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회원 수필

입춘 무렵 홍매화

작성자김인기|작성시간22.02.28|조회수66 목록 댓글 1

 

 

 

 

입춘 무렵 홍매화

김인기

 

 

 

 

 

 

  아픔과 슬픔은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 그리고 이것들과 아름다움은 같은 게 아닐까? 그리하여 현란한 무늬에는 아득한 설움이 어른거리는 게지. 동진(同塵) 김재형(金宰亨) 선생의 발인이 있던 날이 마침 입춘이었다. 난들 아무런 감정이 없었으랴. 다만 이걸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전래의 표현에 꼭꼭 숨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이고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만사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선생에 대한 기억도 훌훌 털어버려야지. 나 또한 언젠가 저리 될 것이니까. 딴청을 부리느라고 어딘가에 피었을 매화도 상상했다.

  겨우 보름쯤 전에 선생이 보낸 수필집 『가을이 머물다 떠난 자리』를 받았는데, 아무리 고령이라고는 하지만, 이게 이렇게나 갑작스럽다니. 막상 부음을 듣고 작품집을 뒤적여보자니, 그만 힘이 든다. 애써 몇 편의 글을 읽어는 보지만, 행간으로 먹구름이 잔뜩 일어난다. 이럴 줄도 모르고 바로 얼마 전에 나는 이러쿵저러쿵 투덜거렸다. 이것도 다 선생이 이승에 있을 때 이야기이다.

  선생은 1961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선생은 2000년 어느 중학교에서 교장으로 퇴직했다. 이 무렵 나는 선생과 처음 만났다. 우리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났다. 그런들 무슨 상관이랴. 누가 먼저 태어나라고 했나, 뭐. 나는 상대의 연령이나 경력 또는 재산 등등에 대체로 무심하다. 내 언행들이 이런 요소들로 묶이는 것도 싫어. 남들 사정 깊이 알면 가슴만 아프지. 차라리 모르고 살자. 마치 솔숲을 지나는 바람처럼 흘러가자. 이런 태도가 나쁠 게 없으렷다.

  요즘은 고학력자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한글을 익혀버린다. 과연 세종대왕의 업적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게 자연현상은 아니다. 누군가는 주눅이 들었다. 이미 배운 자들은 자기들끼리 경쟁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미처 배우지 못한 자들은 어디에 끼이지도 못했다. 기본은 진작 배워야 자기가 알아서 더 나아가는데, 시절이 고약하거나 팔자가 사나우면, 이것조차도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도 각자는 나름대로 지켜야 할 존엄이 있었다.

  과거 그 정황을 헤아려보면 현기증이 난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다.’ 이런 고집마저도 아무나 부릴 수 없다. 그러면 어떡하느냐? 주머니에 현금이라도 두둑하거나 인상이라도 험악해야지. 이래야 적어도 같잖은 것들한테 무시를 당하진 않는다. 누가 스산한 속사정을 필설로 다 드러내랴. 그럼, 그렇지. 교양미 넘치는 언사보다는 걸레도 울고 갈 비속어가……. 이래서 친정오라버니도 출가수행자보다는 조직폭력배가 더 낫다. ‘여차하면 죽을 줄 알아?’ 물론 이런 방식이 궁책이다.

  이미 이승을 떠난 분한테 뭘 물어볼 수는 없다. 다만 그랬으려니 한다. 선생의 어머니뻘이 되는 분들이 내게는 할머니뻘이 된다. 나는 참 궁금했다. 왜 주위의 할머니들은 당신들이 내려도 무방할 결정들을 이렇게 회피하는가? “아, 그거는 우리 아들한테 알아보고…….” 나는 그 아들들도 당최 미덥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어르신들이 글을 몰랐던 것이다. 아마도 학식이 있다는 자들의 횡포도 두려웠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소 잡다한 질문들을 했더라도 선생은 흔쾌히 응답했을 터인데, 내가 명민하지 못하여, 그만 기회를 놓쳤다.

