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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줄근히 가는 봄

작성자정임표|작성시간26.06.05|조회수23 목록 댓글 0

우리 카페에 회원님들의 옥고가 새롭게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수필문학 발전을 위해서 좋은 일 입니다. 내 글이 부족하다 생각되시더라도 용기 있게 많이 올려 주시길 부탁합니다. 작품이란 여러 사람 앞에 내 놓는 게 작품입니다. 내가 정성을 다해 쓴 글이라면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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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줄근히 가는 봄

 

 

흐린 날이다.

투표를 하고 나서 팔공산 뙈기밭에 콩 심으러 갔다.

 

비가 내린다.

흙이 질척하여 콩 심기를 중단하고 소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솔 잎 마다 이슬 같은 빗방울이 맺히다 똑 떨어진다.

호미는 내 발 앞에서 쉬고 있고 콩을 담은 검정 비닐봉지에도 빗방울이 미끄러진다.

 

일손을 놓으니 사소한 것들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하게 눈에 띈다.

벚꽃 구경으로 붐비던 차도에도 사람 하나 없다.

 

갈 곳도 없다.

할 일도 없다.

핸드폰을 꺼내 본다.

누구에게서도 연락 온 곳이 없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싶다.

저장된 이름을 검색해 보지만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포켓에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는다.

 

멀리 지묘동 입구에서 부터 비는 운무가 되어 흐른다.

아파트로 돌아가기로 한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공부하러

아내는 아이들 뒷바라지 하러 어제 서울 갔다.

 

집에 가도 별로 할 일이 없다.

내려오다 불로동 화훼단지에 들른다.

밖에서 비를 맞고 있는 꽃들이 우산 없이 학교 가는 여고생 같다.

 

한산하다.

 

홍매화 묘목이 있는지 물어 본다.

나무나 꽃을 사려는 게 아니니 주인의 소리는 건성으로 듣는다.

하우스 안의 꽃들도 후줄근히 풀이 죽어 있다.

 

비 내리는 봄 휴일.

꽃은 그렇게 다 지고

마음도 질척거리는 것이다.

 

(2008년 4월 9일 봄에 쓴 글. 지금부터 딱 18년 전에 쓴 글입니다. 아이들은 출가하여 어른이 되었고, 그들 역시 살아 낸다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일 개떡 같은 게 코딱지 만한 아파트가 서울에는 30억이라고 합니다. 교통이 불편한 저 변두리는 10억이랍니다. 사람 살데가 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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