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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베르니니 작 <성녀 테레사의 환희>

작성자이민혜|작성시간08.01.02|조회수1,099 목록 댓글 0

잔로렌조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의 환희]




 
Gianlorenzo Bernini (Italian, 1598-1680)
[성녀 테레지아의 환희]The Ecstasy of St. Teresa,
1645-52, marble, Santa Maria della Vittoria at Rome




 
Gianlorenzo Bernini (Italian, 1598-1680),
The Ecstasy of Saint Therese
1647-52, Marble, stucco, gilt bronze
Cappella Cornaro, Santa Maria della Vittoria, Rome

 

테레사 성녀의 황홀경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라 빅토리아 교회에 있는 코르나로 예배당에는 이탈리아 바로크

조각의 대가 베르니니가 조각한 <성녀 테레사의 황홀경>이라는 작품이 있다. 성녀 테레사는

스페인 카르멜 수도회의 수녀였다. 흔히들 ‘아빌라의 테레사’(1515~82)라고 불린다.

 

테레사 수녀는어느 날 꿈을 꾼다. 꿈 속에 어린 천사가 나타나서 불화살로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순간 고통과 함께 극치의 황홀감을 경험한 꿈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녀의 깊은 신앙심에

감복한 하늘의 은총이라고 생각했고, 그녀는 카톨릭이 지정한 성녀가 된다.

물론 그 꿈만이 아니라 수도회의 개혁을 위해 노력한 결과의 대가였을 것이다.

 

화가나 조각가들이 이 일화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예술가들은

 신화나 종교, 역사적 주제에 국한해서 작품활동을 해야만 했는데, 한 여성의 황홀경이라는 소재가

육감적인 여성의 표현이라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당시에 흔한 일이었다. 예를 들면

성서 속의 [밧세바의 목욕]이나 [수잔나와 두 노인], 그리고 음탕한 여인에서

성녀로 변신한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 같은 경우가 종교적 주제 속에서

여인의 육체를 드러낼 수 있도록 이용된 경우이다. 

   베르니니의 작품 속에서 성녀는 요동치는 물결 모양의 옷주름으로 온통 휩싸인채

무아지경 상태에서 황홀경에 빠진 모습으로 천사와 함께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빛에 싸여

건축과 장식 요소들로 호화롭게 꾸며져 있는 제단 너머의 벽감(壁龕) 안에 들어 있다.

그 좌우에는 오페라 좌석과 비슷한 공간 속에 대리석상으로 묘사된 코르나로가(家)의

수많은 가족들이 대화나 독서 또는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조상의 위쪽과 뒤쪽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떨어지는 자연광도 뒤쪽에 조각된 금빛 광선과 더불어

군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성녀 테레사의 황홀경〉은 전통적인 의미로는 조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적 드라마에서의 예배자도 포함해 조각과 그림, 빛 등으로

이루어진 회화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정신분석적으로 바라볼 때는 완전히 해석이 달라진다. 사춘기가 채 안 된

어린아이 모습의 천사가 화살을 들고있다. 테레사는 그 앞에서 누운채 눈을 반쯤 감고 황홀경에

빠져있다. 이러한 꿈은 지극히 성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수녀의 삶이라는 게 성적으로 억압하고

살아야하는 삶이지만, 무의식이 표현되는 꿈 속에서마저 완전히 억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억압된 성적 욕망이 표현된 것이다. 화살은 남근을 상징하고, 남근이 들어오는 순간

고통과 함께 환희를 경험하는 것이다. 다만 꿈에서도 성적 환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꿈작용’이라는 기전을 통하여 남자와 남근은 천사와 화살로 변형된 것이다.

따라서 이 꿈은 억압된 성적 욕망의 표출이라고 보는 것이 정신분석적 입장이다. 
  하지만, 수녀가 억압된 성적 욕망을 가졌다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일까?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본능을 참고 살아가는 그분들이야말로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신을 헌신하는 위대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으며, 무의식적 욕망에 대해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중세 때 독일의 빙겐이라는 곳에서 작곡가로도 유명한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라는

수녀가 있었다. 그녀는 여성 수도원을 최초로 만들고 그곳에서 수도원장을 지내며 많은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녀는 수녀들에게 억압된 성적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죄악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으로 바람직하게 승화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남자를 사랑하고픈 마음을 모아, 모든 수녀는 예수의 신부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부라는 상징으로 머리에 면사포를 쓰게 했다.

그것이 오늘날 천주교에서 모든 여성이 면사포를 쓰게 된 시초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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