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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 (24) - 하얀 마을 (론다 :누에보 다리 / 구시가지)

작성자이민혜|작성시간07.12.08|조회수1,085 목록 댓글 21

 

 

릴케와 훼밍웨이가 사랑한 하얀 마을

론다 Ronda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곳곳에 매력적인 하얀 마을이 있다. 그중에서도

론다(Ronda)는 오랜 역사와 빼어난 풍광, 중량감 있는 유적들, 시인 릴케와

소설가 훼밍웨이가 사랑한,  단연 최고의 마을로 꼽힌다.  

릴케는 론다의 절벽 위에 펼쳐지는 하얀 집들의 마을,

푸에블로 블랑코(Pueblo Blanco)를 보고 조각가 로댕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거대한 절벽이 등에 작은 마을을 지고 있고, 뜨거운 열기에 마을은 더 하얘진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 내전을 다룬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론다가 등장한다.

전쟁에 희생된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절벽 아래로 내던져지는 곳이 바로 론다였다.

 

 

 

 

론다는 과달레빈 강에 침식된 대지 위에 있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잇는

누에보 다리 아래는 100m나 되는 절벽이며, 타호 계곡 맞은 편으로는 저 멀리 평원이 이어진다.

 

- 론다 역사 -

론다라는 이름은 기원전 켈트족이 이곳을 'Arunda'라고 부른데서 유래하며

 지형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역사적으로 주요 요새의 구실을 했다.

B.C. 2세기 경에는 로마인들이 점령했고 8세기 경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해왔을 때

역시 이곳을 주요 거점으로 지배했다고 한다.

 

 


 

 

 

 론다를 "애인과 함께 머물 가장 로맨틱한 도시" 라고 토로한 사람이 바로 훼밍웨이다.

 

그는 이 아름다운 도시 론다에서 그의 대표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완성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론다를 배경으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세 개의 다리

론다에는 신시가지(사진 아래쪽)와 구시가지(사진 윗쪽)를 잇는 3개의 다리가 있다.

지도에 있는 협곡의 왼쪽 다리부터, Arab bridge, Ancient bridge, New bridge이다.

스페인 명칭은 Puente  Arabe(아랍 다리(13번)

올드 브릿지라 부르는, 이슬람 시대에 만든 Puente Viejo(비에호 다리(15번)

뉴 브릿지로, 론다를 대표하는 Puente Nuevo(누에보 다리(18)

 

 

 

누에보 다리 Puente Nuevo (New bridge)

론다를 대표하는 상징적 다리이다.

두 개의 거대한 절벽 마을을 연결해 놓은 다리인데 1735년 펠리페 5세가 처음 지었다.

6년 뒤인 1741년 붕괴되면서 50명 정도의 사상자를 냈다. 이 후 1751년에 다시 짓기 시작하여

 무려 42년이나 걸려 다시 다리가 완성되었다.

 

 

 

다리 가운데에 보이는 방들은 과거 한 때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감옥조차도 낭만적인 곳, 그 곳이 론다이다.

 

다리의 왼쪽 절벽 위에 서 있는 건물 또한 낭만적이라구요?

우리 일행이 유숙했던 '론다 파라도르'랍니다.   

 

 

 

고풍스런 다리 위로 "또각 또각" 말발굽 소리가 굴러간다

 

 

파라도르 맞은 편 '돈 미구엘 호텔 레스토랑'(오른쪽 건물)은

누에보 다리를 제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해서 음식 값이 비싸대요. 

맛 좋고 가격 저렴한 곳이 어디에 있느냐구요?

호텔 아래 비탈에 매달려 있는 작은 레스토랑으로 가셔요. 허름한 외양보다

맛은 일품이랍니다. 게다가 누에보 다리도 코 앞에 있고...

 

 

비에호 다리 Puente Viejo (Ancient bridge)

'올드 브릿지'라 불리는 비에호 다리는 이슬람 시대에 건설되었고 

누에보 다리를 사용치 못했을 때 주로 이용되었다

  

 

아랍 다리에서 바라본 비에호 다리

 

 

구시가지에서 펠리페 5세 아치를 지나 비에호 다리를 건너

신시가지로 간다

 

 

아랍 다리 Puente Arabe (Arab bridge)

아랍 브릿지는 로마가 점령하던 시절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여러 번의 강의 범람으로 인해 계속 고쳐져온터라 그 당시의 흔적은 알 수가 없고

 다만 아랍의 건축구조를 반영하고 있어서 아랍 다리라고 불린다.

 

 

아랍 다리 비에호 다리 아래쪽에 있다. 

아랍 다리를 건너 조금 가길 왼쪽에 '아랍 목욕탕 유적'이 나온다.

 

 

알라메다 전망대에서

 

 

알라메다 전망대로 가는 길을 유두화가 안내하고 있었다.

 

 

 

 

 

 

 

 

 

구시가지

 

 

론다에서는 하나도 바쁠 것이 없다. 누에보 다리를 건너

구시가로 향하는 발걸음이 느긋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하얀 마을은 스페인 남부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한데

건물 전체가 모두 하얗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디언핑크나 파스텔 톤의  테두리를 두르기도 하고

빨강 지붕에 어울리는 색깔로 건물마다  창과 테라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자동차도 마차도 바쁠 것이 없다

 

 

펠리페 5세 아치(Arco de Felipe V)

 

 

누에보 다리에서 펠리페 5세의 아치까지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은, 때론

골목으로 이어지고 때론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내리막길이다.

펠리페 5세의 아치 1742년 만들어진 것으로 스페인 부르봉왕조 첫 번째 왕인

 펠리페 5세의 통치기간 중에는 시내로 들어가는 실제적인 현관으로 이용됐다고 한다.

