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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7부 카레닌의 미소)

작성자이춘희|작성시간14.01.01|조회수532 목록 댓글 1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 인류의 진정한 도덕적 실험, 가장 근본적 실험, (너무 심오한 차원에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그것은 우리에게 운명을 통째로 내맡긴 대상과의 관계에 있다. 동물들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의 근본적 실패가 발생하며, 이 실패는 너무도 근본적이라 다른 모든 실패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470p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일은 1889년에 있었고, 니체도 이미 인간들로부터 멀어졌다. 달리 말해 그의 정신 질환이 발병한 것이 정확하게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바로 그 점이 그의 행동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즉 인류와의 결별)는 그가 말을 위해 울었던 그 순간 시작되었다. -471p

 

"토마시, 카레린에게서 크루아상을 빼앗지 마!" 테레자가 소리쳤다.

토마시는 빵 두 조각을 카레닌 앞에 떨어뜨렸고, 카레닌은 한 조각을 후다닥 먹어 치웠지만 자기가 게임에 이겼다는 것을 주인에게 의기양양하게 과시하기 위해 다른 한 조각은 오랫동안 거만하게 물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개를 바라보며 비록 시한부 생명이지만 카레닌이 웃는 동안에는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중얼거렸다.

이튿날 그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식사를 했다. 두 사람 모두 한 시간의 자유를 누리면서 개를 산책시키는 것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개도 이를 알고 있었으며 평소에는 미리부터 조바심을 내며 그들 주위를 껑충거리며 맴돌았는데, 이번에는 테레자가 개 줄과 목걸이를 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두 사람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개 앞에 우뚝 서서 자신들의 유쾌한 기분을 개에게 전달하기 위해 명랑을 표정을 지어 보이려고(개를 위해, 깨 때문에) 애썼다. 잠시 후 그들이 안쓰럽게 보였는지 개는 세 발로 절룩거리며 다가와 개 목걸이를 매라는 시늉을 했다. -p475

 

낙원에서 샘물을 들여다보던 아담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몰랐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중략)

테레자는 장난 삼아 종종 개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곤 했다. 개는 자기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놀랄 정도로 무심하게 멍한 표정을 지으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카레닌과 아담을 비교하다 보니 나는 낙원에서는 인간이 아직 인간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아직 인간의 노정에 던져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들은 오래전부터 그 노정 속에 던져졌고 직선으로 완료되는 시간의 공백 속을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까마득한 옛날의 안개 낀 낙원에 연결하는 가느다란 밧줄이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 낙원의 아담은 샘물을 들여다보는데, 나르키소스와는 달리, 물 위에 나타난 창백하고 노란 흔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낙원에 대한 향수,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고 싶지 않은 욕망이다. -480p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있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개를 키운 것을 그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남편이 부인을,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것처럼) 단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그에게 기본적인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런 점도 있다. 개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발적 사랑이다. (중략)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떤 인간 존재도 다른 사람에게 전원시를 선물할 수 없다. 오로지 동물만이 할 수 있는데, 동물만이 천국에서 추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개 사이의 사랑은 전원적이다. 갈등이나 가슴이 메이는 장면, 진화 같은 것이 없는 사랑이다. 카레닌은 토마시와 테레자 주위로 반복에 근거한 삶의 원을 그었고 두 사람도 그에게 같은 일을 해 주길 기대했다.

카레닌이 개아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테레자에게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봐, 매일같이 입에 크루아상을 물고 다니는 게 이제 재미없어. 뭔가 다른 것을 찾아줄 수 있겠어?" 이 말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심판이 담겨 있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482~483p

 

그녀는 핸드백에서 거울을 꺼내 개의 코에 갖다 댔다. 그녀는 더러운 거울에 묻어 있던 얼룩을 보고 그것이 카레닌의 입김이 서린 것이라고 믿었다.

"토마시, 아직 살아 있어!" 토마시가 진흙투성이 신을 신고 정원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소리쳤다. 그는 몸을 숙여 들여다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카레닌이 누워 있는 시트의 양끝을 각각 잡았다. 테라자는 다리 쪽, 토마시는 머리 쪽을. 그들은 시트를 들고 정원으로 옮겼다.

테레자는 시트가 젖어 있는 것을 손으로 느꼈다. 카레닌은 오면서 우리에게 조그만 늪을 가져왔고 떠나면서 또 하나를 남겼구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개의 마지막 작별인사인 이 습기를 손가락으로 느끼며 행복해했다.

(중략)

정원의 어둠이 짙어 갔다. 밤도, 낮도 아니었고, 하늘에는 죽은 자의 방에 켜진 채 잊힌 램프 같은 창백한 달이 떠 있었다.

-490~491

 

그녀는 소 떼를 끌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서로 몸을 부비며 가는 소 떼를 보며 그녀는 소들이 참으로 정겨운 짐승이라고 생각했다. 평화롭고 악의도 없으며 가끔 어린 아이처럼 명랑한 동물. 열네 살 먹은 소녀를 흉내 내는 뚱뚱한 오십대 아줌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치는 소들처럼 감동적인 모습은 없다. 테레자는 애정 어린 눈길로 소들을 바라보았고 조충이 인간에 기생하듯 인류는 소에게 기생하며 산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이 년 전부터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기게 떠올랐다.) 인류는 거머리처럼 소 젖에 들러붙어 있다. 인간은 소의 기생충이며, 아마도 인간이 아닌 존재가 그의 동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렇게 정의할 것이다. -467p

 

창세기 첫머리에 신은 인간을 창조하여 새와 물고기와 짐승을 다스리게 했다고 씌어 있다. 물론 창세기는 말[馬]이 아니라 인간이 쓴 것이다. 신이 정말로 인간이 다른 피조물 위에 군림하길 바랐는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인간이 암소와 말로부터 탈취한 권력을 신성화하기 위해 신을 발명했다고 하는 것이 더 개연성 있다. 그렇다, 염소를 죽일 권리, 그것은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 와중에도 전 인류가 동지인 양 뜻을 같이 한 유일한 권리다. -4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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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정은 | 작성시간 14.01.03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일은 1889년에 있었고, 니체도 이미 인간들로부터 멀어졌다. 달리 말해 그의 정신 질환이 발병한 것이 정확하게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바로 그 점이 그의 행동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즉 인류와의 결별)는 그가 말을 위해 울었던 그 순간 시작되었다. -471p

    저도 인류 역사상 가장 숭고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가 토리노 광장에서 늙은 말을 껴안고 오열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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