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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당선자

통권127호(2026년 5 -6월호) 신인상 수상자 양해자ㅡ 「막내오빠」

작성자조귀순|작성시간26.06.16|조회수53 목록 댓글 0

양해자

jung2736@naver.com

경남대학교 백남오 수필교실 수강 중,

진등재 문학회 회원

시의거리 한글백일장 산문부 장원

신세계백화점 근무

 

 

    [수상소감]

 

  늘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창작의 고통에 힘들고, 졸작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글을 쓰고 있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는 시간입니다. 한 편의 습작을 마무리했을 때 오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수필교실 지도교수님은 종종 말씀하십니다. 결핍이 있는 사람이 글을 쓰고, 글을 씀으로써 치유를 받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내 안에도 결핍이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유년 시절 시골에서의 가난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깊은 박탈감이었습니다. 가난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어떠한 꿈도 꿀 수가 없었습니다. 꿈을 꾸면 꿀수록 마음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고, 차라리 꿈을 내려놓는 것이 살아가기에 더 편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삶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셨고 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수필교실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뜻밖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부끄럽게만 여겼던 가난이 오히려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고 소중한 글감이 되었습니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유년 시절이 이제는 따뜻하게 떠오르는 것은, 글을 통해 그 시간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가난으로 생겼던 결핍의 자리에는 조금씩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새살이 나오도록 약을 발라주시고 천천히 지켜봐 주신 백남오 교수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부족한 저를 부모님 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품어 주신 에세이스트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등단은 진정한 글쓰기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생각하며 제 삶을 단단한 문장으로 빚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열아홉 살 오빠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2026년은 저에게 매우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였고,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으며 오랜 꿈이었던 등단도 이루었습니다. 인생은 예순부터라는 말처럼 이제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인생 2막을 힘차게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 등단작 >

  막내 오빠

           양 해 자

 

  막내 오빠가 이번 연말에 명퇴를 하게 됐다. 정년을 3년여 앞둔 시점이다. 명퇴 승인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다. 오빠가 절실히 원하던 바였으니 정말 축하할 일이다. 축하 화환에 새길 문구를 생각하면서 지나간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우리 집 형편은 시골에서도 평균치에서 한참 떨어지는 궁핍한 살림살이였다. 부모님은 소작농이었다. 한 해 농사가 끝날 무렵이면 다음 해에 소작할 땅을 구하느라 노심초사했다. 같은 동네에서 땅을 빌리지 못할 때에는 산길을 돌아 다른 동네까지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땅주인으로부터 다음 해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아놓은 해에는 새참을 이고 논두렁을 걸어오는 엄마의 발걸음이 날듯이 가볍고 경쾌했다. 수확이 끝난 논에서 메뚜기를 잡느라 이 구석, 저 구석 쏘다니며 곡식 이삭 줍는 일을 게을리해도 아버지는 그저 헤벌쭉 웃으셨다.

  하지만 소작할 땅을 어렵게 구해 일 년 내내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는 고작 3할을 받았으니 가난은 도저히 벗어던질 수 없는 덫이었다. 가난한 이유로 평생 을의 모습이 되어버린 듯한 부모님의 기를 추켜세워 주고 싶어 공부만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집집마다 형편이 어렵기도 했지만 남아 선호 사상이 뼛속 깊이 박힌 터라 여자는 다수가 야간고교에 진학하거나 고등학교 정규과정이 아닌 기술학교로 진학을 하던 때였다. 다행히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비해 교육에 열의가 있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흔쾌히 학교를 보내준다고 할 만한 처지는 못 되었다. 서로 눈치만 보며 걱정을 하고 있던 터에 막내 오빠가 여동생을 마산으로 데리고 가서 공부를 시키겠다고 나섰다. 동생의 보호자를 자처한 오빠 나이는 나보다 세 살이 많은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기계 공고 졸업을 앞두고 이제 막 대기업에 취직을 한 터였고 아직 사회생활에 적응도 채 되지 않은 새내기 사회인이었다.

   읍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는 구석진 시골에서 벗어나 당시 대도시였던 마산 소재의 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주변 친구들은 유학생이 되었다며 부러워했지만 자취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학비부터 생활비에 방세까지 모든 것을 오빠가 도맡았다. 처음 자취를 시작한 곳은 그나마 학교에서 가깝고 집도 깨끗했다. 동생을 위해 오빠가 무리해서 비싼 방을 얻었음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차 학교에서 멀리 떨어지고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 집들은 대개 쥐들이 밤새도록 천장에서 운동장인 양 찍찍거리며 달리기를 해댔다. 아침이면 부엌 한편에 놓아둔 쥐덫에 털과 살점이 떨어져나간 징그러운 쥐의 형체와 맞닥뜨리기 일쑤였다.

  오빠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야근과 특근을 밥 먹듯이 했다. 별 보고 출근하여 달 보고 퇴근하며 기계처럼 일을 했다. 진회색 작업복에 찌든 기름때를 내 작은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땀 냄새와 공장의 거친 기계음이 고무대야 안에서 맴돌다 내 가슴에 납덩이처럼 달라붙었다. 그런 와중에도 오빠는 학원에 등록하여 차곡차곡 대학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 실업계고교를 졸업한 까닭에 교과 내용이 너무나 달라 입시 공부에 난관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내가 졸업하던 해에 오빠는 순조롭게 야간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 날부터 오빠의 귀가 시간이 차츰 늦어지더니 아예 들어오지 않는 날도 허다했다. 알고 보니 노동운동에 적극 관여하고 있었다. 하루는 오빠네 회사 간부들이 자취집 대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오빠가 계속 데모 주동자 역할을 하면 학교를 다니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협박에 겁이 났다. 나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새벽에 지붕을 타고 집을 빠져나가는 오빠의 눈빛은 마치 사생결단을 내린 사람 같았다. 뿌지직거리는 기왓장 소리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달빛은 너무나 밝고 고요했다.

