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13
ㅡ <남북국 시대> 3 ㅡ
(발해건국 과정)
[698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옛 고구려 땅인 동모산 일대에 (지금의 중국 지린성 둔화현) 나라를 세웠다. 국호를 '진국(震國)’이라 칭했다.
'발해'라는 이름은 713년 당이 건국자인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봉해 그 국가적 실체를 공인한 데서 비롯했다.
일본과 사절 교환시에는 '고구려' 계승을 강조하며 스스로 '고려'로 칭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발해 건국에 관한 내용이다.
'대조영'은 한 나라의 건국시조 임에도 그의 출생년도와 사망 시기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대조영이 698년에 발해를 건국한 점과 그의 활동 시기를 감안할 때, 630년대~640년대 초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대조영 사망 시기도 역시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일반적 으로 719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구당서'와 '신당서'등 기록 에서, 대조영 아들 '대무예'가 왕위 에 오른 시기를 근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멸망시 대조영은 20대 정도로 추정된다. 이 나이에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대조영 아버지 '걸걸중상'(대중상)이 부각 되고 있다. 원래 이름이 '걸걸중상' 이었는데 '대중상'으로 바꾸어 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걸걸'은 '크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발해가
건국하는 698년까지 3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구당서'와 '신당서'에 이 기간동안 대조영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기는 한데 서로 다르다.
'구당서 동이열전'에는 대조영과 그의 아버지 걸걸중상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걸걸중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을 이끌고 당나라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한 인물로 묘사된다. 걸걸중상은 대조영 아버지로 나오며, 그의 집단이 동모산으로 이동한 뒤 발해건국이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 동이열전'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지만, 걸걸중상보다는 대조영이 중심적으로 다뤄진다.
신당서에는 걸걸중상 이름이 안 나오고 대조영이 당나라 추격을 피하여 동모산에 정착해 발해를 건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대조영 독립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발해건국에 대해 지금 알고있는 내용은 '신당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구당서와 신당서는 100년이 조금 넘는 시대 차이가 있다.
신당서는 구당서보다 더 후대 시각에서 수정, 보완된 역사서로 내용 정확성과 세밀함에서 구당서 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런데 발해건국과 관련해서는 당나라 입장에서는 발해건국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추정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즉 발해건국과 관련해서 만큼은 구당서가 더 정확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구당서 기록으로 보아서는 698년 보다 더 빠른 시기에 대조영이 아닌 걸걸중상(대중상)이 발해 건국을 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내용이 '삼국유사'에도 <고종 무인에 발해를 칭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무인(戊寅)'이라는 년도는 698 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우고 시점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설이 다수설이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698년에는 국호를 발해라 칭하지 않았고 '진국'이라 했다. 그래서 '무인'이 678년 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제왕운기'(고려후기 문신 이승휴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를 운율시 형식으로 서술한 역사서)에는 <고구려 장수 출신 대조영이 '갑신년'에 나라를 일으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갑신년'은 684년이다.
또한 당나라가 677년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을 요동도독 으로 임명하여 그 지역 명목상 관리자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677년 경에 당나라가 요동 지역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 했고,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 지역이 불안하고 혼란했다는 의미이다.
당은 이러한 요동을 안정시키기 위해 고구려 멸망시 포로로 잡아 놨던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을 이용하여 고구려 유민들을 다독 이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그런데 당이 믿고 보냈던 보장왕이 당 뒷통수를 제대로 친다. 보장왕은 고구려 장수 출신과 합류해서 당에 저항했던 것이다. 즉 고구려 장수가 반란을 일으켜 만주땅을 흔들어대니 당은 보장왕을 보내 달래려고 했지만 보장왕은 오히려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고구려 장수와 함께 고구려 부활을 꽤 했다는 것이다.
그 고구려 장수가 바로 대조영 아버지 걸걸중상으로 본다면 구당서나 삼국유사 제왕운기에 나온 기록들이 다 맞아 떨어진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발해건국을 678년으로 보고, 그 주체는 대조영이 아니라 아버지 걸걸중상 (대중상)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정은 주류학설은 아니다.
