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은유하는 방식들 -『여치와 사담』 읽기
지은희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감정은 어떤 이미지나 언어로 시작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는 테레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 그녀가 그를 무작정 찾아온 순간이 하나의 은유로 새겨졌기 때문이라 했다. 밀란 쿤데라는 인간의 뇌 속에 ‘시적 기억’이라 부를 수 있는 특별한 지대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를 매혹하고 감동시키는 것들은 사건 그 자체보다 언어와 이미지로 이 지대에 각인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은유를 통해 삶을 이해한다. 사랑만이 아니라 행복과 슬픔, 연민과 고통 또한 은유를 통해 ‘시적 기억’에 새겨진다.
조귀순의 『여치와 사담』은 일상의 사소한 장면을 통해 삶을 섬세하게 형상화한 산문집이다. 2026년 정경문학상 수상작인 이 산문집의 은유는 아이러니나 서사의 반전으로, 때로는 가벼운 이미지로 모습을 바꾸며 삶을 드러낸다.
아이러니와 역설의 미학
「수세미 보살」과 「오 프로」에는 아이러니와 역설이 글 전반에 깔려있다.
「수세미 보살」에 등장하는 노보살은 형체는 있으나 색도 향도 없고, 마른 등이 깊은 외향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 노보살이 들꽃이 쓰러지지 않게 밭에 북을 주고, 들꽃은 그대로 두고 잡풀을 뽑는 솜씨에서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런 일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노보살은 “아무나 하면 되지요, 늙은 몸도 쓰일 데가 있네요.” 하며 수세미로 손을 씻는다. 그 순간 노보살의 모습과 그의 손에 들린 수세미가 겹쳐진다.
수세미는 성글어서 바람을 거르지 않고 물의 흐름도 막지 않으며, 더러움을 씻어내고도 스스로는 더러워지지 않는다. 성긴 수세미는 노보살의 성정과 맞닿는다. 제목대로 수세미는 보살의 예우를 받는다. 그 순간 노보살과 수세미의 이미지는 다시 새겨진다. “나는 내 안에서 정형화된 쓰임의 더께를 벗겨냈다.” 겉으로는 소소한 존재이지만, 그 소소함이 오히려 더 깊은 쓰임으로 다가오며 ‘쓰임’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전환한다.
「오 프로」에서 등장하는 대각선 여인은 수수하고 품이 넉넉하며 비슷한 연배들 사이에서 맏이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리더십이 있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이따금 말 한마디에서 의외의 면이 드러난다. 그 한마디는 평소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어긋나며 순간적으로 인상을 흔드는 지점이 된다. 평소 모습이 아니라 어느 한순간의 말이 인물의 이미지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어쩌면 글에서도 핵심은 5%라고 말한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몇 줄, 즉 글의 색채를 남기는 결정적인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 프로」는 네 사람의 대화, 대각선 여인의 말, 이마트 매장의 노란색 이야기 등의 서술이 95% 차지한다. 작은 부분이 전체를 규정한다는 5%의 역설은 글 자체를 통해서도 증명되는 셈이다.
몰입과 반전의 서사
서사에서 반전이 가져오는 힘은 강력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반전으로 독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반전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되탕」과 「김소이 양」은 성공적이다.
「되탕」은 화자가 태어나기 이전의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를 내세운 삼인칭 서술로 전개한다. 수필에서 보기 드문 형식이다. 수필이 통상적으로 일인칭 화자의 경험과 사유를 전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이 글은 관습적 형식을 넘는다. 마지막 문장에서 서술의 주체로서 ‘나’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전까지 삼인칭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은 독자에게 낯선 긴장감을 준다.
독자는 대체 누구의 이야기일까 궁금해하며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이러한 서술 전략은 개인적 기억을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 확장한다. 이야기는 ‘그 후 나에게는 둘째 언니가 생겼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며,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서사 전체를 이해하게 된다.
「김소이 양」은 화자의 상상이 서사를 이끈다. 둘째 아들의 약국 개업에 배달된 화환에 적힌 ‘김소이 양’을 보고 화자는 참석한 젊은 여성들 가운데 누가 김소이 양일지 궁금해한다. 화자는 둘째 며느리감에 대한 상상으로 마음이 들뜨고, 독자 역시 그 인물을 추측하며 이야기에 빠져든다.
결국 참다 못해 아들에게 김소이 양이 누구냐고 묻자, 아들은 ‘김’·‘소’·‘이’·‘양’ 성을 가진 친구들을 차례로 부른다. 그 순간 독자는 예상이 빗나간 반전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동시에 며느리감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지는 아쉬움도 느낀다.
두 수필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공통적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반전으로 앞의 이야기를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반전은 서사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 위에서 완성된다.
가벼움에 실린 무게
「여치와 사담」은 여치를 의인화한 화자의 자문자답 형식으로 전개된다. 차에 오른 순간 대시보드에 앉아 있는 여치와 마주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례식장을 다녀오는 길에 스쳐 가는 생각들은 ‘여치와의 사담’으로 이어진다.
글의 호흡은 빠르고 가볍다. 독자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깊이 붙들기보다 대화를 따라가듯 훑어 지나가게 된다. 그러나 그 대화의 밑바탕에는 태어나면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 여치의 생과 인간의 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통찰이 흐른다. 화자는 무거울 수 있는 죽음의 문제를 가벼운 대화 속에 실어 보내며 존재의 본질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구두에서 딩동소리가 보여」에는 여러 ‘딩동’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만난 한국 식당 ‘딩동’에서 시작된다. 가게를 홍보하던 청년의 활기찬 모습은 마치 구두에서 ‘딩동’ 소리가 울리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이후 ‘딩동’의 울림은 다양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들리는 초인종 ‘딩동’은 기쁨 속에서도 어딘가 모를 불안을 동반하고, 부도 이후 중국에서 다시 사업을 일으킨 남편이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구두 소리가 또 하나의 ‘딩동’처럼 울린다. 여행지 식당의 주문 벨 ‘딩동’이 매상의 신호라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현관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의 ‘딩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의 울림이 된다. 이처럼 ‘딩동’은 단순한 소리를 넘어, 삶의 국면마다 울리는 신호로, 화자의 삶을 관통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두 수필은 가벼운 이미지와 소리를 매개로 삶의 무게를 환기한다. 무거운 서사를 가벼움에 얹는 방식은, 마치 이별 이야기를 경쾌한 리듬에 실어 부르는 노래처럼 그 무게를 담담하게 흘려보낸다. 여치와의 대화나 ‘딩동’이라는 울림은 무거운 주제를 한 걸음 물러나 전하는 은유의 언어이다.
『여치와 사담』에서 은유는 작가가 삶을 이해하고, 돌보고, 성찰하는 방식이다. 이 산문집은 기억된 삶을 은유로 담아낸다. 작가에게 은유는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자, 그것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