  어휴, 가끔은 나도 개탄을 한다. 저러고도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워낙 학문을 숭상하는 겨레의 일원이라 남들의 반어법도 헤아리기야 하지만, 아닌 게 아니라 먹물들의 어이없는 작태들도 놀랍다. 더러는 학식으로 공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교활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기대치가 높아서 생긴 불만이고, 무학자들이나 저학력자들로서는 주위에 대학졸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여간 든든한 게 아니다. 집안에서도 기둥이었다. 선생이 살아왔던 격변의 시대에 이들이 한 역할은 실로 엄청났던 셈이다.

  다 지난 일인데, 구닥다리 복고풍이라니. 누군가는 눈을 흘기려나. 나도 그래. 남들이 싫다지 않느냐. 그렇다면 이들을 괴롭히지 말아야지. 그러나 어쩌면 이게 아닐지도 몰라. 기시감이 든다. 새삼스레 그 할머니들을 마주하는 듯하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저건 앞뒤가 맞지 않는데, 도대체 이 무슨 변괴냐? 혹시나 이들이 예전의 그 아들을 선거판에서 찾으려는 것일까? 그 인물이 정직하고 영특하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그게 꼭 그렇다는 보장도 없다.

  버스나 열차도 이용하기 어렵다. 은행이나 우체국도 겁나는 곳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오는 안내장에 적힌 글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아무개가 방긋방긋 웃으며 예배당에 함께 다니자고 하는데, 글을 읽을 줄 모르니, 찬송가도 부를 수 없다. 그렇다고 나 어찌 차마 글을 모른다 하랴. 나도 감정이 있어. 그래서 생트집을 잡는다. 이런 게 바로 문맹의 서러움이다. 참 이상해. 사람들이 이런 내막은 쉬이 납득하면서 왜 여타의 ‘맹(盲)’에는 이리도 둔감할까? 심지어는 무명(無明) 때문에 자해도 한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가 그지없이 귀엽다. 그 손자도 할머니와 찰싹 붙어서 떡 얻어먹는 게 별난 정경은 아니다. “아이고, 그냥 빈손으로 오지, 생광스럽게 이런 걸 다 가지고 왔나…….” 할머니 무릎을 베고 빈둥거리다보면 겨우 일곱 살인 아이도 어른들의 ‘어록(語錄)’에 달통한다. “이렇게 귀한 걸 자꾸 먹다보면, 죽을 때 고생한다던데…….” 녀석이 이렇게 먼저 나서다가 꾸지람도 듣는다. 아이가 죽음을 말하는 게 사위스러우니까.

  다시 상황을 되돌아보자. 마치 익숙한 약속대련처럼 이루어지던 일상의례의 역할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감정의 교류와 관계의 조율이었다. 각자가 이를 잘 인지했을까? 아마도 한계가 있었겠지. 이를테면 문법의 존재조차 모르는 원어민의 모국어 사용이라고나 할까. 의사소통에는 크게 지장이 없으나, 좌충우돌은 불가피하다. 의례도 언어와 다르지 않아서 독해력이 거의 ‘맹(盲)’에 가까우면 곤경에 처한다. ‘저 인간이 싸가지가 없다.’ 이런 악평에도 이유가 있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나는 의례를 거행하는 중이다.

  ‘동진(同塵)’이라는 아호는 어디서 왔을까? 아쉽게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아마도 ‘화광동진(和光同塵)’이 출처가 아니었을까 싶다. 선생의 일생이 대체로 아호와 닮은 듯도 하다. 다소 과묵한 분이어서 잘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내 감각으로 짐작하자면, 선생은 동서남북을 오가며 곳곳의 잡음을 줄이느라 노심초사한 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자문해 보자. 화광동진이 무엇이더냐? 그야 보살행이지. 이게 조금은 ‘브로커’와도 닮았다. 선생의 평소 안색이 검붉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관념은 실물과 달라서 질감이 없다. 죽음은 관념이다. 우리들이 육안으로 보는 것은 오로지 주검일 뿐이다. 주검을 통하여 죽음이라는 관념을 형성한다. 그러면 주검의 양상은 어떠한가? 아직까지 나는 참혹한 주검을 목도한 적이 없다. 그러나 선생은 나와 다르지 않았을까? 시절이 그러했다. 근래에야 나는 겨우 사천왕상이 바로 주검의 모습이란 걸 알았다.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들이 아니라 내부에 이미 있던 것들이 혈관을 따라 증식하면 주검도 저렇게 부풀어 오른다. 지옥변상도의 나찰들도 주검의 모습이다.

