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훈
yeahun54@hanmail.net
1994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5년 계간 소설과 사상<도서출판 고려원> 신인상
저서『딸들의 방』(2003) 『 이타방 』(2013년 )
『바람에게 안부를 묻다』(2023)
2017년 대전일보 한밭춘추 연재
2014년 대전일보 문학상 수상.
< 수상소감>
이예훈
먼 곳에서 나를 보러 온 친구와 나들이를 나서던 길에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래 글을 써 왔으면서도 새삼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응모하는 일이 괜한 주저를 불러, 보내 놓고는 스스로 잊고 지내던 참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늘 생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일이다 보니, 원고 청탁이나 지면의 규격과는 무관하게 삶의 결이 스며드는 자리마다 문장들이 쌓여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당선은 새로운 출발이라기보다, 오래 이어온 시간을 잠시 비춰보게 하는 계기처럼 느껴집니다.
지난겨울, 다시 한번 산사에 머물렀습니다. 눈발이 흩날리던 날, 가파른 오르막 앞에 서서 한여름 뙤약볕 아래 숨을 고르던 여름 안거를 떠올렸습니다. 아무 연고 없이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사찰을 찾아 나섰던 그때의 긴장과 설렘이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인생의 고비를 넘어 내리막으로 접어들면서,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보고 내 안의 리듬을 가다듬고 싶은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지지난겨울부터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격랑의 나날은, 세상의 소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족하며 산다고 여기는 사람조차 가만히 놔두지 않았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감당하기 벅찬 정보들에 휘둘리며, 들끓는 세파의 갈피를 잡고 소화해낼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말을 멈춘 채, 정적이 깃든 겨울 숲의 정기로 심신을 정화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는 탐험하듯 낯선 문물을 찾아온 이국의 어린 청년들부터, 이 땅의 각박한 취업전선에서 고통을 겪어온 젊은이까지, 잠시 숨을 돌리고 앞으로 나갈 바를 모색하는 진지하고 선한 눈빛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어울려 공양간의 일을 거들고 산행을 함께하는 동안, 세상은 잠시 부드러워지는 듯했습니다. 이렇듯 마음을 움직인 순간들이 글이 되어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장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삶의 결을 놓치지 않는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먼 곳에서 나를 보러 온 친구와 나들이를 나서던 길에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래 글을 써 왔으면서도 새삼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응모하는 일이 괜한 주저를 불러, 보내 놓고는 스스로 잊고 지내던 참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늘 생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일이다 보니, 원고 청탁이나 지면의 규격과는 무관하게 삶의 결이 스며드는 자리마다 문장들이 쌓여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당선은 새로운 출발이라기보다, 오래 이어온 시간을 잠시 비춰보게 하는 계기처럼 느껴집니다.
지난겨울, 다시 한번 산사에 머물렀습니다. 눈발이 흩날리던 날, 가파른 오르막 앞에 서서 한여름 뙤약볕 아래 숨을 고르던 여름 안거를 떠올렸습니다. 아무 연고 없이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사찰을 찾아 나섰던 그때의 긴장과 설렘이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인생의 고비를 넘어 내리막으로 접어들면서,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보고 내 안의 리듬을 가다듬고 싶은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지지난겨울부터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격랑의 나날은, 세상의 소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족하며 산다고 여기는 사람조차 가만히 놔두지 않았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감당하기 벅찬 정보들에 휘둘리며, 들끓는 세파의 갈피를 잡고 소화해낼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말을 멈춘 채, 정적이 깃든 겨울 숲의 정기로 심신을 정화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는 탐험하듯 낯선 문물을 찾아온 이국의 어린 청년들부터, 이 땅의 각박한 취업전선에서 고통을 겪어온 젊은이까지, 잠시 숨을 돌리고 앞으로 나갈 바를 모색하는 진지하고 선한 눈빛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어울려 공양간의 일을 거들고 산행을 함께하는 동안, 세상은 잠시 부드러워지는 듯했습니다.
이렇듯 마음을 움직인 순간들이 글이 되어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장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삶의 결을 놓치지 않는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수상작>
무상사 여름 안거
이예훈
무상사 앞의 버스 정류소에 내리니 여름 한낮의 후끈한 열기가 전신을 덮쳐온다. 종무소에서 담당 스님을 만나 객실이 있는 요사채로 올라갔다. 스님은 안거 일정에 대한 자세한 지침을 일러주고, 4층 창고에 있는 승복 중에서 맞는 걸 찾아입으라고 권했다.
