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쓰기
김 상 립
좋은 수필이 어떤 것이냐 물었을 때 그 답이 결코 간단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수필을 두고 평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수필을 두고는 못 미친다는 평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수필은 좋다 하여 상금도 준다. 그러나 수상 후에 벌어지는 논란이 때로는 문제를 일으킨다. 만약에 수필을 평가하는 명확한 잣대가 있어서, 그 자로 재어 단번에 결정이 난다면 몰라도, 예술작품이라는 게 어떤 정해진 규격에 의해 평가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결국 사람이 우열을 결정하게 되고, 이 경우 평가는 다분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하기야 심사를 맡은 이도 신이 아니니 판단에 착오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착오가 고의냐 아니냐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기도 하다. 나도 간혹 나이 값으로 심사를 부탁 받는 데, 가능하기만 하면 극구 피하고 본다.
수필에 대한 이론서나 평론 관련 서적들을 살펴보면, 좋은 수필에 대한 해답이 여러 가지로 나오고 있지만, 대체로 우수한 수필이란 뛰어난 문학성과 깊은 사색으로 얻어진 철학성의 유무에 기준을 두는 듯 하다. 또 좋은 수필로 인정될 수 있는 글의 특색은 독자가 글을 읽으며 미적 감동을 일으켜 작품이 아름답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감동은 구사된 문장의 정확성이나 간결성에서 올 수도 있고, 문장의 아름다움이나 음악적 리듬에서도 오며, 글 속에 담긴 내용이 사색에서 울어난 철학적 울림이 있어 감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원로시인 신경림선생은 “시란 글로써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라며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글로서 그려내는 것이 바로 시다.” 라고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수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글로써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꼭 하고 싶은 얘기를 실감나게 잘 표현한다면 좋은 글이 되지 않겠는가? 뛰어난 수필가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솔직하고 적절한 표현으로 묘사를 잘해낸다. 작가가 진솔하게 쓴 문장에서 문학적 향기가 배어나고, 그의 내면 세계가 잘 그려져 삶의 참된 의미를 느끼게 되는 경우에 독자들은 일종의 감동을 받게 되고, 이런 감동이 클수록 수필로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은 분명하다.
나는 문학작품이 갖는 아름다움은 일차적으로 문장에서 온다고 믿는다. 문장을 읽고 미적 감동이 클수록 문학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반응은 간결하고 함축성이 풍부한 문장에서 비롯될 것이다. 어떤 장면을 묘사하던 거기에 꼭 맞는 단어는 하나뿐이란 말처럼, 가장 적절한 단어를 합당한 자리에 배치하는 것도 문학성을 높여줄 것이다. 또 글의 장단이 음악적이어서 낭송해보면 매끄럽게 읽히며 리듬감이 있을 경우에도 흥미를 일으킬 것이다. 더하여 작가가 작품 속에서 형상화하려는 장면을 실제처럼 아름답게 표현한다면 좋은 글이 되지 않겠는가?
다른 한편 문학성이 주로 문장에 비중을 두는 것이라면, 철학성은 작품 속에서 그려진 마음의 세계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일 터이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되어있다. 말하자면 사람이 살아가는 곳, 그 어디라도 철학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작가들은 글을 쓰며 유명한 세계적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어떤 상황을 해석하거나 설명하곤 하는데, 수필에서의 철학은 학문으로서의 철학과는 결을 좀 달리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수필에서 철학이라 함은 철학 공부를 많이 하여 작가의 현학적 지식을 나타내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사람같이 살아가는 데에 충실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수필에서 나타나는 철학의 바탕은 바로 솔직이요, 정직이요, 사랑하는 마음이다. 비열하거나, 비겁하거나, 거짓으로 치장하고 사는 행위에 반대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또 세상이 잘 못 가는 것을 외면하지 말고, 용기 있게 글로써 저항하는 행위를 뒷받침하는 가치여야 한다.
원래 수필이 작가의 인품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는 지적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수필이 작가를 닮게 되고, 또 작가는 자기가 쓴 수필을 닮는다는 말까지 나온 것이라 본다. 더하여 좋은 수필은 글의 주제를 분명히 하고, 남기고 싶은 메시지를 명백하게 정리하여 독자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문학적인 문장을 구사하고, 글의 내면에는 자기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함축시키다 보면 자연 좋은 수필이 될 것이다. 그 위에 격조 있는 유머와 위트를 적절히 섞어서 독자를 미소 짓게 한다면 재미까지 얻게 되지 않겠는가?
좋은 수필로 가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길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드러냄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는 방법이다. 수필가가 누구인가. 바로 자기만의 얘기로 남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그 글 속에서 독자들에게 감동과 위로와 내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수필이 다른 장르의 문학과 다른 점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는 내용을 사심 없이 기술했는데도, 독자들이 아예 관심이 없거나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면, 제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이 될 것이다. 실제로 어떤 작가의 미담을 읽었을 때 느끼는 공감과 감동은 결국 일상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인품에서 오지 않았겠는가? 만일 작가의 삶이 정직하고, 착하고, 부지런 하다면 굳이 수필에서 미적 감동을 바라거나, 철학적 사고를 내 보이려 죽어라 노력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수필 이론에 밝다던가 글을 쓰는 우수한 능력이나 기교만으로는 좋은 수필을 만드는 데는 분명 어떤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론이나 기교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고, 차라리 수필 같은 삶을 꿈꾸며 사는 게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