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앵 대성당(Cathederal d'Amiens)
1206년 십자군 전쟁에서 되찾아온 세례 요한의 머리를 보관하기 위해 짓기 시작한
아미앵 대성당(Cathederal d'Amiens)은 198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를 한
배올레 르 뒤크(Violet Le Duque)에 의해 1850년 재건되었다.
다행이도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도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그 당시의 모습을 현재 우리에게 보여준다.
북쪽에서 본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은 너비 32m(익랑부까지 65.5m), 안길이 145m, 궁륭 높이 42.3m,
넓이 7,700m2의 프랑스 최대의 고딕 건축물이다.
1220년에 신랑을 지으면서 시작된 건축 공사는 1288년에 주요 부분의 작업을 완료했다.
이 대건축의 공사 기간이 비교적 짧았던 것은 새로운 공법 덕분이었다.
석재는 현장이 아닌 별도의 장소, 즉 난방시설을 갖춘 옥내 작업장에서 가공했다.
그 덕분에 날씨와 관계없이 작업이 착착 진행되었고, 가공이 끝난 석재는
계속 건설현장으로 운반해 사용했다.
아미앵의 성모 주교좌 성당 또는 아미앵 주교좌 성당
아미앵 대성당은 아미앵 주교좌가 있는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좌 성당이다.
대성당은 완만한 산마루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곳에서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120킬로미터 떨어진
프랑스 피카르디 주의 행정수도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솜 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아미앵 대성당은 프랑스에서 완성된 주교좌 성당 가운데 가장 높은 성당이다. 돌을 깎아 만든
둥근 천장이 있는 회중석은 높이가 42.30미터에 이른다. 이보다 더 높은 것은 미완성된 보베 대성당뿐이다.
또한 아미앵 성당은 프랑스의 주교좌 성당 가운데 내부 공간이 가장 넓은 성당으로,
그 체적은 20만 입방미터나 된다. -위키백과-
서쪽 정면 '왕 들의 갤러리'에는 역대 프랑스 왕 22명이 왕관을 쓰고 늘어서 있으며
'장미창'은 플랑부아냥 양식(Flamboyant style)으로 만들어져 있다.
(플랑부아냥 양식이란 높이가 다른 첨탑을 여럿 모아 멀리서 봤을 때 이름 그대로
불꽃(Flame) 같은 인상을 주려는 목적의 건축 및 배치 기법으로서
프랑스 고딕의 완성단계에서 나타난 기법이다)
안에서 본 장미창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닮은 정면 모습
아미앵 대성당은 13세기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프랑스 고딕 건축물을 대표하는
사르트르 대성당, 랭스 대성당과 더불어 고딕 건축의 파르테논신전이라 불린다.
아미앵 대성당은 그 풍부한 장식, 특히 '돌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조각군이 깊은 인상을 준다.
정면에 있는 '왕 들의 갤러리'에는 왕관을 쓴 조각상 22점이 늘어서 있고, 그 밑에 있는
3개의 문을 뒤덮은 조각군은 여러 가지 종교적 교양과 성인전, 천지창조로 시작되는
역사 등을 나타내고 있어서 '돌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면 중앙에 있는 나팔부는 천사
서쪽 정문의 세 개의 문
서쪽 정면 '왕들의 갤러리' 밑에 있는 3개의 문을 뒤덮은 조각군은
여러가지 종교적 교양과 성인전, 천지창조로 시작되는 역사들을 나타내고 있어서
'돌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앙 정문(예수님의 문) 가운데 기둥의 '아름다운 신' 은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문 위쪽의
팀파눔에는 '최후의 심판'이, 정문 좌우에는 12명의 사도와 4명의 예언자상이 있다.
이들 성인상 아래에 있는 걸레받이 돌에는 네 잎 모양의 틀을 2겹으로 포개 놓고, 그 안에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 주는 12가지 미덕과 악덕을 적어 놓았다.ㅣ
왼쪽 정문 (성 페르맹 문)가운데 기둥에는 아미앵 최초의 주교'성 페르맹상' 이 있고
오른 쪽 정문(성모의 문) 가운데 기둥에는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조각되어 있다
이곳의 걸레받이 돌에도 역시 2단으로 된 네 잎 모양의 틀 안에 중세 달력과 함께
'매 달 할 일'을 적어 놓고, 12개월의 별자리와 농민이 1년 동안 일하는 모습을 묘사해 놓았다.
(중앙) 예수님의 문
중앙 문 가운데 기둥의 '예수 일명 아름다운 신'은
그리스도가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을 내리는 모습이다.
아키볼트에 둘러싸여 있는 팀파논에는 '최후의 심판'이 조각되어 있는데
맨윗부분은 그리스도 좌우에서 성모와 사도요한이 죄 많은 사람들을 위해 간구하고 있다.