객실은 여섯 명이 쓸 수 있도록 작은 서랍장으로 나뉘어 있다. 어둑한 구석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조여오는 긴장을 낯선 기대 때문이라고 다독이며, 4층 창고 방에서 낡은 승복 하나를 찾아 입었다. 입소 절차를 모두 마치고 핸드폰까지 스님에게 맡기고 나니, 오후 좌선에 참여할 시간이 이미 지나 빈 시간이 생겼다. 잠시 법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 앉아 있다가 나왔다. 하오의 적요가 내려앉은 경내에는 가끔 다람쥐나 새 같은 산짐승들이 내려와 뜨락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곁을 맴돌다가 떠나간다.
핸드폰에 길이든 나의 정신은 문득문득 빈손을 보며 아쉬워했다. 같은 방을 쓸 지선 보살님은 저녁 공양을 마치고 여섯 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아홉 시가 정해진 취침 시간인데 자정이 넘어 자던 습관 때문에 쉬 잠들지 못하고 오래 뒤척였다.
새벽녘에야 설핏 잠이 들었다가 은은하게 울려오는 도량석 소리에 깨어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스름이 내려앉은 경내를 천천히 돌며 목탁을 치는 스님의 모습이 멀리 보였다. 적막한 어둠을 일정하게 흔드는 목탁 소리는 마치 자연이 만들어내는 새벽의 기척인 듯 고요히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4시 반에 선방에 모여 108배를 했다. 지도 법사의 죽비소리에 맞춰 절을 하지만, 나는 속도가 느려서 절반 정도만 따라 하는데도 숨이 가쁘고 허리가 뻐근했다. 참선 수행에 참여한 인원은 30명 남짓 되는 듯하다. 본찰의 승려들과 대여섯 명의 국내 신도를 빼면 모두 외국인이다. 국내 신도들은 꽤 연배가 있어 보이지만 외국에서 온 이들은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다. 무상사를 창건한 숭산 선사께서 세계 각국에 선원을 열고 가르침을 펼칠 때 인연이 된 이들이라고 했다.
아침 좌선이 끝나고 방에 잠깐 들렀다가 공양간에 들어가니 모든 스님과 수행자들이 이미 좌정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황급히 선반에서 내 발우를 찾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지도 법사가 죽비를 쳐 공양의 시작을 알린다. 발우를 앞에 놓고 둘러앉은 수행자들의 침묵이 두근거리는 나의 가슴 위로 빗살처럼 날아와 얹힌다. 수발을 맡은 보살들이 일어나 물 주전자를 들고 좌중을 돌며 앞으로 내민 발우에 물을 따른다. 원하는 만큼 물이 따라지면 발우를 살짝 틀어 스톱 신호를 보낸다. 집중수행의 기본 지침은 묵언이다. 받은 물로 발우를 헹구고 앞으로 돌아온 국과 밥, 반찬들을 덜어내어 공양을 끝내는 시간이 10분 내외다. 편안하게 공양을 끝내려면 평소의 양보다 조금 적게 받아야 한다는데, 조금 적게 정도의 조절이 쉬운 게 아니어서 나는 안거가 거의 끝날 때까지 좌중의 눈치를 살피며 허둥거려야 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나면 반 시간 정도의 울력 시간이 있다. 나에게는 선방에서 법당 올라가는 길옆의 화단에 풀을 뽑는 일이 맡겨졌다. 오랜 가뭄으로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메마른 땅에는 몇 그루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나무 사이에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날카로운 호미 끝으로 뿌리를 파내어 잡초를 제거하다 보니 어떤 것이 풀이고 어떤 것이 남겨야 할 화초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사람이 일부러 심어 가꾸는 것이 아니면 모두 풀이라고 단정해야 마땅한데, 개망초꽃도 달걀노른자 같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달개비꽃도 한들한들 손을 흔든다.
