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31
ㅡ 신라건국 초기 상황 ㅡ
(신라 '왕'호칭 변천사)
김부식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건국연도는 기원전 57년이다. 이 해에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나 백제보다 수 십년 더 빠르다.
'박혁거세'가 부족연맹체 수장으로 선택된 것은 이 시기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당시 신라가 완전한 고대국가로 형성 되었다고 인정하기는 힘들다.
신라가 고대국가 형태를 갖춘 것은 고구려 백제 보다 한 참 뒤의 일이다. 그래서 신라를 고구려 백제보다 더 먼저 건국되었다는 것을 역사가들은 정설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고대사는 역사기록 자체가 아주 적을뿐만 아니라 정확도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래서 고대사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당시 여러상황을 견주어가며 추론해야 한다. 그래서 내 글에서도 "추정된다." "추측된다." 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이유이다.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이 용어는 중고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철저히 외워서 지금도 구구단처럼 입에 딱 붙어있다. 그러나 그 의미도 모르고 무조건 외우기만 했다.
이번 기회에 의미까지 자세히 알아 보자.
첫 째, <거서간>은 '박혁거세'가 여섯 부족연맹체에서 대표자로 선택되고 '거서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시조 박혁거세를 '거서간'이라 하였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혁거세거서간 기록>에서는 “거서간은 진한(辰韓)의 말로 왕을 이름이다.”라 하였고, “혹은 말하기를 존귀한 사람을 부르는 칭호이다.”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조> 에서는 “위호를 거슬한이라고 하였다(位號曰居瑟邯).”는 말의 주(註)에서 “혹은 거서간이라고도 한다. 박혁거세가 처음 입을 열어 말할 때에 스스로 일컬어 '알지거서간(閼知居西干)이 한번 일어났다'고 했으므로, 이로부터 거서간은 왕자(王者)의 존칭이 되었다."고 하였다.
박혁거세 때만 '거서간'이란 칭호를 사용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가자.
고구려 백제는 처음부터 '왕'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신라는 왜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신라초기에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신라가 부족사회에서 중앙집권적인 왕국으로 발전해 나가던 시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신라는 여러 부족이 연합한 형태 국가였기 때문에, 군주를 지칭하는 호칭이 부족장이나 지도자의 역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신라초기에는 왕권의 정립이 완료되지 않았고, 권위가 군주보다는 부족장 혹은 족장에 더 의존했기 때문에, '왕'이라는 호칭보다는 다른 명칭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후 신라가 점차 중앙집권적인 왕국으로 발전하면서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신라 건국 후 4000여 년이 흐른 17대 '내물왕'
(314–371) 시기부터 왕권이 확립되면서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후 22대 '지증왕' 때 와서야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방언인 '마립간'의 칭호도 중국식 '왕'으로 고쳤다.
둘 째, <차차웅 (次次雄)>은 신라 두 번째 왕인 '남해왕'이 사용한 칭호다. <삼국유사 남해왕조>를 보면 "남해거서간은 또한 차차웅이라고도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대문 화랑세기>에 의하면 차차웅은 "무당[巫]을 뜻하는 말로 세상사람들이 무당은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므로 그를 외경하여 마침내 존장을 '자충' 이라 했다" 라고 실려 있다.
이처럼 '차차웅'은 종교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신라 초기 사회에서 종교와 정치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셋 째, <이사금 (尼師今)>은 신라의 세 번째 왕인 유리왕부터 사용되어 칭호로 4개 칭호 중 가장 오래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제18대 '실성왕'대까지 16대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제16대 '흘해왕'까지로 되어 있다.
'이사금'은 '치리자' 또는 '연장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조> 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설화가 전한다.
[신라 2대왕 '남해왕'(南解王)이 세상을 떠나자 '유리'(儒理)가 당연히 왕이 되어야 했는데, '탈해'(脫解)가 평소 덕망을 지니고 있어서 그에게 왕위를 양보하고자 하였다. 탈해는 말하기를 ‘제가 듣기로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빨이 많다고 하니 떡을 깨물어서 누가 이빨이 많은지를 알아봅시다.’라고 하였다. 유리의 '치리'(齒理: 잇금)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자 좌우 신하들과 더불어 왕으로 받들고, '이사금'(尼師今 이빨이 많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김대문은 화랑세기>에서 이르기를 ‘이사금은 방언으로서 치리(齒理: 잇금)를 일컫는 말이다. 이빨이 많은 것으로써 서로 왕위를 이어갔으므로, 이사금이라고 칭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설화는 이상과 같으나, 이사금의 어원에 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근래에 와서 이사금이란 ‘니슨금’ · ‘닛금’ · ‘니은금’이 '임금'으로 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빨만 많으면 왕이되는 시대였다. 요즘 인터넷 치과 치면 '이사금 칫과'가 꽤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ㅎㅎ
그러나 다른 의미로는 이는 부족 사회에서의 연장자 또는 원로가 지도자의 역할을 했음을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넷 째, <마립간 (麻立干)>은 신라의 17 대 '내물왕' 시기부터 사용된 칭호로, '마립간'은 '대군장' 또는 '왕'을 의미한다. 이는 신라가 보다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로 변화하면서, 군주로서의 권위가 강화된 것을 나타낸다.
'마립간'이라는 말은 '삼국사기'에 인용된 <김대문 화랑세기>의 설명에 의하면 “방언으로 말뚝(橛)을 이름이요, 궐은 함조(諴操)의 뜻으로 자리를 정하여 두는 것이니, 왕궐이 주가 되고 신하의 궐은 아래에 배열하는 것을 이름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언어학적 설명에 의하면, 마립은 ‘마루[宗]’·‘마리[廳]’ 등과 같은 어원의 말이라 한다. 따라서 마립간은 마루칸[麻樓干]·누칸[樓干]·종간(宗干)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대수장(大首長)을 뜻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17대 '내물왕', '삼국사기'에서는 19대 '눌지왕'부터 마립간 칭호가 사용되었다고 하여 시대적 차이가 있다
'마립간'이라는 칭호의 사용은 신라의 왕권이 신장됨에 따라 왕이 화백회의의 사회자로 군림하게 되고, 왕위의 세습화가 이루어지게 된 5세기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
신라도 자녀가 왕위 세습이 이루어지게 된 것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내물왕 시절, 왜가 신라를 침략하자 도우려 왔다가 신라 왕위세습을 보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고구려는 자식들이 대를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 신라는 <박,석,김> 세 성씨가 번갈아 가면서 왕위에 오르고 있었다. 이에 광개토대왕이 자식들로 왕위를 세습하라는 조언인지 명령인지를 하고나서 부터 '내물왕' 때 부터 '김'씨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세 성씨 중 왜 그 때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당시 김씨 세력이 가장 컸으니 그랬을 것이라 추측이다.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이 칭호들은 신라가 부족 사회에서 중앙집권적인 왕국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 칭호들을 잘 살펴 보면 신라 건국초기 상황을 대략 알 수 있었을 것이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