  오빠에게 어떤 불상사가 생길까 두려웠지만 결코 옳지 않은 일을 하고 다니지 않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고 기꺼이 나의 등대가 되어줬던 누구보다도 속 깊은 사람이 아닌가. 당시 노동운동의 선봉에 섰던 오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소작농이었던 부모님이 기득권자에게 힘없이 당하며 살아온 불이익에 대한 분노였는지, 죽도록 노동을 제공하고도 블루와 화이트칼라 사이에 존재하는 턱도 없는 차별대우에 대한 반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오빠의 젊은 날, 치열했던 투쟁이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바로잡는 작은 불씨가 되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40여 년간 같은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했으며 고단함이 오죽했을까? 한때 동생을 공부시키느라 더 힘들었을 무게를 생각하면 늘 빚진 기분이다. 나는 오빠 덕분에 이곳에서 뿌리를 내렸다. 똑바로 걸어올 수 있었고 단단하게 잘 걸어갈 힘을 얻었다.

  지금 오빠는 고향에서 제법 큰 규모의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 산수가 빼어나고 경관이 좋아서 사계절 내내 많은 캠핑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다. 새소리 듣고 꽃피는 것 보면서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밥이나 대접하면서 살아갈란다라고 말하던 오빠의 목소리가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오빠의 인생이 열아홉 살, 피어나는 봄이길 바래본다.

열아홉 봄이다.

 

 

    [심사평]

                         복진세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생애를 따라가며 시대의 결을 증언하는 서사적 수필이다. 가족사라는 가장 사적인 영역에서 출발하지만, 읽는 동안 독자는 자연스럽게 산업화 시기의 노동 현실과 계층 구조, 그리고 교육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 속으로 이끌린다.

  먼저 평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글의 핵심 성취는 개인의 기억을 집단의 역사로 확장하는 방식에 있다. 작가는 막내 오빠라는 구체적 인물을 중심에 세우고, 그의 선택과 삶을 통해 시대의 윤리와 긴장을 드러낸다. 특히 소작농의 현실, 도시로의 이동, 공장 노동, 야간대학, 그리고 노동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한국 근현대사의 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작가가 이를 거대한 담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논두렁, 자취방, 기름때 묻은 작업복과 같은 장면들이 축적되면서 시대는 자연스럽게 체험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수필이 지닐 수 있는 서사적 깊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인물 형상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성취를 보인다. 막내 오빠는 희생적인 가족 구성원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개인의 삶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하는 주체로 그려진다. 특히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장면은 이 인물을 단순한 헌신의 아이콘이 아니라, 시대와 맞서는 의지의 존재로 확장한다. 이는 가족 서사를 넘어 윤리적 인간형에 대한 하나의 제시로 읽힌다.

  한편 비평적 시각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몇 가지 보완의 여지를 남긴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중반 이후 드러나는 해석의 개입이다. 오빠의 노동운동 동기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작가의 판단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앞서 제시된 장면들가난, 노동, 차별만으로도 독자는 충분히 그 동기를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오히려 독자의 사유를 제한하고, 작품이 지닌 여백의 힘을 다소 약화하는 측면이 있다.

  다만,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서술에 기울어 있어 장면의 생동감을 확장할 수 있는 대화의 결이 다소 아쉽다. 인물의 감정과 관계가 주로 설명과 묘사로 전달되다 보니, 독자가 그 순간의 온도와 숨결을 직접 체감하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된다. 예컨대 오빠와 동생 사이의 갈등이나 만류의 순간, 혹은 부모와 나누었을 법한 짧은 말 한마디가 삽입되었다면, 인물의 내면은 더 입체적으로 살아났을 것이다. 보여주기의 완성은 단지 장면에 머무르지 않고, 말과 침묵이 교차하는 순간에서 비로소 깊이를 얻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한 지점을 남겨두고 있다.

 

  순간, 나는 오빠의 옷소매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울면서 애원했다.

  “오빠, 꼭 이래야만 하는 거야……?”,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해 봐……!”

 

  나는 잡은 소매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더 세게 움켜잡으며 말했다. 새벽에 지붕을 타고 집을 빠져나가던 오빠는 놀랐는지 나를 빤히 바라만 본다.

 

 그때, 오빠의 이글거리던 눈에는 고인 눈물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해자야……!”

 

나는 학교를 영영 못 다니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오빠는 나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오빠를 이해…….”

오빠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또한, 결말 부의 상징 역시 다소 직설적이다. ‘열아홉 봄이라는 표현은 상징적으로 효과적이지만, 이미 서사 전체가 축적해온 의미에 비해 다소 명명적이다. 만약 이 상징이 조금 더 간접적인 장면이나 이미지로 환원되었다면, 독자의 내면에서 더 오래 머무는 여운을 남겼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수필이 지닌 본질적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개인의 체험에서 출발해 시대를 통과하고, 다시 인간의 삶에 관한 질문으로 귀결되는 구조는 훌륭하다. 무엇보다 작가는 삶을 설명하기보다 장면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작품의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이 글은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묻는다. 한 인간의 젊음은 무엇으로 쓰이는가. 그리고 그 시간은 어떻게 타인의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되는가. 이 질문이 남는 한, 이 작품은 단순한 회고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걸출한 신인 작가 탄생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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