 천국에 오르도록 그의 얼굴을 집어 넣은 것이다. 미천한자요 바티칸의 잘못을 비판하였던 당시로는 천국과 거리가 먼 사람들을 천국에 오른 의인으로 한발 더 나아가 마리아와 예수가 눈길을 주는 의인으로 삽입함으로 하나님의 생각은 바티칸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돌로메가 들고 있는 자신의 껍질에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것이 바돌로매의 얼굴과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이 미켈란젤로의 것이라는데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왜 그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을까? ?당시에는 그림이나 조각품 등에 작가나 제작자의 이름 또는 사인을 새겨 넣을 수가 없었다. 누구의 명이나 지원으로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것만 알려질 뿐 작가는 잊혀 지는게 보통이었다. 미켈란젤는 이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사인 대신 얼굴로 자신의 작품임을 알리려 하였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로레스,바돌로메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

 

 

그리스도 바로 아래 왼쪽에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로렌스가 석쇠를 들고 있다.

오른쪽에는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 순교한 성 바르톨로메오가

오른손에 칼, 왼손에 살가죽을 들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성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축 늘어진 살가죽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그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지옥 위에 매달린 모습으로 표현했지만, 성인의 손에 잡혀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통해 사람들에게 죄를 고통스럽게 여기게 했고,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구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스페인 엘 에스코리알 궁전의 서쪽면 중앙 출입구 윗편에 석쇠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고기와도 같이 불 위의 석쇠에 올려져 순교한 '성 로렌스'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성 로렌스는 지글지글 살이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얘들아, 다 구웠으면 뒤집어야지" 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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