일곱 시 반부터 여덟 시까지의 차담 시간. 공양간에 약간의 간식과 다양한 차가 준비되어 있다. 잠시나마 커피를 마시며 공동생활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내 컵에다가 커피를 한잔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와 건물 뒤쪽의 베란다 턱에 걸터앉았다. 6월의 짙푸른 숲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폐 속의 묵은 먼지를 씻어내는 듯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깊은숨이 올라온다. 투명하게 갠 하늘에는 새하얀 뭉게구름 한 자락이 산봉우리 위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커피의 부드러운 향과 카페인의 싸한 맛이 심신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깊은 평화의 느낌. 그래 이거지. 내가 여기 있는 이유.
오전 좌선은 아홉 시에 시작된다. 열한 시까지 두 시간. 30분 앉고 10분 행선 과정을 3번 반복하게 되어 있다. 시작하기 전에는 2시간 내 앉아 있는 것도 할 만하지 않을까 자만했는데 30분 앉아 있는 것도 등이 당기고 다리가 저려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무엇보다 집에서 올 때부터 안 좋았던 왼쪽 어깨가 당기더니 팔이 저리고 등이 뻣뻣하게 굳어온다. 2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단지 앉아 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매 순간이 새로운 경험이다.
오른쪽 바로 내 옆자리에 키가 큰 흑인 청년이 앉았는데 머리를 밀고 승복을 갖춰 입은 모습으로는 출가한 스님 같았다. 그런데 의자식 생활에 길이 든 신체 구조 때문인지 방석 위에 앉는 자세가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두툼한 메밀 방석 몇 개를 엉덩이와 무릎 밑에 끼워 편한 자세를 만들어보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한다. 그 후로 공양간 앞이나 밖에서 스쳐 지날 때도 자꾸 그에게 눈길이 갔다. 장대처럼 키가 크고 느린 걸음, 염소처럼 선한 눈매, 문신으로 뒤덮인 팔뚝 같은 것들이 그를 여기로 이끈 이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좌선을 하면서 이 몸이 얼마나 멈춤에 맞지 않는 구조인지 절실히 느낀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움직인다는 말과 동격인지도 모르겠다. 생명에게 완전한 멈춤은 죽음뿐이다. 검불처럼 머릿속을 흐르는 생각의 다발들이 꿈인 듯 망상인 듯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아직 좌선 자체에서 어떤 특별한 무엇을 배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안거 결제 자체가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온전히 일상과 다른 시간을 살아내는 경험. 그곳의 생활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내가 늘 품고 살았던 핸드폰, 티브이, 책 같은 물건이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평소 만나기 힘든 이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과정이 어쩌면 나를 더 고무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낯선 타국 땅에 와서 그동안 내가 진부하고 타성에 젖은 관습이라고 생각해 왔던 불교 의식을 진지하게 따라 하는 이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들이 자신의 세계에서 살며 견뎌냈던 것들, 저들을 이곳으로 이끈 것, 그 삶의 무게에 대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진부한 것은 내 안의 권태에 찌든 인식일 뿐, 세상은 여일하게 흐르지 않는가. 숭산이라고 하는 분의 가르침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 결국은 그 가르침의 빛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일 터인즉.
하안거가 끝나는 날 여행 가방을 끌고 사찰 바로 밑에 있는 버스 주차장으로 가면서 나는 첫날 지루함을 달래볼 요량으로 빌렸던 숭산 선사의 서한집을 종무소에 돌려주었다. 서한집은 개개인의 질문에 맞춰 명쾌하고 직설적인 해답을 주는 문답 형식의 글이어서 그의 일관된 가르침이 분명히 드러나는 책이었다. 선사에게 편지를 보낸 이들은 미국의 선원에서 공부한 제자들이거나 그의 강연에 참석했던 이들인 듯했다. 편지의 내용은 대체로 자신의 고민이나 궁금증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는 것들이었는데 그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그 서신들에 대한 선사의 가르침은 개별적인 성향에 맞추면서도,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생각이나 느낌, 의식을 점검하지 말고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정진하고 정진하라는 것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모두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것. 생각도 느낌도 인식도 매 순간 변하는 뜬구름과 다름없다는 가르침. 내가 지금 내딛는 한걸음이 내일의 근거이며 어제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은 일견 선명하고 신선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어제에 목매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다면 그 순간순간을 새로운 걸음으로 새털처럼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걸까. 오십만 년의 기억을 세포 속에 새긴 채 매 순간 펄떡이는 심장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제가 짐이 되지 않고 내일에 대한 불안이나 고뇌가 없는 삶이 정말 가능할까.