가운데 부분은 천사장 미카엘을 중심으로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어 지는 모습으로
발가 벗겨져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 끝에 악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아랫부분은 미카엘이 저울을 들고 죄를 달고 있고, 죽어서 3일간 연옥에 있던
사람들이 천사들의 나팔 소리에 깨어나고 있다.
열 두 제자와 네 명의 예언자 (왼쪽 벽)
이들 성인상 아래에 있는 문설주 돌에는 네 잎 모양의 틀을 두 겹으로 포개 놓고,
그 안에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 주는 '미덕과 악덕'을 조각해 놓았다.
12제자와 4명의 예언자 (오른쪽 벽)
중세 당시 글을 읽지 못하는 교인들을 교도하기 위하여
팀파논에는 최후의 심판을, 아키볼트에는 지옥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모습 등을 새겨
보는 이들이 겁이 나게 하는 한편, 사람의 도리까지 새겨 '악과 선'을 일깨워 주었다.
(왼쪽) 성 페르맹의 문
가운데 기둥에는 최초 주교이며 순교 성인인 성 페르맹이 있다
티파논의 아랫부분에는 이 성당에 모신 6명의 주교상이 있고
그 위로 성 페르맹의 생애가 조각되어 있다.
좌측 벽에는 로마 군에 처형 당한 빠리 최초의 대주교 (순교자)
쌩 드니 (Saint Denis)가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다.
이 문의 문설주 돌에는, 역시 2단으로 된 네 잎 모양의 틀안에
중세 달력과 함께 '매달 할 일'을 적어 놓고, 12개월의 별자리와 농민이
일 년 동안 일하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오른 쪽) 성모의 문
아담과 이브
(밭침돌 하단 왼쪽 조각)
윗부분은 성모 마리아의 대관.
가운데 부분은 성모 마리아의 죽음, 또는 몽소승천을 표현.
아랫부분은 ‘언약의 궤’를 둘러싸고 있는 예언자들
수태고지/ 성모의 방문/ 예수 탄생
왼쪽부터- 두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가 마리아 (옷이 똑 같다)
아미앵 대성당 문설주 조각에도 가브리엘 천사와 마주한 마리아는 책을 들고 있는데,
이는 카롤링거 왕조, 오토프리드의 시 ‘크리스트(Krist)'에서
’천사가 도착할 때 마리아는 책을 읽고 있었다.‘라는 표현에서 기인한 것이다.
13세기 중반에 건축된 아미앵 대성당 외부에는 2명의 게드(guede, 쪽빛 염료)업자가
각각 정제된 염료덩어리를 담은 자루를 메고 있는 조각상이 있고 그 아래
"아미앵의 게드를 판매하는 선량한 시민들이 기부한 헌금으로 이 예배당을 만들었다"
고 씌어 있다는 글을 읽었는데 이 사진의 인물이 아닌가해서 올렸다.
궁륭 높이가 42.3m나 되는 이 거대한 성당은 아미앵의 경제적 활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그 중심에 게드업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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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디풀 과의 한해살이 풀, 쪽 | |||||||||
쪽빛을 영어로는 ‘인디고’ 또는 ‘인디고 블루(indigo blue)’라고 하는데,
이미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인디고로 염색한 아마포를 미라의 몸에 감쌌고,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카펫을 인디고로 염색했다는군요. 또한 대영박물관에
기원전 7세기의 바빌로니아 염색법이 소개된 책이 있는데, 거기 보면
27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인들이 쪽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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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으로 물들인 옷감 | |||||||||
쪽빛을 낼 수 있는 풀들은 사실 수십 가지나 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쪽과 대청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영산강을 이루는 물줄기와 바닷물이 합류했던 나주가 쪽 재배지로 적당해서, 조선 시대와 근대 사회 말까지 그곳에서 염료 생산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대적인 교역까지 이루어졌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고, 고려 시대 도염서나 조선 시대 경공장 등에서 그곳의 쪽을 원료로 쓰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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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고 덩어리 | |||||||||
인디고의 주원료인 쪽과 대청 가운데 쪽은 5천 년 전 인더스 강에서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고, 대청은 고대 영국에서 전쟁의 염료
였습니다. 고대 켈트 족의 상징이 대청이었고, 로마와 전투할 때 켈트 족의 왕은 푸른
대청을 온 몸에 칠했습니다. 또한 나이지리아와 페르시아 사람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대청 문신을 했다는군요. 대청과 쪽의 대립은 재미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대청이 대세
여서, 13세기에 지어진 프랑스의 아미앵 성당 외벽엔 거대한 자루를 들고 있는 대청
상인 두 명이 조각되어 있는데, 성당 홈페이지엔 자기네 성당은 대청상인들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지어졌을 거라는 구절까지 있더군요. 당시 아미앵 직물은 이탈리아까지
명성을 떨쳤는데, 그게 다 솜 골짜기에서 재배된 대청 덕분이었고,
‘아미앵의 파란색’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왕의 숙소였던 건물
순례자들의 숙소
시내 구경
아미앵은 솜강과 그 지류인 르아브르강과 셀강 사이에 산재하는 소택지(沼澤地) 위에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시저도 다녀 간 일이 있는 옛 도시이다.
