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러 동네 슈퍼에 가는 길이었어요..
1층에 비스듬히 붙은 화단에서 건물 주인 내외분이 수풀(?)을 치우고 계셨어요.
도시 한복판, 그것도 서울역 근처 달동네 손바닥만한 땅에 누가 고추를 심어놨는데
이래저래 무성해진 뿌리들이 화단의 시멘트를 깨트리고 말았던 겁니다.
요 건물에 8년째 신세지고 있는 저도 냅다 쪼그려 앉아 풀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토요일 쾌청한 오후, 백발의 부부와 과년한 처녀가 화단을 거두며
303호 아저씨가 무릎을 다쳐 고향에 내려갔다는 근황부터
201호 주소가 붙은 쓰레기가 종종 무단 투기 되는 것 같다는 의혹,
401호가 아침마다 굽는 빵냄새가 출근길 사기저하의 일등공신이라는 제 고자질,
거기에 주인집에 서른다섯살 먹은 언니가 아직도 결혼을 안하고 있다는 걱정까지 소소하게 나누었습니다.
앗, 써놓고 보니 '소소하게'라고 하기엔 뭔가 너무 엄청난 비밀들이군요. 무서운 이웃같으니 ㅋ
백리터 쓰레기봉투 두개를 채워 여미고 나니 큰 놈은 다 따가고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고추가 한웅큼 남았어요.
다른 동네인 주인집까지 가져가시기 뭣한 크기며 양 때문인지, 302호 아가씨가 가져가~ 하십니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에 고추 몇개를 쫑쫑 썰어 넣었습니다. 살짝 깨물어보니 그리 맵지도 않고 아삭하더군요.
늘 지나는 작은 땅에서 나고 자(라다 만)란 것이라니 기분이 오묘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늦은 점심상의 주역은
취재갔다 받아온 된장, 아버지가 학교 텃밭에서 온갖 눈치작전 끝에 획득한 호박, 상주 버섯농장에서 따온 새송이버섯,
그리고 풀치우고 품새로 받은 고추였던 것이로군요. 그러니 오늘 저는 몹시도 부농이었던 것입니다. 하하
명절이다 출장이다 하느라 3주나 미뤄진 수업을 그것도 지각으로;; 첫 출석 했습니다. 종로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요.
선생님들은 저를 '미연', '수연', '미선' 등 각자의 첫사랑 내지는 지인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뭐 이름따위 아무렴 어때요ㅎ
그래도 새얼굴이라고 예뻐해주시고, 특히 겁먹지 말고 다만 꾸준히 정진하라는 조언들도 잊지 않으셨어요. 하나하나 귀
로도 듣고 마음으로도 들었습니다. 욕속심이야 말로 신참의 적이니 말씀들 잘 받들어 서두르지 않고 따라가보렵니다ㅎ
아무쪼록 떼놓지 마시고 부디 거두어주시길 바랍니다 ( _ _)
간만에 뵙는 김종완 선생님과 언제나 해사하신 조정은 선생님, 그리고 동기사랑우주사랑 입학 동기 산수화님ㅎ
그런데 실은 누구보다도 말이지요
저에게 이런 좋은 인연들과 수업을 알려주시고, 또 이래저래 독려해주신 강병기 선생님
저는 대체 언제쯤이나 선생님을 직접 뵐 수 있나요? ㅎㅎ
이상, 꿀차를 마시며 꿀묻은 손가락을 핥고 있는 과년한 처자, '민소'의 인사였습니다.
남은 주말, 진짜 가을 같이 보내시길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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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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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민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0.19 저는 김지영선생님의 카페관리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탄복한걸요ㅎ 분발하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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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금 작성시간 09.10.19 인사가 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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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민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0.22 감사합니다. 첫인사를 어찌 해야하나 고민 좀 하다가 결국 또 먹는 얘기가 됐습니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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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돈오(이재선) 작성시간 09.10.19 나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안다. 하하... 금요반 수업이 한층 활기를 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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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민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0.22 맥주와 한치 멋지게 쏴주신거 가슴깊이 감사하고 있답니다. 저도 무럭무럭 자라 우리 에세이스트 새내기 왔다고 한턱 낼 수 있도록 닮아가겠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