주차장에는 5분 후에 출발하는 303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 심사평 >
「무상사 여름 안거」
박석구
무상사는 계룡산 무학산 아래 숭산 스님이 2000년 초 국제선원을 목표로 세운 사찰이어서 외국인 스님들이 머무르며 한국불교를 수행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작가 이예훈이 하안거를 한 기록이다.
작가 이예훈은 이미 1994년 소설로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2003년 『딸들의 방』, 2013년 『이타방』, 2023년 『바람에게 안부를 묻다』를 출간한 중견 작가여서 필자가 감히 심사평을 쓴다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작가의 문장은 이미 안정된 형태를 지니고 있고, 하안거를 했던 경험이나 풍경을 그려낸 구성도 잘 짜여져 있지만 어쩌랴. 수필에 도전장을 내는 작가의 용기에 따를 수밖에.
작가는 무상사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요사채로 올라가 스님에게서 안거에 대한 지침을 받고 일정을 시작한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몸에 맞는 승복을 입고 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저녁 공양을 하고 9시에 취침에 들지만 자정이 지나서 자던 습관 때문에 새벽녘에서야 설핏 잠에 들었다가 어스름에 경내를 돌면서 목탁을 치는 스님에 의해 잠에서 깨어난다. 4시 반에 선방에서 외국에서 온 스님들과 함께 108배를 하고, 아침 좌선 뒤 아침 공양을 마친다. 이어 법당 길옆의 화단의 풀을 뽑고, 차담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두 시간의 오전 좌선을 하고, 점심 공양, 이런 일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좌선을 하면서 이 몸이 얼마나 멈춤에 맞지 않는 구조인지 절실히 느낀다. 살아 있는 것은 어쩌면 움직인다는 말과 동격인지도 모르겠다. 생명에게 완전한 멈춤은 죽음뿐이다. 검불처럼 머릿속을 흐르는 생각의 다발들이 꿈인 듯 망상인 듯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아직 좌선 자체에서 어떤 특별한 무엇을 배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안거 결제 자체가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온전한 일상과 다른 시간을 살아내는 경험. 그곳의 생활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내가 늘 품고 살았던 핸드폰, 티브이, 책 같은 물건이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작가가 좌선을 하면서 느낀 문장이다. 글이란 보고 지냈던 일정을 따라가는 것만을 적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인식한 감정을 풀어내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필자는 늘 강조하고 싶다. 그 안에는 느꼈던 감정뿐만 아니라 상처나 아픔 같은, 적요가 되어 쌓여서 구성하고 확장해야만 한다. 작가는 좌선의 의미를 ‘온전한 일상과 다른 시간을 살아내는 경험’이라고 정리한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모두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것. 생각도 느낌도 인식도 매 순간 변하는 뜬구름과 다름없다는 가르침. 내가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내일의 근거이며 어제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은 일견 선명하고 신선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어제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다면 그 순간순간을 새로운 걸음으로 새털처럼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걸까. 오십만 년의 기억을 세포 속에 새긴 채, 매 순간 펄떡이는 심장으로 살아 있는 인간에게 어제가 짐이 되지 않고 내일에 대한 불안이나 고뇌가 없는 삶이 정말 가능할까.
이 문장은 작가가 하안거가 끝나는 날, 무상사를 세웠던 숭산 선사의 서한집을 본 내용과 생각을 적어놓은 문장이다. 이 서신에 대한 가르침은 개별적 성향에 맞추면서도,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생각이나 느낌, 의식을 점검하지 말고,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정진하라는 것.
작가의 글을 읽고 필자도 잠시 내 삶과 지금의 내 생활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불안과 고뇌가 없는 삶은 과연 존재할까?
작가가 필자보다도 먼저 등단하고 책도 많이 출간했는데 그의 심사평을 쓴다는 것이 참 어려웠다. 하지만 수필이란 장르에 도전하는 작가의 정신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기왕 수필계에 발을 딛었다면 이곳에서 다시 이름을 떨치길 바라며, 에세이스트 가족이 됨을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