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지갑은 늘 빈 곳간이랍니다
강철수
우리 성당에는 도움을 청하는 신부님들이 자주 들른다.
주로 성전을 새로 짓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특수 사목직에 있는 분들이다. 같은 약을 계속 먹으면 내성이 생기듯, 비슷한 얘기를 자주 듣다 보니 면역이 생긴 걸까. 신자들은 이제 웬만한 얘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냥 듣기만 할 뿐 쉽게 지갑을 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오시는 신부님들도 그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해 오는 모양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좌중을 휘어잡으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가 하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어떤 분은 교도소 사형수를 하느님 곁으로 인도한 얘기로 숙연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신자들 집중도를 가장 높이는 건 역시 배꼽 잡는 우스갯소리였다.
시골 어느 성당,
고해소(告解所)에 들어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할머니.
“고해(告解)를 하셔야죠?” 신부님이 채근했다.
“이 나이에 무슨 죄를 짓겠능교? 늙은 게 죄지.”
“그럼 뭣 땜에 여기 들어왔소!” 역정이 난 신부님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놀래라, 지랄하고 자빠졌네!”
흡사 몸소 겪은 것처럼 실감 나게 얘기를 풀어놓으면 금방 성당 안은 폭소로 진동했다. 물실호기(勿失好機), 신부님의 본론이 펼쳐진다. 미리 나누어 준 후원회원 가입 신청서와 볼펜을 꺼내게 한 다음 잠시 시간을 드릴 테니 지금 바로 신청서를 작성해 달라고 한다.
어느 날,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를 새로 맡았다는 K 신부가 오셨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호리호리한 몸피에 굼실굼실 웨이브가 진 곱슬머리, 흰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귀공자 모습이라고나 할까. 한데, 이런 일이 처음인지 서투르기 짝이 없었다. 더듬더듬 눌변에다 그 흔한 우스갯소리나 노래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파요, 때리지 마세요.’ 그리고 ‘욕하지 마세요.’랍니다. 때리고 욕하고,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괄시하면 안 되는 거지요. 우리도 한때 외국에 나가 품을 팔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7, 8십 년 대 수많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가난을 벗고자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지방 국가들로 품팔이를 나가지 않았던가. 작렬하는 태양과 모래바람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버티어 내는 우리의 젊은이들, 그 속에 내 조카와 생질이 있었다. 타일공으로 간 조카는 한몫 잡아 왔지만 페인트공으로 간 생질은 폐섬유화라는 중한 병을 안고 돌아왔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녔지만 결국 얼마 못 가 고인이 되고 말았다. 그때 보살펴 주지 못한 게 지금껏 내 가슴속 옹이로 남아 있다.
이어지는 신부님 말씀.
“급한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보면 작업 중에 손가락이 잘려 나갔거나 어디를 크게 다친 젊은이가 수술받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지요. 내가 보증을 서서 수술부터 시킵니다. 외국인이라 산재 처리가 꼬이거나 사업주가 나 몰라라 하면 꼼짝없이 보증을 선 제가 감당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몇 달 치 월급을 받지 못해 찾아온 노동자를 앞세워 공장 사장을 만납니다. 월급을 못 주는 그분의 딱한 사정을 듣다 보면 도리어 눈물이 날 지경이 되지요. 어쩌겠습니까. 그 노동자에게 며칠간의 숙식비라도 보태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 지갑은 늘 빈 곳간이랍니다.”
산만하고 두서없는 말들을 염주알 꿰듯 하나하나 이어 보노라니 그분의 진정성이 내 마음에 닿았다. 그렇지만 분위기를 휘어잡지 못한 데다 눌변이기 때문일까, 온 힘을 다해 호소했는데도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신부님이 안쓰럽기만 했다. 게다가 마무리할 때도 여느 신부님들처럼 볼펜을 들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처분만 기다린다는 듯 조용히 서 계시기만 했다. 저러다가 정말 빈손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싶어 조마조마했다. 은퇴한 백수라 기부금은 모두 아내 몫인데 이번엔 큰맘 먹고 내가 펜을 들었다. 액수가 높아진 건 파리한 생질의 얼굴이 떠올라서일지도 모른다.
미사가 끝나고 복도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가물에 콩 나듯 할 줄 알았는데 많은 이들이 신청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이들도 나처럼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는 그분의 진솔함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까. 아무튼 많은 사람의 호응으로 신부님의 지갑이 두둑하게 채워졌으니 이제 품을 팔러온 외국 청년들을 도와주는 든든한 곳간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다.
(200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