주류학설은 678년은 발해건국이 아닌, 대조영 세력이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독립적인 세력으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단계로 간주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678년 설은 일부학자 이론일 뿐, 대체로는 698년이 발해건국 기준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처럼 역사서에 따라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 역할을 달리 기록하거나 혹은 동일시하는 경우 도 있어 후세 역사학자들이 많이 헷갈려 하는 것 같다.
현재로서는 주류학설대로 698년 을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했다고 받아 들이면 될 것 같다.
678년 걸걸중상에 의해 발해가 건국했다는 설은 참고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698년 대조영이 건국할때 국호는 발해가 아니라 '진국'이었다는 것이다.
713년에 와서야 '진국' 국호를 ‘발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당나라에서 '발해'로 국호를 내렸다 한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것은
걸걸중상이 명색이 발해건국 시조 대조영 아버지인데도 불구하고,
기록 어디에도 추존왕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원래 나라를 건국한 창업군주들은 대부분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 및 조상들을 왕으로 추존하는 것이 상례이다.
걸걸중상이 추존왕으로도 되어 있지 않다는건 발해 기록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밝혀지지 않은 것 인지도 모르지만 걸걸중상은 당나라 측천무후가 멋대로 하사한 '진국공'이란 작위를 빼면 발해 추존왕 자리에 이름이 올려져 있지 않다는건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역사학계에서는 대조영과 걸걸중상이 부자관계가 맞는지 의심하는 학설들이 있고 심지어는 이 둘이 동일인물일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고구려가 멸망한지 30년 만에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대조영은 고구려가 멸망한 뒤 아버지인 걸걸중상과 함께 당나라 땅인 '영주'(지금의 중국 랴오닝성 차오양)로 끌려가 그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구려 유민들 지도자로서 역할을 했다.
695년 '이진충'이 이끄는 거란족 이 '영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걸걸중상은 말갈인 '걸사비우'와 함께 들고 일어나 동쪽으로 탈출 했다.
당시 당은 당고종이 죽고난 후, 690년 '측천무후'가 당나라 이름 을 '주(周)'로 바꾸며 새로운 왕조 를 세웠다. 이 시기를 측천무후의 '무주(武周)' 시대 라고 부른다.
당시 무주 여황제 역할을 하던 측천무후는 거란족 '이진충'의 반란을 진압한 뒤 거란족 출신 장수 '이해고'를 보내 걸걸중상 일행을 추격하도록 했다.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는 추격군을 따돌리며 동쪽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걸걸중상이 병으로 죽자 그 아들인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 과 말갈족을 이끌게 됐다.
이후 대조영은 험준한 '천문령' 에서 당나라 이해고 군대를 크게 격파하고 건국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대조영은 당나라 압박을 물리치고 고구려 유민, 말갈족과 함께 698년 동모산에서 진국 (발해)을 건국한다고 선포했다.
이 정도가 발해 건국에 대한 기록 전부라고 볼 수 있다.
고조선부터 시작한 고구려 백제 신라 건국신화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내용이다.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것은 대조영과 발해건국에 대한 기록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발해 자체적 역사 기록이 소실된 데다, 조선시대 이전 우리나라 사서들 대부분은 신라 중심으로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발해는 아예 우리 민족국가로도 쳐 주지 않았다.
조선후기에 와서야 '유득공'등 실학자들이 발해사를 재조명하며 대조영과 발해역사를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민족 역사로 보았다.
<남북국 시대>라는 말도 이때 '유득공 발해고'라는 책에서 처음 나왔고, 발해사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만큼 오늘 발해건국 과정 정리는 힘들었다.
조금 헷갈리게 쓰여져 있었도 이해바란다.
어쨌든 고구려 멸망이후 30년만에 발해가 건국됨으로 해서 우리 민족국가가 여전히 옛 고조선, 고구려 땅을 다시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발해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발해 건국지로 알려진 동모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