 

 

 펠리페 5세의 아치 지나며 누군가 외쳤다.

"오~ 세르반테스여!"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왕인 카를로스 2세가

왕위 계승자 없이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태어나고 자란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가 부르봉 왕가 사람으로는 최초로

스페인 왕위를 계승하였다. 지금의 스페인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국왕도

부르봉 왕가의 후손이다.

 

스페인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펠리페 5세는

특히 문화적인 면에 관심이 많아

 1713년, 스페인 어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왕립언어학술원을 만들었으며,

<모범사전>의 출판으로 왕립언어학술원의 언어 체계가 '모범 스페인어'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모범사전>은 16~17세기까지의 고전 작가들의 훌륭한 예문들을 인용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가치를 인정받는 작가는 바로 세르반테스였다.

 

세르반테스는 당시에 스페인어를 가장 정확하게 쓴 작가도 아니고

가장 인기 있는 작가도  아니었지만, 왕립언어학술원은 세르반테스의 언어 세계를

재평가해서 1780년에 <돈 키호테>를 호화 장정으로 다시 출판하고,

그를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스페인 어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돈 키호테>는 작품의 내적 가치는 물론이고, 언어학적 관점에서도

왕립언어학술원의 목표에 적합한 아주 훌륭한 모델이었다. 

 

 

아랍 목욕탕 유적

   

 

'아랍목욕탕 유적'은 비에호 다리 아래쪽, 아랍 다리 건너편에 있다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초반에 걸쳐 만든 이슬람 양식의 공중목욕탕 유적이다.

 

 

 

말굽형 아치가 떠받치고 있는 둥근 천장에는 채광을 겸한 별 모양의 환기구멍이 뚫려 있다.

스페인에 남아 있는 아랍 목욕탕 중에서도 그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도 좋다.

 

 

밖에서 본 환기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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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보 다리에서부터 이어져 온 큰 길을 따라 구시가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론다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산타 마요르 성당이 있다.

15~16세기의 옛 이슬람 사원 터에 건설된 성당으로 종루는 무데하르 양식의 첨탑을 개장했다.

건물 전면에 이슬람의 양식인 발코니가 유럽풍의 양식과 혼재되어 있어,

일반적인 유럽의 성당과는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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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년까지 이슬람 교도에게 지배당했던 이 도시는, 골목마다 창문마다

저마다의 사연과 모습을 갖추고 있다

 

 

 

지도를 접어두고, 론다의 골목 골목을 발길 가는대로 누비다가

 마당에 우물이 있는 집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타일로 된 '론다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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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며

하야 벽 사이로 좁게 이어진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던 일은

론다에서 누렸던 소박한 기쁨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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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를 거닐다가 무심코 들어간 전시장에서는

릴케사상을 주제로 한, 나무 그림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진의 모델은, 에세이스트 17호부터 '老子의 原音을 찾아서'를 연재 해 주셨던

서강 대학교 최진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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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의자가 있는 회랑

 

 

 

구시가의 성벽에서 바라본 신시가

 

 

론다 파라도르 Ronda Parador

론다 파라도르는 1761년에 건조된 시청사를 개조한 건물로, 론다의 명물이다.

 

 

우리 일행이 여장을 푼 파라도르는 신시가지의 가장자리,

눈맛 시원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두 채의 건물 중, 담장이 덩굴이 뒤덮은 왼쪽 건물 아래층에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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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도르'란 스페인 정부가 국내에 있는 2,000여 개의 中世 궁전이나 古城, 유서 깊은 수도원 등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건물의 내부를 개조하여 오픈한 국립호텔 체인이다. 1905년에 시작하여

지금은 약 100여 개로 구성되어 있다.

파라도르는 앉은 자리도 명당이려니와 방과 욕실과 식당 등이 모두 앤틱하여,

일반 호텔에 묵는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정원에 있는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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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도르의 저녁 식탁에서

 

 

훼밍웨이 산책로

 

 

 

 '훼밍웨이 산책로' 우리 일행이 머문 파라도르 가까이에 있었다.

그가 걷던 길을 따라 걷는데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부분, 사랑하는 여인이 죽은 뒤

주인공이 병원에서 나오는 장면이 선연히 떠올랐다.

 

"그들을 내보낸 다음, 방문을 닫고 불을 꺼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각상에다 작별 인사를 하는 것과 같았다. 잠시 후 나는 밖으로 나와 병원을 뒤로 하고

빗속을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수식어를 모두 떼어버리고, 박정하리만치 간결한 문체로 남자의 슬픔을 표현한 마무리!!!

훼밍웨이가 17번이나 고쳐 썼다는 이 부분을 나는 17번도 더 읽었나 보다.

 

 

 

 

게리 쿠퍼와 잉그릿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포스터

론다는 아랍의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투우의 고장이요, 헤밍웨이

소설의 배경이 된 도시였다. 헤밍웨이는 이 론다에 머물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있거라' 를 집필하면서 실제로 스페인 내전(1936~1939)에도 참전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화에서 시민군들이 브르쥬아들을 처형할 때, 다리 밑으로 사람을 던지는데,

바로 이 누에보 다리가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 영화는 세트를 이용해서 찍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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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한복용 | 작성시간 07.12.12 선생님 기대가 큽니다. 선생님의 열정이 부럽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 작성자오성진 | 작성시간 07.12.12 꼭 가보고싶다.저기저기.....
  • 답댓글 작성자여혜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2.14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을 전적으로 찬동합니다. 뜻을 세우십시요. 조용하고 멋진 곳이지요.
  • 작성자오성진 | 작성시간 07.12.12 댕큐요
  • 답댓글 작성자여혜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2.14 오성진님, 송년회에서 비록 술 한 잔 나누지는 못했지만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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