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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강을 건너, 보고 싶은 얼굴

작성자정임표|작성시간26.05.21|조회수54 목록 댓글 0

추억의 사진 한 장

 

세월의 강을 건너, 보고 싶은 얼굴

※사진 설명 : 올해 71세가 되는 필자가 지닌 가장 오래된 사진이다. 사진 속의 저 아이가 대략 한 서너 살쯤 되었을까? 필자에게는 전혀 기억이 없는 사진이지만 부모님에게는 정말 소중했던가 보다.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낡은 종이상자 깊숙한 곳에서 흑백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일흔한 해라는 세월의 강을 건너 비로소 마주한, 내 생의 가장 먼 기억이자 첫 얼굴이었다.

사진 속에는 대략 서너 살쯤 되었을 법한 사내아이가 서 있다.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 아래로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한다. 아이는 당시로서는 꽤 호사스러웠을 양복을 입고 있다. 소매 끝에는 앙증맞은 스냅 버튼이 달려 있고, 목에는 소년 단원처럼 두 줄의 흰색 선이 선명한 스카프를 정갈하게 매고 있다. 왼손으로는 사진관의 소품인 크리스마스트리를 살포시 잡고, 고무신이 아닌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운동화를 신은 채 단정하게 서 있는 모습. 어머니가 손수 그렸을 것 같은 초승달 같은 눈썹이 인상적이다. 내게는 전혀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순간이지만, 인화지 위에 고착된 아이의 표정은 마치 조금 전의 일인 듯 생생하기만 하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인화지의 질감이다. 요즘의 가벼운 인쇄물과는 달리 묵직하고 두꺼운 그 종이는 만지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무게감을 전해준다. 칠십 년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고 본래의 명암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사진사는 필시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이었거나, 혹은 아이의 맑은 속을 담아내는 신의 손을 가진 예술가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시선은 저절로 사진 밖의 풍경으로 옮겨간다. 그 시절, 6.25 전후의 폐허가 채 가시지 않았던 경상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대구 시내까지는 무려 삼십 리 길이었다. 덜컹거리는 고물 버스 한 대조차도 다니지 않던 금호강을 건너 길게 뻗어 있던 그 먼 황톳길을 부모님은 어떻게 이동하셨을까. 화폐가 귀하던 시절,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가난한 살림에 사진 한 장을 남기는 일은 사치를 넘어선 큰 결단이었을 터.

아버지는 아마도 곳간에 아껴둔 쌀말을 짊어지셨을 것이고, 어머니는 아이에게 입힐 양복을 준비하느라 푸성귀며 산나물을 큰 장(서문시장)에 까지 이고 지고 팔아서 돈을 모으고, 저 아이를 등에 업은 채 그 먼 길을 걸으셨을 것이다. 시내 사진관에 도착하기까지 어머니의 머릿속은 온통 사진사에게 물어볼 질문들로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 얼굴이 잘 나오게”

“부디 이 귀한 사진이 오래 가도록”

부탁하면서 그 찰나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먼 길의 고단함을 기쁨으로 이겨내셨을 것이다.

 

사진 속 아이가 나를 빤히 보고 있다. 눈망울이 티 없이 맑고 투명하여 보는 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저 때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지금 내 앞의 이 늙은 얼굴은 도대체 누구인가? 내 안에 분명 존재했던 저 순수는 세월의 파도에 찢겨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인가. 아니면 삶의 지혜와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변환되어 내 영혼 깊은 곳에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있기에, 오늘 이렇게 낯선 노인의 얼굴로 남아 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까?’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너는 우리에게 이토록 귀한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 네 얼굴에 깊은 주름이 지더라도, 네 삶의 첫 시작은 이렇게 맑고 사랑받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마라.”는 소리가 사각의 사진 속에서 들리는 듯하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사진 속의 내가 잡은 크리스마스트리는 부모님이 내게 선물하고 싶었던 반짝이는 세상이었고, 목에 매어준 스카프는 차가운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싶었던 그분들의 온기와 사랑이었다. 부모님께서 남기신 사진 한 장이 나를 다시 그 시절의 티 없는 마음자리로 데려다 놓는다. 내가 아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순수가 오래된 이 사진 한 장 속에서 살아나고 있다. 나를 이토록 귀하게 여겨주시던 분들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삼십 리 먼 길을 쌀말을 이고 지고 걸어가셨을 그분들의 발걸음이 내 인생의 길목마다 여전히 동행하고 있었음을 인생 칠십을 다 살아 보고서 이제야 안다.

 

사진을 갈무리하며 창밖을 본다. 서산으로 지는 노을이 어머니의 가슴처럼 붉다. 가을이 익어가는 구월 초하루는 아버님 기일이고, 겨울이 깊어가는 동짓달 초열흘이 어머님 기일이다. 꿈속에서라도 한번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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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범몽(凡夢). 《문학예술》, 《에세이 21》로 등단. 수필집 『꼴찌로 달리기』, 『생각 속에 갇힌 인간』. 대구수필가협회 회장 역임. 관세사. tgjeil@nate.com 010-2511-5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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