시청 근처에 있는 시계탑
작은 하천들이 집집을 구획지어 주고 있는 마을 외곽 지역
옛날부터 자신의 밭에서 채소나 곡식을 재배하여 개인용 작은 배를 이용해
시장에 들고 나가 팔았다고 한다.
집과 집을 연결지어 주는, 각각 다른 모양의 다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미앵의 옛 시가지에는 아미앵강의 7개 줄기들이 격자 모양으로 흐르고 있다
운하 주변에는 예전의 집들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해 손님을 모시고 있다
물이 많이 차는 근처 저지대(오르티용)의 시장출하용 야채 재배업자들이
조그만 배에 야채를 싣고 와서 시장을 연다
광장으로 올라간 야채들이 30분도 안되어 모두 팔려나간다
파란색
오랫동안 파란색은 폄하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파란색은 진정한 색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흰색, 검은색, 노란색, 붉은색만을 진정한 색으로 여긴 것이다. 또 염료 기술의 문제도 있었다. 염색공들과 화가들은 파란색을 제대로 염착시키지 못했다.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만이 파란색을 저승의 색으로 여겼다. 그들은 구리로부터 이 염료를 제조해 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파란색이 야만인들의 색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게르만족 사람들이 유령처럼 으스스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얼굴에 청회색 가루를 바르고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파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게르만어 <블라우 blau>에서 온 것이다. 로마인들은 파란 눈의 여자는 천하며, 파란 눈의 남자는 거칠고도 어리석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성경에서는 파란색이 언급되는 일은 드물지만, 푸른 보석인 사파이어는 가장 귀한 보석으로 여겨진다. 파란색에 대한 멸시는 서양에서는 중세까지 이어진다. 빨간색은 선명할수록 더 큰 부의 상징이 된다. 따라서 빨간색은 사제들, 특히 교황과 추기경의 옷을 물들였다.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역전된다. 남동석, 코발트, 인디고 덕분으로 화가들은 마침내 파란색을 염착하는데 성공한다.
파란색은 성모의 색이 된다. 성모는 파란색 외투나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성모와 파란색이 연결되는 것은 성모가 하늘에 살기 때문이기도 하고, 파란색이 거상(居喪)의 색인 검은색 계열로 간주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하늘이 검은색이나 흰색이었으나, 이 시대에 와서 비로소 파란색으로 칠해진다. 녹색이었던 바다 역시 목판화 등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유행은 바뀌어 파란색은 귀족들이 선호하는 색이 되며, 염색공들은 이 유행을 따른다. 그들은 서로 경쟁을 벌이며 점점 더 다양한 종류의 파란색을 만들어 낸다. 토스카나, 피카르디(지금의 아미앵 지역), 툴루즈 등지에서는 파란색 제조의 원료가 되는 식물인 <대청>이 재배된다. 파란색 염료 산업 덕분으로 이 지역들 전체가 융성하게 된다. 아미앵 대성당은 대청 상인들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것이다.
반면 스트라스부르에서 붉은색의 재료인 꼭두서니를 취급하는 상인들은 성당 건축 자금을 대는 데 애를 먹는다. 이런 까닭으로 알자스지방 성당들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악마를 예외없이 파란색으로 묘사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파란색을 좋아하는 지방들과 붉은 색을 좋아하는 지방들 사이에 일종의 문화적 전쟁이 시작된다.
종교 개혁 시대에 칼뱅은 검은색, 갈색, 파란색은 <정직한> 색이고,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은 <정직하지 않은> 색이라고 주장한다.
1720년 베를린의 한 약사는 감청색을 발명하며, 이로 인해 염색공들은 파란색의 색조를 더욱 다양화할 수 있게 된다. 항해술의 발전 덕분으로 대청보다 훨씬 강력한 염착력을 지닌 엔틸리스 제도와 중앙아메리카의 인디고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색의 세계에 정치도 끼어든다. 프랑스에서 파란색은 흰색의 왕당파와 검은색의 카톨릭파에 맞서 일어난 공화파의 색이 된다. 또한 나중에 공화파의 파란색은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붉은색과 대립한다.
1850년대 파란색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드높인 옷이 등장하니,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재단사 리바이 스타라우스가 발명한 청바지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설문 조사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파란색을 꼽는다. 유럽에서 스페인은 붉은색을 선호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청색이 아직 발을 붙이지 못한 유일한 영역은 음식이다. 파란 통에 든 요구르트는 흰색이나 붉은색 통에든 것보다 덜 팔린다. 파란색 음식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신" 중에서 - |
샤갈作 Wlndow over a Garden 1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