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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야 할 문

작성자서정길|작성시간26.06.05|조회수40 목록 댓글 0

열어야 할 문

 

서정길

전쟁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이 월계관을 쓰고 입성한 개선문은 권위와 프랑스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문이다.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의 문은 누구라도 허리와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는 겸손의 의미가 담긴 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동서원의 환주문喚主門은 드나드는 이의 마음가짐을 여미게 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에는 이처럼 다양한 삶의 태도를 담은 문이 존재한다.

어릴 적 우리 집 대문은 양철 문이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덜커덩’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놀란 이웃집 개는 한동안 짖어대곤 했다. 늦은 밤 귀가할 때면 대문 여닫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던 아버지의 헛기침은 당신의 존재를 알리는 문이었다. 그때의 대문은 이웃과 소통하는 통로이자, 자식들의 늦은 귀가를 지켜주는 파수꾼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백 섬 곳간을 여닫는 문지기였다. 곳간 문은 식구들의 생계가 달린 문이었다.사시사철 할머니의 허리춤에는 곳간을 여는, 놋쇠로 만든 묵직한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신나게 놀다 배가 출출해져 할머니를 찾아가면, ‘내 새끼 어서오라’며 곳간에서 찐쌀, 고구마, 오징어, 무말랭이까지 꺼내 오셨다. 풍요와 따스함이 깃든 문이었다.

1960년대, 중학교는 시험에 합격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이었다. 여섯 개 면에 하나밖에 없는 공립 중학교여서 경쟁이 치열했다. 그 문을 통과한 합격자만이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더 큰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의 세대 또한 더 많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대학입시를 거쳐도 졸업 때면 취업이라는 좁은 문이 기다린다. 이 문을 통과했다고 끝이 아니다. 피라미드식 직장 구조는 또다시 무한경쟁에 뛰어들게 한다. 결국 인생은 겹겹이 마주하는 문의 빗장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40여 년 전, 나는 결혼이라는 문을 통해 아내와 둥지를 틀었다. 처가와 아내 등 새로운 인연의 문이 생겨났지만, 그 문은 기쁨만을 안겨주진 않았다. 달라진 위상과 신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혼인이라는 문은 달곰함이나 편안함보다는 낯섦으로 다가왔다. 각종 대소사라는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고 박봉인 주머니를 더욱 가볍게 만들었다.

아무리 열고 드나들고자 애써도 열리지 않는 문도 있었다. 면장으로 근무할 때다. 군청 간부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나와 거리를 두었다. 내가 한발 다가가면 그들은 두 발 물러섰다. 그 무렵 많은 동료가 선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고, 살생부에 내 이름이 맨 먼저 올라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매다 낭떠러지와 마주한 것처럼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표적 감사라는 화살이 쏟아졌고 연이어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기관에 불려 다녀야 했다. M 언론조차도 몰매를 가했다. 독방에 갇힌 죄수와 다름없었다. “혐의 없음”이란 결과에도 몇 해가 지나도록 독방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새벽마다 성당 제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의 모든 걸 다 아시는 그분께 근심과 불만, 울분과 비애까지 마구 쏟아내며 울었다. 심장이 찢어지고 녹아내리는 듯 아팠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눈물로 캐물어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분은 하루, 한 달, 해가 바뀌도록 침묵한 채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뿐, 주님마저 나를 버린 것 같았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사직하기로 결심하고 새벽에 성당을 찾았다. 성체조배를 마치고 나오자 신부님이 다가왔다. “시몬 형제님, 이번에 본당 봉사직을 한번 맡아보시죠.”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유분수지, 몇 차례 고백성사를 통해 내가 겪는 고통의 무게를 뻔히 아시면서 총회장직이라니. 분기를 간신히 억누르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마음 내려놓을 곳이 없었다. 그럴수록 신부님은 집요하게 다가왔다. 억울해하고 분노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 먼저 마음에 쌓인 불편한 감정부터 씻어내라 한다. 철옹성 같았던 빗장이 풀린 건 여름이 성큼 오고 난 후였다.

누구나 네 개의 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너와 내가 함께 바라보는 문, 너도 나도 알 수 없는 문, 나는 알지만 네가 모르는 문, 그리고 너는 알지만 내가 모르는 문. 내 안의 문은 나를 바라보게 하지만, 바깥의 문은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눈이다. 내가 모르거나 볼 수 없는 문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안의 문은 그 누구도 대신 열어줄 수 없는, 오직 나만이 열 수 있는 문이었다. 쉽게 열고 나선 문도 있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열 수 없었던 육중한 문도 있었다.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끝내 열기를 포기한 문도 있었다. 보이지 않는 출구를 찾아 헤맸던 그 마음의 문을 찾는 데 무려 수년의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삶의 길목마다 어떤 문으로 드나들지는 결국 내 몫이었다. 돌이켜보면 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문만을 기웃거린 것 같다. 외지거나 가팔라 힘이 드는 문은 아예 외면했다. 하지만 쉽게 드나들던 문이라도 모두 행복을 담보해 주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는 문, 평생을 신실하게 걸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신앙의 문’을 바라본다. 훗날, 저 멀리서 목자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줄 때, 기쁘게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마지막 과제로 남았다. 오늘 밤, 어두운 하늘에 빛나는 작은 문 하나가 소리 없이 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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