  아직 삶도 다 알지 못하거늘 어찌 죽음을 말하랴. 이게 성인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나는 종종 의심한다. 후인들이 뭘 곡해한 건 아닐까? 숨이 멈추자마자 육체는 작아졌다. 느낌이 그랬다. 예전에 나는 선친의 임종을 지켜보며, 내 착오도 곧 깨달았다. 원래 그 몸이었으나 그 동안 크게 인식했던 것이다. 인간들의 생활상이 대개 이러하다. 그래서 밥상머리에서도 당부한다. 여인아! 남편은 소가 아니다. 그릇에 밥 많이 담지 마라. 그렇게나 오래도록 함께 살면서도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그러나 이 또한 이승의 설레발이다.

  마치 그 자리에 늘 그렇게 있으려니 여겼던 언덕이 사라진 것만 같다.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간다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들을 하지만, 이 간략한 서술도 기만의 언어일지 몰라. 도대체 가긴 어디로 간다는 거냐? 그럴 곳이 있기나 해? 이러면서도 저마다 내심 부지런히 현실을 납득하고자 한다. 온당함과 부당함의 거리가 멀지 않다. 지금 떠날 수 없는 이유와 지금 떠나야 하는 이유가 아무런 모순도 없이 서로서로 용납하며 버젓이 공존한다.

  언필칭 시절인연이라 할 선생의 시간은 영영 지나가버렸다. 격동의 세월이었다. 개개인의 희로애락이 개개인의 의지와 수시로 엇갈렸다. 이게 우리들의 현대사였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여 재앙이 닥치자, 선생은 저게 바로 저들이 업보로 받는 천벌이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게 인간들의 잘못이지 어찌 하늘의 뜻이랴. 선생도 좀 심했다. 그러나 나는 왜정을 겪은 선생한테 깊이깊이 박힌 반감을 감지하고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호오를 떠나서 이승만이라는 인물은 내 경험의 영역이 아니다. 당시 헐벗고 굶주렸던 백성들이 ‘대통령’이 아니라 ‘이 박사’라 불렀던 그 정서에는 따로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면 박정희라는 인물은 어떤가? ‘야당지도자들이 모두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격렬히 반대했다.’ 과거의 대통령을 이렇게 칭송하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이들의 확신과는 별개로 나는 한 시대의 공포를 읽는다. 한 뼘의 땅도 아쉽다며 논둑에 콩을 심었고 밭둑에 수수를 심었다. 하물며 멀쩡한 논밭을 뒤엎고 무슨 길을 낸다니! 자신들도 아찔했던 거다.

  그래도 참 신기한 일이지. 나는 너무나 어려서 정쟁의 존재조차 몰랐던 사건의 영향으로 오늘날의 도전에 무척이나 너그럽다. 아무렴, 작금의 선택이 과거의 고속도로보다 더 큰 모험이랴. 별별 터무니없는 주의주장이 난무하는 나라이다. 그래도 나 역시 수소산업이니 핵융합발전이니 하는 걸 두고 뭐라고 할 뜻이 전혀 없다. 태양계 너머로 누가 탐사선을 보내자 해도 경청할 것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저러다가 저 사업들이 왕창 망해버린다 해도, 까짓것, 괜찮아. 글쎄, 이런다니까.

  시간과 공간에는 주름이 있다. 그런 만큼 순간순간의 표정도 있다. 마치 산 너머 참나무와 같다. 산천에 드리워 배경을 이루기도 하던 그 실재를 내내 그러려니 여기다가 문득 그것들의 부재를 자각하면, 내 가슴도 먹먹해진다. 그렇지, 하늘 아래 영원한 게 있었던가? 기실은 하늘마저도 영원하지는 않을 거야. 나 또한 살아있는 것들의 운명을 직감한다. 그렇다면 굳이 소란스럽게 굴 것 없다. 그러므로 이승에서 봐왔던 선생의 면면들도 하루하루 조금씩 잊기로 하자. 어제는 찬바람 맞으며 국채보상공원에 갔더니 홍매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2022.2.17.]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小 珍 (박기옥) | 작성시간 22.03.01
    국채보상공원에 홍매화가 피었군요.
    엉망진창 정치판에도 봄이 올런지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